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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수기나 저작을 읽는 것은 언제나 슬픈 일이다. 특히나 그 죽음이 비극적이었을 경우 슬픔이 배가 된다. 동아시아를 쑥대밭으로 만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은 한국인과 중국인들로 하여금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갖게 하였고, 일본인들은 패전국민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게 되었다.

그 전란의 틈바구니 사이에 사람들은 어쨌든 살아갔고, 죽었다. <들어라 와다쓰미의 소리를>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에 참전했던 일본의 학도병들 이야기다. 이 책은 당시 학도병으로서 전쟁터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생전 기록이나 유서들을 모아놓은 문집이다.
 
 <들어라 와다쓰미의 소리를> 표지
 <들어라 와다쓰미의 소리를> 표지
ⓒ 서커스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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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 젊은이들이 겪은 혼란

이 책은 1949년에 처음 발간되었다. 이를 계기로 '와다쓰미의 회(わだつみの会)'라고도 불리는 '일본 전몰학생 기념회'가 결성되었다. 와다쓰미는 본래 일본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을 의미하지만, 이 책이 나온 후로는 일본 사회에서 전몰학생을 의미하는 일반명사처럼 사용되고 있다.

이 단체는 '전쟁 체험 상속'과 '전쟁 체험의 사상화'를 목표로 하였다. 나는 현재 이 단체의 이사를 맡고 계신 다카하시 다케토모(高橋武智,84) 선생을 수년 전 만나 뵐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이 단체의 결성 배경에 관해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일본의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학생들은 미 군정 실시 후 그야말로 대격변을 겪게 된다. 대부분 충군 애국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왔는데, 어느날 전쟁에 패하고 미군이 진주한 후로는 그런 가치가 완전 산산조각 나버린 것이었다.

다카하시 선생은 "전쟁이 끝나고 학교에 갔는데, 교과서의 군국주의적인 부분들이 모두 새카맣게 먹칠되어 있었다"라고 이야기 하셨다. 결국 일본인들은 이 전쟁이 무슨 의미였는지, 전쟁에서 산화한 사람들은 대체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충성을 바칠 나라도 군주도 모두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이들은 전쟁의 무의미함을 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와다쓰미의 회'는 마침 1년 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인해, 젊은이들 사이에서 "우리들도 다시 끌려가는 것 아니냐"라는 위기의식이 퍼져 활발하게 활동했다고 한다. 리츠메이칸 대학에는 와다쓰미의 동상이 건립되었고, 와다쓰미의 동상 앞에서는 "부전(不戦)의 맹세"가 울려퍼졌다.

"과거 우리의 선배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 거짓된 조국의 영광의 이름으로 남해의 고도 혹은 대륙의 광야에서 서늘한 시체가 되었다… 그 슬픔을 목도함 앞에서 우리들은 맹세한다. 다시는 총을 잡지 않고, 다시는 싸움의 장에 서지 않겠음을"이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이 맹세는 전후 일본의 반전과 평화운동이 어떤 시각에서 시작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들어라 와다쓰미의 소리를>이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전쟁을 신성시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몰자들을 일종의 신이나 영령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위급한 상황에 타인을 위해 자신의 인명을 희생한 사람들을 비난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추모의 방식을 넘어 죽은 이들을 신격화시키고, 국가주의적으로 또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군사주의의 단골 레퍼토리다.

단적인 예로,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는 이러한 기능의 중심에 서 있다. 내가 유슈칸(야스쿠니 신사 옆에 있는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 가장 어처구니 없었던 것은 일본과 일본의 전몰자들을 단순히 '국가를 지키려 했던 사람들'로 묘사한 것이었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전쟁에 대한 문제의식은 옅어진다.
 
이 책은 전쟁터에서 죽은 이들의 숭고함보다도, 그들의 내면을 따라 흐르는 개개인의 정신을 조명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록은 그저 개인으로서의 기록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전쟁터에서 죽어간 이들의 죽음의 원인에는 결국 군사주의로 치달은 국가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향집 뒤의 나무와 꽃들이 잘 있는지 궁금하다거나, 스시가 먹고 싶다거나, 책을 읽고 싶다는 아주 원초적인 내용을 읽고 있다 보면, 결국 이 사람들도 전쟁만 아니었으면 평범하게 살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당시 인텔리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대개 당시 최고 학부였던 제국대학 학생들이나 와세다, 게이오, 죠치 같은 이름난 학교 학생들이다), 다소 현학적으로 보일 수 있는 지적 유희들이 아기자기하게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 전쟁, 이렇게 가면 안 될 거 같은데…"라는 식으로 시대 상황을 평가하는 부분도 눈에 띈다.

