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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신곡동의 마을 북카페 '나무'가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설사 지금의 공간이 없어지더라도, 지역 주민들과 함께 땀과 눈물로 일궈왔던 역사만큼은 흔적을 남기고 싶어 마을카페 '나무'의 6년을 기록합니다.[편집자말]
수많은 카페에서 음료 이외의 디저트를 판다. 음료 판매로는 매출을 올리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가장 비싼 메뉴가 3500원짜리 초코라떼인 마을카페 '나무'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매출은 늘 고만고만하고 매달 월세 내느라 빠듯한 처지니 뭐라도 더 팔아야 한다는 제안이 운영위원회 회의 때마다 제기됐다. 안 그래도 커피 마실 때 같이 먹을 게 있으면 좋겠다는 주민들의 의견도 있던 터라 '우리도 디저트를 팔아 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많은 카페에서 흔히 파는 베이글과 샌드위치, 조각 케이크 등이 물망에 올랐다. 베이글은 질기고 딱딱해서 호불호가 나뉜다는 의견이 있었고, 조각 케이크는 단가가 비싸기도 하고 냉장 상태로 보관할 수 있는 쇼케이스가 필요하기 때문에 어려울 것 같았다. 최종 후보에 오른 제품은 샌드위치였지만, 냉장 보관 상태로 판매하는 콜드 샌드위치는 유동인구가 적고 재고 처리가 쉽지 않은 마을카페에는 맞지 않는 제품이었다.

"지난번 후원찻집에서 먹은 샌드위치 맛있던데, 그건 어때요?"

마을카페 이웃인 지역아동센터가 여는 후원찻집에서 먹었던 따뜻한 샌드위치를 떠올리고 한 말이었다. 안에 계란과 햄, 치즈만 들어갔지만 다들 맛있다고 평했던 샌드위치였다. 마침 마을카페 운영위원 한 명이 당시 후원찻집 주방에서 샌드위치를 만들었던 덕분에 레시피를 정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주문이 들어오면 바로 만드는 방식으로 샌드위치를 팔아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샌드위치 80인분이 만들어낸 기적

샌드위치 안에 들어갈 재료는 햄, 치즈, 채소를 넣은 계란 지단, 그리고 머스터드와 마요네즈, 유기농 설탕, 다진 피클로 만든 소스였다.

소스는 피클을 다져 물기를 뺀 다음 준비된 다른 재료들과 섞어 미리 만들어두고 식빵은 냉장실과 냉동실에 보관했다. 주문이 들어오면 양배추와 당근, 양파를 채 썰어 계란 지단으로 부치고, 식빵은 토스터기에 구운 후 소스를 양쪽에 발라 햄, 치즈, 계란 지단을 넣어 만드는 방식이었다. 한 번 먹어 본 사람은 모두 맛있고 양도 푸짐하다고 칭찬했지만, 막상 만들어보면 제법 손이 많이 가는 요리법이었다.

샌드위치가 날개 돋친 듯 팔리진 않았다. 하지만 샌드위치를 사 먹는 단골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매출이 소폭 상승했다. 소모임 회원들이 모임이 끝난 뒤 간단한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사 먹기도 하고, 아이에게 먹일 간식으로 샌드위치를 포장해가는 엄마들도 더러 있었다. 지역아동센터는 야외체험을 하러 가거나 캠프를 갔다가 돌아오는 날이면 아이들과 선생님이 먹을 간식으로 샌드위치를 주문하곤 했다.

한 번은 지역의 한 단체에서 교육 중간에 먹을 간식으로 샌드위치 80인분을 주문했다. 카페지기 혼자서는 힘든 양이었지만, 실무자 2명을 믿고 일단 주문을 받았다. 그런데 아뿔싸. 납품을 해야 하는 날짜에 실무자 두 명 모두 다른 일정으로 나올 수 없는 걸 미리 체크하지 못했다. 주문을 취소해야 하나, 아니면 혼자서라도 만들어야하나 고민하다가 실무자회의에서 내린 결론은 '일단 마을에 일손을 빌려보자' 였다. 곧장 SNS에 공지를 올렸다.
 
'샌드위치 공장 가동합니다. 오전 9시부터 1시간 반 가량 도와주실 수 있는 분~? 아르바이트비는 못 챙겨드리고요, 참으로 샌드위치와 커피 제공합니다.'


두 명이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어 도와주겠다는 댓글을 달았다. 전날 장을 봐두고 당일 아침에 일찌감치 카페 문을 열었다. 아침 일찍 지단만이라도 부쳐주고 가겠다며 두 명의 실무자가 계란을 풀고 지단을 만드는 와중에 일꾼들이 속속 도착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무임금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오겠다던 사람은 분명 두 명뿐이었는데.
 
 함께 샌드위치를 만드는 주민들
 함께 샌드위치를 만드는 주민들
ⓒ 안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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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샌드위치 80인분을 만들기 위해 일손을 보태준 출자자와 주민들
 샌드위치 80인분을 만들기 위해 일손을 보태준 출자자와 주민들
ⓒ 안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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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자만 해놓고 그동안 도와준 일이 없다며 찾아 온 재연씨와 마침 학교 공개수업날이라 반차를 썼다며 샌드위치 만들고 가겠다는 예전 마을도서관 관장님, 넷째 출산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쌍둥이 엄마까지. 그 날 여덟 명이 일손을 보태준 덕분에 샌드위치 80인분을 2시간 안에 뚝딱 만들어 수월하게 납품까지 마무리했다.

이날의 인건비는 현금 대신 참으로 제공한 커피 8잔과 샌드위치 8조각이 전부다. 매출가로 따지면 3만 원이지만 원가로 따지면 1명이 최저임금을 받고 2시간 동안 일한 것과 비슷한 금액이다. 하지만 그 1명과 내가 2시간 안에 80인분을 만들고 납품까지 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만들어진 샌드위치 80인분
 만들어진 샌드위치 80인분
ⓒ 안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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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명의 무임금 일손으로 제 시간에 납품을 완료한 80인분의 샌드위치
 8명의 무임금 일손으로 제 시간에 납품을 완료한 80인분의 샌드위치
ⓒ 안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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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을 버는 곳

그 후 우리는 단체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일일 샌드위치 공장'을 가동하면서 마을 사람들의 손을 빌렸다. 실무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메뉴를 줄이면서 지금은 더 이상 샌드위치를 만들지 않지만, 이러한 경험은 마을에서의 일이 노동의 산술적 가치만으로는 계산할 수 없으며 일반적인 임금 노동과 달리 사회적 관계망으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알려 주었다. 돈을 버는 노동이 아니라 관계를 버는 노동이라고나 할까.
  
마을에서 일한 만큼 받는 보상이 돈이 아닌 관계의 확장이라는 점은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자신의 행위가 타인을 돕고 공공성에 기여하는 일이라는 확신 없이는 동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월세를 못 내고 적자가 날 때마다 슬럼프를 겪었던 6년 차 무임금 카페지기로서 인건비 0원의 진실 뒤에는 아름다운 마을의 관계망이 자리한다는 식으로만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돈은 마을이 아닌 어디에서라도 벌 수 있지만 함께 울고 웃으며 경험과 지혜를 나눌 이웃을 얻는 일은 마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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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북카페 나무의 무임금 카페지기로 7년째 활동 중이며 성공회대 사회적경제대학원에서 마을공동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