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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휴가를 다녀오고 나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집중하기가 힘들다. 책은 며칠 읽지 않아도 별 무리 없이 다시 읽어나갈 수 있지만, 글쓰기는 며칠 쉬면 다시 쓰기가 조금 막막해진다. 하얗게 빈 화면에 깜빡이는 커서가 나를 초조하게 만들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나는 별것도 아닌, 단 한 문장 쓰는 일조차 쉽지가 않은 것이다. 그럴 때는 또 책에서 답을 찾아야지. 잠시 컴퓨터 앞을 떠나 글쓰기 관련 책을 훑어본다.

글쓰기 책은 참 많고도 많다.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쓴 글쓰기 책은 두 종류로 나뉜다. 어릴 적 TV에서 멋진 수채화를 아무렇지도 않게 쓱쓱 그리며, "참 쉽죠?"라고 말하던 밥아저씨 같은 유형의 책, 그리고 도자기 장인이 도자기를 빚듯이 구슬 땀을 흘리며 힘겨운 산고의 과정을 지나 비로소 책 한 권을 만들어 내고는, '다시 태어나면 작가 같은 건 되지 않을 테다. 이건 정말 못할 짓이다, 하지만 이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고백으로 끝나는 책.

둘 중 어떤 유형의 책이라도 유명 작가들이 쓴 '글쓰기 책'들은 읽으면서 연신 감탄하며 밑줄을 좍좍 긋지만, 다 읽고 나면 그걸로 끝이다. 그들의 글을 읽고 '나도 한번 써볼까?'라는 생각은 쉽게 들지 않는다. 나는 그들처럼 글쓰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대단한 작가 선생님들도 글쓰기가 힘들다는데, 하다못해 구르는 재주도 없는 나 까짓 게 무슨 수로 글을 쓰겠느냐는 말이다.  
 
 <당신의 글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강준서, 구달, 김봉철, 김은비, 김종완, 안리타, 최유수 지음
 <당신의 글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강준서, 구달, 김봉철, 김은비, 김종완, 안리타, 최유수 지음
ⓒ 디자인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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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글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는 일곱 명의 독립출판 작가들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 책이다. 책에는 강준서, 구달, 김봉철, 김은비, 김종완, 안리타, 최유수 이렇게 총 일곱 명의 작가들의 글이 실려 있다. 종종 독립서점에 들르는 나에게는 이 책에 쓰여있는 이름들이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하다.

상업 출판물들과 달리 아담한 독립서점에 작고 수줍은 모양새로 놓여 있는 책들을 보며 항상 궁금했다. 이 사람들은 무슨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을까. 매일 같이 쏟아지는 굵직굵직한 작가들이 쓴 책들의 더미 속에서, 무슨 말이 더 하고 싶어서 이렇게 글을 쓰며 수고롭게 공정과 유통과정까지 도맡아 작은 책 한 권을 세상에 건네는 것일까.

<당신의 글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를 읽으면서 내가 그들에게 품었던 의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은 매일 필사적으로 쓰고 있었다.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현실을 살아내며 울음을 토하듯이 글을 썼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직장인처럼, 또는 생업을 마치고 잠을 줄여가며 그들은 성실하고 간절하게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넘쳐나는 생각들로 감당하기 힘들 때, 내 안에 꿈틀대는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나는 글을 쓴다. 그 밖에도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을 경험했을 때, 좋은 책을 읽었을 때에도 글을 쓴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서둘러 집안일을 한다. 잠깐 앉아서 머릿속을 정리하고 노트북 전원을 켠다. 평일 낮 시간, 내가 오롯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다. 그때 글을 쓴다. 책을 읽는 건 아이들이 있어도 할 수 있지만, 글을 쓰는 건 아이들이 있을 때는 할 수 없다.
 
