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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낮 3시부터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는 '봉오동전투 및 청산리전투 시기 만주독립군의 전투 환경'이란 주제로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의 제4회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학술세미나는 만주 독립운동사에 괄목할 만한 업적을 이뤘지만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있던 최운산 장군을 조명하는 자리였다. 세미나 주제는 당시 만주독립군의 전투 환경에 초점을 맞추었다.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와 국회의원 박찬대 의원실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국가보훈처와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의 후원으로 열린 이날 학술세미나에서는 신주백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의 '봉오동전투 및 청산리전투 당시 독립군 지형의 재구성-대한군무도독부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발표가 있었다. 이어서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의 '1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 동북지역 독립군 부대의 무기 도입 과정', 윤상원 전북대 사학과 교수의 '시베리아 내전과 독립군', 이계형 국민대박물관 특임교수의 최운산의 삶과 독립운동' 순으로 발표가 있었다.
 
 무장독립군들의 무기에 관한 발표를 영상자료로 설명하는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무장독립군들의 무기에 관한 발표를 영상자료로 설명하는 신효승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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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 발표를 마친 뒤에는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를 좌장으로 종합토로회가 있었다. 토론회에는 심철기(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이숙화(한국외대), 홍웅호(동국대) 교수 등이 토론자로 나와 '봉오동전투 및 청산리전투 시기 만주독립군의 전투 환경'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학술세미나에서 특히 흥미를 끈 것은 신효승 연구위원의 '1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 동북지역 독립군 부대의 무기 도입 과정' 이라는 발표였다. 신 연구위원은 "독립군의 무장투쟁을 연구할 때는 당연히 독립군의 무기에 대한 연구도 병행되어야하지만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미진했다"고 전제하면서 준비한 피피티 영상을 활용하여 독립군이 활동하던 당시의 전세계 무기체계 등 독립군의 무기에 대한 발표로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개별 발표에 이어 종합토론회 하는 모습. 왼쪽에서 4번째 마이크를 든 이가 좌장인 반병률 교수
▲ 종합토론회 개별 발표에 이어 종합토론회 하는 모습. 왼쪽에서 4번째 마이크를 든 이가 좌장인 반병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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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학술세미나 발표에 앞서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윤경로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2020년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 100주년을 맞는 해다. 99년이 지난 지금, 독립군 통합군단인 대한북로군부의 총사령관 최진동 장군을 비롯하여 엄청난 사재를 털어 봉오동에 독립군기지를 건설하고 독립군을 양성했던 최운산 장군에 대한 연구 등 만주와 북간도 무장독립운동에 대한 연구가 전무한 실정이라 부끄럽다. 오늘 학술세미나를 계기로 봉오동 전투를 비롯하여 최운산 장군의 역할 등이 재조명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날 학술세미나에 참석한 정인환(서초동, 65세)씨는"청산리 전투 보다 앞섰던 봉오동 전투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다. 더군다나 만주의 거부였던 최운산 장군이 사재를 털어 사관연성소와 대한북로군독군부를 창설하여 봉오동 전투를 주도한 사실도 처음 알았다. 최운산 장군과 최진동, 최치홍 3형제의 혁혁한 공로야말로 만주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음에도 거의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학자들의 고군분투를 기대한다"고 했다.

"최운산 장군의 독립투쟁 역사 밝히는 작업 박차 가하겠다"

이날 3시부터 진행된 학술세미나가 시작되기 전,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제4회 정기총회가 열렸다. 이날 정기총회에서는 제1대 윤경로 이사장이 사임하고 제2대 신임 최용규 이사장이 취임 했다. 신임 최용규 이사장은 "만주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었던 최운산 장군의 독립투쟁의 역사를 낱낱이 밝히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겠다. 출발은 늦었지만 기념사업회를 활성화 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라고 신임이사장으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학술세미나에 앞서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정기총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윤경로 전 이사장, 신임 최용규 이사장, 최성주 이사(왼쪽부터)
▲ 윤경로, 최용규, 최성주  학술세미나에 앞서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정기총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윤경로 전 이사장, 신임 최용규 이사장, 최성주 이사(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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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투의 최일선에서 뛰신 최운산 할아버지의 독립투쟁 이야기를 하자면 눈물이 납니다. 만주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최운산 할아버지의 활약이 역사에 묻혀있어 제가 앞장서고 있습니다. 1년 앞으로 다가온 봉오동전투 100주년을 앞두고 역량있는 학자들과 사회적인 관심이 불타오르길 비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는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최성주 이사의 말이다. 이날 행사 주관과 사회까지 맡아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면서 99년 전 봉오동의 선봉장으로 뛴 최운산 장군의 업적을 떠올려 보았다.
 
학술세미나에 앞서 열린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제4회 정기총회 기념사진, 앞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전임 윤경로 이사장, 바로 옆이 신임 최용규 이사장
▲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제4회 정기총회  학술세미나에 앞서 열린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제4회 정기총회 기념사진, 앞줄 왼쪽에서 세번째가 전임 윤경로 이사장, 바로 옆이 신임 최용규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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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운산 장군은 누구인가?
봉오동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도 국내에서 제대로 조명 받고 있지 못하는 최운산(1885.11.17. ~ 1945.7.5.) 장군은 그 흔한 포털 백과사전 등에도 공적 소개가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다음은 손녀 최성주씨의 '서울신문 3월 26일 대담' 중 일부로 최운산 장군의 이해를 돕고자 해당 부분을 그대로 옮겨본다.
 
"(최운산 장군은) 간도 제1의 거부였죠. 부를 일군 배경으로 중국이 토지 정리사업을 할 때 엄청난 규모의 황무지를 헐값에 불하받았습니다. 이를 조선 동포들과 함께 개간해 옥토로 바꿔 신한촌(新韓村)을 만들었습니다. 김성녀 할머니(최운산 장군 부인)가 생전에 말씀하시길 '우리 땅은 사흘을 둘러봐도 다 못 본다.'고 하셨습니다. 1960년대 우리가 부산에 살 때 봉오동전투에 참전한 부하 한 사람이 국제시장에서 우연히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에게 이야기하길 '최운산 장군의 땅 면적이 이 부산의 6배였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콩기름공장·국수공장·주류공장·성냥공장·비누공장·과자공장을 비롯한 다수의 생필품 기업을 운영했습니다.
 
또 대곡상이자 축산업자로 한 번에 수백 마리의 소를 창춘이나 훈춘으로 몰고 가서 팔았답니다. 이 소떼와 곡물은 러시아 군대 식량으로 들어갔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이게 연결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한 최재형(1858~1920) 선생이 소고기를 러시아군에 공급했다고 하는데 두 분의 관계를 유추해볼 수 있겠습니다. 최운산 장군은 오늘날 삼성과 비견 되는 재벌이었지만 40여년에 이르는 무장 독립운동으로 그 막대한 재산을 거의 다 소진했습니다. 말년에 남은 것이라고는 살고 있던 집과 그에 딸린 수남촌 토성리 일대의 땅 뿐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우리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태그:#최운산, #최운산장군기념사업회,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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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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