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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15일) 약산 김원봉 선생의 고향, 경남 밀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경남 합천에 들렀다. 부러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는 일정이다. 사람들은 흔히 합천하면 팔만대장경이 있는 해인사를 떠올리지만, 현대사를 공부하는 입장에선 일제강점기 원폭에 피폭된 분들이 모여 사는 피해자복지회관과 함께 전두환 생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역덕(역사 과목 덕후)'을 자임하는 11명의 고등학생 아이들을 동반한 답사여행이다. '현실에 안주 말고, 역사에 살라'는 주제로, 김원봉과 전두환의 삶을 대조해보자는 취지다. 지난 현충일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로 인한 여야 정치권의 논쟁 덕에 아이들에게도 김원봉은 일약 '스타'가 됐다.

그가 나이 스물둘에 만주로 망명해 무장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을 조직했다는 사실과 정규군으로서 조선의용대를 창설한 인물이라는 걸 모르는 경우는 없다. 1920년대 조선총독부와 동양척식회사, 각 지역 경찰서를 목표로 한 폭탄 투척 사건의 배후가 의열단이라는 것 역시 상식이 됐다. 의열단 관련 문제가 수능에 출제되면 정답률이 100%일 거라며 너스레를 떨 정도다.

그런데, 아이들은 김원봉보다 전두환에 훨씬 더 큰 관심을 보였다. 무엇보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이유일 테지만, 이미 내란 혐의로 사법 처리를 받은 데다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는 범죄자의 생가가 지어져 보존되고 있다는 점을 놀라워했다. 한 아이의 황당하다는 반응에 생가에서 그의 삶을 떠올리며 반면교사 삼을 수 있다면 외려 좋은 것 아니겠냐며 눙치기도 했다.

'김원봉' 찾아갔다가 '전두환'에 꽂힌 사연
 
전두환 생가 전경 찾는 발길이 끊겨서인지 대낮인데도 을씨년스러웠다.
▲ 전두환 생가 전경 찾는 발길이 끊겨서인지 대낮인데도 을씨년스러웠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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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사람이라면 코흘리개 아이들조차 전두환을 모르는 이는 없다. 길 가는 사람 아무나 잡고 물어도, 1980년 무고한 광주시민들을 학살하고 권력을 찬탈한 대통령이라고 막힘없이 대답한다. 나아가 '3S 정책'으로 시민들의 정치의식을 퇴보시킨 정치인, 숱한 공안사건을 조작해 사회의 지성을 마비시킨 독재자라는 설명까지 덧붙이곤 한다.

전두환의 고향은 경남 합천군 율곡면이다. 낙동강의 지류인 황강이 감싸 안은 궁벽한 시골 마을이다. 지금이야 광주대구고속국도 고령 나들목에서 합천읍내 방향으로 자동차로 20분 정도면 닿을 수 있지만, 도로가 뚫리기 전엔 사실상 고립된 마을이었을 듯하다. 한눈에 봐도 강과 산으로 둘러싸여 시간마저 멈춰버린 느낌이다. 

합천읍내와 경북 고령을 잇는 지방도로엔 주말인데도 공사장의 레미콘 트럭을 제외하면 지나다니는 차량이 거의 없다. 아스팔트 도로가 이렇듯 고즈넉하긴 어려울 것이다. 여느 대통령의 생가라면, 고속국도 나들목부터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어 초행길이라도 쉽게 찾아갈 수 있지만, 전두환의 경우엔 내비게이션의 도움 없이는 어림도 없다.

대형버스는 생가가 있는 마을 입구에 주차해야 한다. 별도의 주차장이 마련돼 있지는 않지만 전혀 문제될 건 없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충 헤아려 20년쯤 전부터 예닐곱 차례 찾아왔지만, 관광객들을 마주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곳이 한때 '관광지'였음을 보여주는 건 마을 입구에 세워진 공용 화장실뿐이다.

우리 일행이 생가에 들어서자 나이 지긋한 마을 주민들이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낯선 이들의 방문에 반가움보다는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 듯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이었다. 안채와 장독대, 마당 등 생가 주변은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지만, 아예 인적이 끊긴 탓인지 장난감 모형 집처럼 느껴졌다.

아닌 게 아니라, 생가는 초가가 아니라 '플라스틱 집'이었다. 생김새는 여느 초가집과 다를 바 없지만, 지붕을 볏짚이 아니라 플라스틱으로 이어 얹었다. 초가지붕 관리가 힘든 탓이긴 해도, 그만큼 이곳을 찾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방증이다.

개인적으로 전두환 생가를 명절 성묘하듯 찾는 이유가 있다. 굳이 '역덕' 아이들과 함께 바쁜 주말 시간을 쪼개 산 넘고 물 건너 방문한 까닭이기도 하다. 바로 생가 입구에 큼지막하게 세워놓은 스테인리스 안내판 때문이다.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가시지 않았다.

