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이번주도 로또를 산다
 이번주도 로또를 산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지난 2006년 로또 1등 당첨금 19억 원(세금 5억 원)을 8개월 만에 탕진한 뒤 절도죄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다가 최근 다시 붙들린 39세 남자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13년 전인 26세 때 그는 절도 범행으로 경찰 수배를 받던 중에 로또를 구입했다. 이것이 1등으로 당첨됐다. 그는 처음에는 당첨금 일부를 가족들한테 썼다. 하지만 돈의 대부분은 도박과 유흥업소에 탕진했다. 유흥업소 직원에게 수백만 원을 팁으로 건네기도 했다. 세금을 제외한 14억 원을 8개월 만에 썼으니, 매일 600만 원 정도를 뿌리고 다닌 셈이다.

당첨금 탕진 4개월 만에 대구 금은방을 턴 혐의로 적발된 그는 1년간 복역했고, 출소하자마자 금은방 18곳을 털다가 2008년에 다시 검거됐다. 2014년에도 135차례의 절도 혐의로 붙잡혔다.

이번에 체포된 것은 부산·대구 지역 식당 16곳에서 3600만 원어치의 금품을 훔친 혐의 때문이다. 부산 연제구의 주점에서 400만 원짜리 귀금속을 훔치고 택시를 타고 도주하는 장면이 CCTV에 포착된 게 검거의 단서가 됐다.

택시에 탑승한 그는 기사에게 "예전에 경남에 살면서 로또 1등에 당첨된 적이 있다"고 자랑했다. 13년 전 그 일을 무용담처럼 자랑하고 다녔던 모양이다. 기사로부터 그 말을 전해 들은 경찰은 경남 거주자 중에서 로또 당첨자를 검색하는 방법으로 그의 신원을 특정해냈다.

이번 경우처럼 복권 당첨금을 단기간에 탕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종종 화제가 되고 있다. 갑자기 굴러들어온 거액을 주체하지 못하고 몇 년 내에 날려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39세 남자의 '8개월 만의 당첨금 전액 소진'은 탕진 기간으로 따졌을 때 상위 기록(?)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제비뽑기는 신성 모독'... 복권이 금지됐던 시절

복권으로 인한 해프닝들은, 국가라는 최고 권력집단이 이 사업에 뛰어들면서부터 생기기 시작한 풍경이다. 국가권력의 주관과 보증 하에 수많은 사람과 거액의 금액이 여기에 몰려들면서, 복권이란 존재가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경우에 따라 개인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풍경도 생겨나게 됐다.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투쟁을 계기로 기독교의 전통적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독교의 권위가 견고했던 그 이전만 해도, 유럽 국가권력이 복권사업을 운영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복권의 필수적 요소인 추첨 혹은 제비뽑기가 신성 모독으로 간주됐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니버트(David Nibert) 미국 위튼버그(Wittenberg)대학 교수가 집필하고 신기섭 한겨레신문 기자가 번역한 <복권의 역사>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16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제비뽑기는 종교의식 도중 어떤 결정을 내릴 때나 하는 것이었다. 당시엔 신의 의지를 발견하기 위해 제비뽑기를 주기적으로 실시했다. 따라서 복권 놀음은 신성모독이자 신의 섭리에 도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비난의 대상이었다."

제비뽑기는 고대 동아시아에서도 신성한 행위로 인식됐다. <주역> 해설서 중 하나인 <계사전>에 나오는 점치기도 제비뽑기 비슷했다. 대나무 가지 50개를 손으로 붙든 채 마음을 거룩히 하고 하나씩 뽑아 드는 방법으로 점을 쳤다.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정창군 왕요)도 제비뽑기로 왕위에 올랐다. 고려시대 역사를 압축적으로 정리한 <고려사절요>에서는 "종실(왕족) 몇 사람의 이름을 써서 심덕부·성석린·조준을 보내 계명전에 가서 태조에게 고하고 제비를 뽑았더니 정창군의 이름이 뽑혔다"고 말한다.