환경의 방해를 받지 않고 혼자가 되어야만 문장에 몰입할 수 있다. 물론 아무도 없는 골방에 혼자 처박혀 세상과 분리된 채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점은 그 공간에 나를 아는 사람 없이 홀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말을 걸지만 않으면 된다. 글을 쓸 때는 나 자신을 정신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이 도움이 된다. 가끔 눈앞이 캄캄해질 때도 있지만 나를 밝혀줄 빛은 늘 문장 속에 있다. (26쪽)

나는 그들이 가진 대부분의 것이 없고, 경제적으로 궁핍한 날이 더 많다. 그런 내가 그들보다 좋은 게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불행할 때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57쪽)
 
이 책에서 만난 반가운 이름들이 있다. 구달, 김종완, 김봉철. 구달 작가의 <아무튼 양말>을 무척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나와 유머 코드가 맞는 작가다. 그의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글에 매료되어 그 즉시 나는 그의 다른 글들을 찾아 읽었다.

김종완, 김봉철, 김현경 작가의 <저도, 책 같은 걸 만드는데요>는 나에게 처음으로 독립 작가로 사는 일에 대해 알려준 책이다. 비록 <당신의 글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에서는 김현경 작가의 글을 만나지 못해 아쉬웠지만, 김종완, 김봉철 작가의 글을 다시 만나 반가웠다.

뜻밖의 수확도 있었다. 바로 최유수 작가의 발견. 최유수 작가는 나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었는데, 이 책에 실린 그의 글이 참 좋았다. 이 책에 실린 글 중 밑줄을 제일 많이 그으며 읽은 글이기도 하다. 세심하게 다듬어 꾹꾹 눌러 쓴 그의 문장을 읽으며 여러 번 감탄했고, 또 즐거웠다. 그가 쓴 다른 글들도 곧 찾아 읽어 보고 싶다.

세상에는 참 좋은 작가들이 많다. 평생 책만 읽고 산다고 해도 그런 멋진 작가들을 다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을 곱씹어 읽는 것도 물론 즐겁지만, 예상치 못하게 가슴에 내리 꽂히는 낯선 작가의 글을 만나는 기쁨도 그에 못지않다.

나와 비슷한 나이,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작가를 발견하고, 작가의 성장을 지켜보며 함께 성장하는 것, 이런 경험은 나의 영혼을 살찌우고, 내 삶을 빛내 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기꺼이 책방과 도서관을 찾는다. 낯선 이름을 찾아 책을 펼친다.  
 
'소설'의 '설'은 '이야기 설(設)'일 테지만, 내게는 '눈 설(雪)'이기도 하다. 나는 설원을 돌아다니며, 조심스럽지 못해 그곳을 더럽히기도 할 것이며, 눈 밑에 파묻힌 문장들을 하나둘 찾아낼 것이다. '소설'이란 걸 써보려고 하면,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없는 문장들을 써서 지어낸다는 느낌이 아닌, 눈 밑에 묻혀 가려져 이미 있는 것들을 고고학자처럼 발굴하며 찾아내는 그런 느낌말이다. 어떤 이야기든 소설은 쓰고 난 뒤에 보면 원래부터 완성된 이야기는 존재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내 나름대로 찾아냈을 뿐이다,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거의 매번 그렇다. (144쪽)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받지 못하지만, 거액의 계약금을 받고 편안한 환경에서 글을 쓰는 유명 작가는 아니지만, 나는 그들을 응원한다. 그들이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 언제 어디에서 글을 쓰는지, 글 쓰는 행위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빼곡히 적힌 이 책을 읽으며 어쩌면 나도 다시 나의 글을 시작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얀 종이에 찍힌 검은 글자들은 그들의 발자국을 닮았다. 아무도 걷지 않은, 혹은 오래되어 발자국이 지워진 길을 서툰 걸음으로 타박타박 걸어가는 작가의 발자국을 따라 그들의 손을 잡고 나도 하얀 백지 위를 조심조심 걸어본다. 독립출판 작가를 응원하는 나의 마음은 곧 스스로를 응원하는 마음이 된다.
 
언어가 자신을 찌르는 날에도 그저 아파할 것. 몸살을 다 받고 오래오래 앓을 것. 눈 뜨는 새벽마다 어둠을 기록할 것. 아무도 쫓지 않는 어둠 속에서 어둠을 완전히 다 쓰는 사람이 될 것. 작가도 되지 않을 것. 그저 주어진 그 일을 하면서 살아갈 것. 살아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말 것. 저는 오래오래 그런 걸 할 것입니다. (136쪽)

당신의 글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강준서, 구달, 김봉철, 김은비, 김종완, 안리타, 최유수 (지은이), 디자인이음(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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