전두환이 불세출의 영웅? 이게 안내판이라니
 
전두환 생가의 안내판 일부 관광지의 안내판이라기보다, 아이들 말마따나 '전두환 숭배기'다. 교체를 요구했지만, 수십 년간 변함없이 그대로다.
▲ 전두환 생가의 안내판 일부 관광지의 안내판이라기보다, 아이들 말마따나 "전두환 숭배기"다. 교체를 요구했지만, 수십 년간 변함없이 그대로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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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관광지 안내판이라기보다 아전인수로 점철된 '전두환 숭배기'다. 안내판의 내용대로라면, 그는 범죄자가 아니라 불세출의 영웅이고, 그를 사법적으로 단죄한 이들이 외려 범죄자인 셈이다. 요약하면 이러하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학으로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공을 세워 주위의 신망을 얻고 끝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그가 5.16 군사정변 당시 육군사관학교 생도로서 쿠데타 지지 시위를 주동했다는 점과, 본인 역시 12.12 쿠데타를 일으켜 군권을 장악했다는 최소한의 사실조차 왜곡했다. 하물며, 5.18 광주학살을 통해 권력을 찬탈했다는 기록은 아예 언급조차 없다. 오로지 '유능하고 촉망받는' 군인으로서 승승장구한 진급의 기록만 안내판에 빼곡하다.

5.18에 대한 내용은 '1980년 중앙정보부장 서리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10.26사건을 전후하여 조성된 국가의 총체적 위기를 수습하는 데 지도적 역량을 발휘했으며, 이를 계기로 대통령으로 추대됐다'는 게 전부다. 5.18은 국가의 총체적 위기이고, 광주학살은 지도적 역량을 발휘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는 폄훼를 넘어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건 그의 퇴임 이후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아이들은 관광객들이 읽는 안내판도 공식적인 기록이랄 수 있는데 이렇게 써놔도 법적으로 처벌 받지 않는지 반문하기도 했다. 기록한 이가 안내판에 명시되어있지 않으니 처벌을 하려야 할 수도 없지 않겠느냐며 궁색하게 답변했다.

'퇴임하자마자 정치적 공격을 받아 모두 4년 넘게 유폐생활과 옥고를 치렀으나, 평화적 정권 이양의 전통을 세워나가기 위한 진통으로 여겨 모든 어려움을 감내했다.'

아이들은 이 문장의 왜곡된 부분을 정확히 끄집어냈다. 5.18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와 내란죄를 인정한 법원의 판결을 '정치적 공격'으로 표현했다며 발끈했다. 자화자찬 일색인 앞부분은 그렇다 쳐도, '정치적 보복의 희생양'으로 묘사한 이 부분만큼은 안내판의 기록자도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안내판을 처음 접한 아이들의 이러한 반응은 20년 전 받았던 충격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고는 하나, 이쯤 되면 누군가 '역사는 거짓'이라고 성급하게 일반화시킨다 해도 할 말이 없을 듯했다. 당시 문화관광부와 합천군청에 부러 전화를 걸어 안내판의 내용에 대해 항의 전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이후에도 안내판은 바뀌지 않았다.

광주의 아이들에겐 분노의 대상이지만, 5.18과 전두환에 대해 정확히 모르는 이들에겐 안내판은 자칫 '교과서'로 인식될 우려가 크다. 범람하는 가짜뉴스에 현혹된 이들이야 그렇다 해도, 유적지나 유물 앞에서 공책에 삐뚤빼뚤 글씨를 써가며 설명을 적는 어린 아이들이라면 특히 위험하다. 그들을 못 오게 막는 게 능사는 아닐 것이다.
 
거센 항의 받으며 광주법원 떠나는 전두환 전두환씨가 11일 오후 광주지법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관련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에 참석한 뒤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으며 법원을 떠나고 있다.
▲ 거센 항의 받으며 광주법원 떠나는 전두환 전두환씨가 지난 2019년 3월 11일 오후 광주지법에서 열린 5.18민주화운동 관련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에 참석한 뒤 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으며 법원을 떠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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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생가의 안내판 앞에서, 한 아이는 생각지 못한 두 가지를 배웠다고 말했다. 하나는 이 안내판을 직접 작성한 사람의 '생각 없음'과, 수십 년째 그대로인 안내판은 분노할 뿐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사람들의 무관심 탓이라는 깨달음이 그것이란다. 동행한 한 선생님은 이를 두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한계이자 위기의 징후'라고 덧붙였다.

우선, 사실 왜곡에 맞서기는커녕 권력에 빌붙어 전두환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지식과 양심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이들이 적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안내판을 읽고 분노한 사람이 우리뿐이었겠느냐며, 나서서 고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적다보니 그대로 방치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개별적으로 공무원들이 출근하는 월요일 관할 합천군청에 전화를 걸어 안내판 교체를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당장 합천군청 홈페이지 게시판에 접속해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질긴 놈이 이기는 법이라고,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고, 그렇게 요구가 늘어나면 조만간 바뀌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합천읍내의 시민공원의 이름이 전두환의 호를 딴 '일해 공원'이라는 걸 미처 알려주지 못했다. 합천댐 근처에 자리한 임란창의기념관 내 일부 건물의 현판이 전두환의 글씨라는 사실도 추후 알게 된다면, 아이들의 일손이 바빠질 것 같다. 그들이 이를 알게 된다면, '합천 땅이 전두환의 것이냐'고 대번 따지려들 것이다.

함께 분노할 줄 알고, 나름의 대안도 제시하는 아이들이 참 대견했다. 갈등을 빚고 있는 약산 김원봉의 서훈 문제도 전두환의 생가 안내판 내용을 고치는 등의 사소한 노력으로부터 시작된다는 한 아이의 지적에 감동했다. 이런 고등학생들이라면, 경남 합천에서 전두환 생가는 반드시 들러야하는 '관광지'로 자리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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