다시 말해, 어쨌든 전쟁이 나서 군대에 가야 하니까 가긴 했는데, 아무래도 돌아가는 모양새가 좀 이상한 데다가, 생각보다 엉터리로 돌아가는 군대의 운영 방식이 영 납득이 안 간 모양이다. 나름대로 교육받은 사람들 입장으로 생각해 볼 때, 도저히 계산이 안 맞는 전쟁인데 이걸 왜 하는지, 왜 군대는 무의미한 짓을 자꾸 시키는지, 지휘관이라는 사람들 중에 왜 이렇게 자질 미달의 인물들이 많은지를 궁금해하는 내용도 많다. 이런 부분은 징병제를 겪고 있는 현대 한국의 젊은이들과도 비슷해 보인다.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과 전쟁터에서 죽어가는 사람
 
중일전쟁 이후 태평양전쟁 말기에 도달한 상황에서 남긴 수기들은 더욱 절절해 보인다. "원래 병약했던 나까지 병사로 끌어내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제국인 걸까"라는 이치이 주지(市井柔治)의 일기는 당시 일본군이 어느 정도까지 이상한 상태가 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그는 1942년 2월 입대한 뒤, 4월에 입원했고 1944년 8월 니가타 요양소에서 숨을 거둔다. 군 생활의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낸 것이다). 결국 일본군은 그 비대한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징병을 했고, 무리한 작전을 실행했으며, 무리한 시도를 하다 패망을 맞이했다.
 
이 책에는 카미카제 특공대원들의 편지와 기록도 담겨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당시 자살공격대원들이 대단한 군국주의자들이 아니었다는 점이 놀랍다. 이들은 이 작전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일종의 의무감으로 임한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결국 이 사람들이 죽기 전에 그리워한 사람들은 천황이나 국가보다도 가족과 친지들이 더 많았다는 점에서, 결국 전쟁을 기획한 사람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대부분 살고(일부는 전범으로 분류되어 죽지만), 오히려 순수한 젊은 목숨들이 하염없이 소비되었다는 점이 가장 슬프다고 평할 수 있겠다.
 
이 책은 싱가포르 창이 형무소에서 전범 재판을 받고 사형당한 기무라 히사오(木村久夫)의 기록으로 끝을 맺는다. 그는 상등병으로서 별로 특별한 권한이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지만, 상관의 겁박과 요청으로 범죄 사실 대부분을 함구했다가 결국 포로 학대 혐의를 몽땅 뒤집어 쓰고 죽는다.

그에게 불합리한 재판을 강요했던 상관들은 대부분 살아남았다고 한다. 이 와중에 그는 담담하게 결국 "만주사변 이래 군부의 행동을 허용해 온 전 일본 국민에게 그 먼 책임이 있다"고 평가한다.
 
지금 우리에게, 와다쓰미가 전하는 말
 
과연 전쟁은 무엇이며, 군대는 무슨 의미일까? 한국은 너무 오랫동안 전쟁과 군대를 신성시 한 나머지 전쟁을 마치 자연재해처럼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하는 분위기가 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그 재난을 막기 위해 분연히 일어난 사람들을 지나치게 신성시하고 있다.

전쟁은 어디까지나 국제 정치가 격돌하는 극단적인 상황일 뿐이고, 이 와중에 순수하게 가족과 고향을 지키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죽어 나간다. 그리고 물론 전쟁을 일으킨 자들은 살아남는다.

결국 이 책은 보다 건조하고 차분한 방식으로 전쟁을 관조하고 평가하고 있다. 군대가 여차하면 전쟁을 할 수 있는 구조로 고착화 되면 언제든 비극이 일어 날 수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평범한 사람들이 받게 된다.
 
나는 비단 이 이야기가 1940년대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 세대는 역사를 반면교사 삼아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고, 군대의 성격을 바꾸고, 군비 경쟁을 중지시킬 의무가 있다. 그럼으로써 이번 세기에는 이런 슬픈 기록이 또 다시 발간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안악희(전쟁없는세상 병역거부팀 활동가, 징병제폐지를위한시민모임활동가)님이 작성했습니다.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http://www.withoutwar.org/?p=15399


들어라 와다쓰미의 소리를

일본전몰학생기념회 (엮은이), 한승동 (옮긴이),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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