태조 왕건의 신위 앞에서 제비를 뽑는 행위는 '이 비상시에 누가 고려 임금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려 시조신(왕건)의 의사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오늘날 같으면 추첨으로 대통령을 뽑겠다고 하면 "말세가 됐구나"라는 탄식이 나오겠지만, 추첨이 신의 뜻을 발견하는 행위로 간주되던 시절이었으니 제비뽑기로 임금을 결정하는 일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제비뽑기의 남용에 대한 거부감은 이슬람 경전 <코란>에서도 발견된다. <코란>에서는 화살을 사용한 제비뽑기로 내기를 하는 행위를 두고 "이것은 커다란 죄악도 되고, 인간에게 이익도 된다"면서 "죄악이 이익보다 더 크다"고 말한다.

이렇게 제비뽑기가 신성하게 간주되던 시대에는, 국가가 도박 사업을 벌여 재정을 확충하는 식의 발상이 생겨나기 힘들었다. 그러다가 중앙집권적 국민국가(민족국가)와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현상이 인류 역사에 등장하면서부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국가가 복권 사업에 유혹을 느끼게 된 계기와, 대중이 그 사업에 호응하게 된 계기를 국민국가와 자본주의라는 두 가지 현상에서 찾을 수 있다. 

비종교적 목적의 추첨행위가 금기시됐던 유럽에서, 국가 권력이 도박을 허용하거나 복권 사업에 뛰어든 계기는 중앙집권적 국민국가와 자본주의의 성장에서 찾을 수 있다. 국가가 복권 사업에 유혹을 느끼게 된 계기와, 대중이 그 사업에 호응하게 된 계기를 국민국가와 자본주의라는 두 가지의 역사적 현상에서 도출할 수 있다.

일석이조의 '복권 사업'  
 
 복권은 불황일수록 더욱 잘 팔린다고 한다.
 외국의 복권
ⓒ pixabay

관련사진보기


지방분권적 봉건국가가 중앙집권적 국민국가로 이행하는 단계에서, 국가 경영자들이 느낀 애로 사항은 국가 유지 비용의 증가였다. 세금을 거두는 것만으로는 그 비용을 충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래서 복권제도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복권의 역사>에 나오는 또 다른 대목이다.

"16세기에 이르러 경제 및 사회체제가 변화함에 따라 재정이 급속도로 어려워졌다. 국민국가 형성에 참여한 특권층은 그들의 제국을 관리·보호·확대하고 자신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유지할 자금이 필요했다. 1569년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은 국고를 유지하기 위해 복권을 허용했다."

영국 정부는 북아메리카 식민지를 착취하는 데도 복권사업을 활용했다. 1612년에 영국왕 제임스 1세는 민간 기업인 버지니아 컴퍼니가 식민지 개척을 명분으로 복권을 발행해 활동 자금으로 충당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국가가 복권 사업을 벌이더라도 대중이 호응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복권 사업이 '히트'를 친 것은 대중이 맞장구를 쳤기 때문이다. 대중이 그런 반응을 보이게 된 것은 다름아닌 자본주의 발달 때문이었다.

약육강식의 무한경쟁이 허용되는 자본주의 속에서, 대다수 노동자들은 불안한 처지로 내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본주의는 대중에게 자유와 동시에 불안감도 선물했다. 전통적인 공동체의 예속관계에서 해방된 대중은 자유시장 경제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했다. 대부분의 대중은 이런 체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수완을 발휘해 경제적 지위를 높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한달 한달 살아남기에도 벅찬 삶을 살아야 했다. 

"지위 향상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들과, 그저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상당한 규모의 복권 시장을 형성하는 밑바탕이 됐다"고 <복권의 역사>는 말한다. 불안한 상황으로 내몰린 노동자 상당수가 복권 당첨에 희망을 두게 되고, 이것이 복권 사업의 기반을 튼튼히 다져주었던 것이다. 

민중의 저항이 수반되는 조세제도를 피해 손쉽게 자금을 마련하려는 국가의 욕구와, 노동자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부자가 되기 힘든 자본주의 속에서 심리적 안정과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대중의 욕구가 서로 맞물려 복권제도가 대박을 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복권사업은 국가 재정을 확충하는 데 뿐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무마하는 데도 기여했다. 국가권력 입장에서는 돈도 벌고 저항도 억압하는 일석이조의 사업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확산된 복권사업이 국민국가시대 자본주의 문화의 대표적 현상 중 하나로 자리잡으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의식을 좌우함은 물론이고 이따금은 개인의 인생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 5백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이 같은 문화 현상 속에서 '39세 남자'와 같은 해프닝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