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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후배로부터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후배의 지인이 독립출판으로 펴낸 책을 사서 내게 선물한 것이다. "영화와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 쓴 책이라 문장이 좀 어려워요"라는 평가와 함께 받은 그 책은 몇 장을 읽다가 덮었다.

저자가 글의 기본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글을 꾸미는 일에만 신경 쓴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책을 선물해 준 후배의 마음은 고마웠지만 읽어야 할 좋은 책들이 차고 넘치는데 굳이 시간을 들여 읽을 필요성을 느낄 수 없는 글이었다.

독립출판 전성시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책을 펴내고 작가가 될 수 있다. 인터넷에서도 SNS에서도 글은 넘쳐난다. 그야말로 작가 홍수 시대,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는 이 시대 작가를 지망하는 모두를 향해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글자가 모여 있다고 다 문장인가 ? 문장이 모여 있다고 다 한 편의 글이라 할 수 있는가 ?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 추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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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넘쳐나는 것이 글쓰기 교본이다. 서점마다 글쓰기교본 코너가 따로 있을 정도다. 나도 글쓰기 교본을 적잖이 읽어 봤지만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를 보니 최근 출간되는 글쓰기 교본 대부분이 3백여 년 전 연암 박지원이 제시한 글쓰기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이 책은 소설 형식으로 글쓰기의 기본을 가르치고 있어 흥미를 더한다. 조선시대 최고의 문장가로 알려진 연암 박지원이 문체반정(박지원의 글을 비롯한 소품문의 유행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정조가 직접 나서 글쓰기를 바로 잡겠다는 뜻으로 시행한 고문 회복정책)으로 궁벽한 시골에 잠시 은거하게 된다.

그때 이 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퇴락한 양반 김향서가 아들 지문을 데리고 연암을 찾아온다. 과거 시험을 통과해 출세하고 싶은 꿈을 지닌 17세 청년 지문은 아버지 손에 끌려 얼떨결에 연암 밑에서 새로운 글쓰기를 배우게 된다. 글을 배우러 온 지문에게 연암은 대뜸 묻는다.
 
연암 : 자네는 몇 자나 아는고?
지문 : 네?
연암 : 몇 자나 아느냐고 물었느니라.
 
나름 영특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천자문>과 <사서삼경> <사기> 등을 공부해 온 지문은 이 질문에 몹시 당황하는데 나도 이 질문이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누가 내게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지문은 "아는 글자가 없습니다"라고 답한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내가 든 생각은, 글자를 아는 기준이 연암과 같다면 나 또한 "아는 글자가 없습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암이 '아는 글자'라고 하는 것은 그 글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을 때를 일컫는 말이었다.

연암이 지문에게 내린 첫 번째 훈련은 책을 천천히 읽으라는 것, <논어>를 대부분 외우고 있기까지 한 지문은 책을 천천히 읽는 일이 오히려 어렵다. 우리 시대는 어떤가? 속독이 독서의 기본 훈련이 된 시대, 수학능력시험의 지문이 한 페이지에 달해 빨리 읽는 것이 독서의 최대 덕목이 된 이 시대에도 천천히 읽는 훈련은 필요할까?
 
독서는 푹 젖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푹 젖어야 책과 내가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된다. 이것이 내가 너에게 주는 첫 번째 가르침이다.
 
천천히 읽는다는 것은 깊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지문은 <논어>를 천천히 읽으면서 그동안 단순히 외우느라 놓쳤던 의미를 비로소 다시 깨치고 천천히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된다.

저자는 이 책 자체가 '박지원에 대한 오마주'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 책에 나오는 인용문들은 전부 실제 박지원의 글에서 가져왔다고 출처를 밝히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연암이 가르치는 글쓰기 기법이 요즘 나오는 글쓰기 교본의 기본과 놀랄 정도로 닿아 있다는 사실이다. 연암의 글 중에 단연 가장 공감을 이끌어 내는 부분은 글쓰기를 병법에 비유한 부분이다.
 
글을 잘 짓는 자는 아마 병법을 잘 알 것이다. 비유컨대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요, 제목은 적국이다...글자를 묶어서 구(句)를 만들고 구(句)를 모아서 장(章)을 이루는 것은 대오를 이루어 진을 치는 것과 같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중 글쓰기를 병법에 비유한 부분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중 글쓰기를 병법에 비유한 부분
ⓒ 추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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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문이 글쓰기에 관해 써낸 이 글은 실제는 연암 박지원의 글이다. 언뜻 보면 무슨 말인가 싶지만 곰곰이 새겨보면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말이다.
 
 군대는 지휘하는 장수가 있어야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군사의 수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지휘 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제대로 운용되지 않습니다. 글도 마찬가지라 생각했습니다. 글자만 늘어놓는다고 해서 글이 되지는 않습니다. 명확한 주제를 가지고 전개해야 제대로 된 글이 완성 됩니다. 
 
"글자가 모여 있다고 다 문장인가? 문장이 모여 있다고 다 한 편의 글이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변인 셈이다. 실제 글 뜻을 새길 '장수'는 없이 뭔가 번듯하고 그럴싸해 보이는 군사인 '글자'들만 난무하는 글이 넘쳐나는 시대다.

초등학교의 '글짓기' 시간을 '글쓰기'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오덕 선생님 역시 흉내내는 법만 배워 표현만 화려할 뿐 정작 내용은 없는 아이들의 글에 상을 주지 말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글쓰기'는 글을 꾸며내서 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표현하는 '글쓰기'가 돼야 한다는 이오덕 선생님의 맥락은 연암과도 닿아 있다.

연암이 지문에게 낸 마지막 문제는 <사기>를 쓰는 사마천의 마음을 헤아려 보라는 것이다. 남자로서 치욕적인 궁형을 당하면 자결을 하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다. 그러나 살아남아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 사마천이 완성한 <사기>는 시대를 뛰어넘어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준다. 질문에 대한 지문의 답은 이것이다.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글의 힘을 믿는 것입니다.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 잊지 않고 모든 기쁨과 분노와 슬픔을 글에 쏟아 붓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없다면 한순간 방향을 잃고 헤메게 되지요.
 
어떻게 하면 조횟수를 높이는 흥미있는 글을 쓸지, 글쓰기의 다양한 기법에 관심이 넘쳐나는 요즘 사람들, 그러나 글 쓰는 이가 지녀야 할 태도에는 과연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비록 내가 쓰는 글 한 편이 엄청난 대작은 아니어도, 비록 내가 엄청난 대작가가 아니어도 연암 박지원이 전하는 글쓰는 이의 태도는 글 쓰는 이들이 한번쯤은 되새겨 보아야 할 말이 아닐까?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나는 책을 보다가 인상적인 구절에는 항상 밑줄을 긋는다. 다시 한 번 챙겨보고 싶은 문장이 있을 때는 포스트잇을 붙여 찾기 쉽도록 한다. 그렇지만 스토리 위주인 소설책을 읽으면서 포스트잇을 많이 붙이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데 이 책은 다 읽고 보니 이렇게 많은 포스트잇이 책에 붙어 있었다. 그만큼 새겨두고 싶은 구절들이 많은 책이었다. 과거 공부만이 출세의 길이라고 생각하던 지문이 소설 후반에 전혀 다른 반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소설적 재미를 더한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에 붙힌 포스트잇들
 기억하고 싶은 문장들에 붙힌 포스트잇들
ⓒ 추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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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있으나 끝은 없는 글쓰기 공부, 긴 여정을 가면서 곁에 항상 두고 싶은 책이다. 연암 박지원의 가르침처럼 '하나를 알더라도 제대로 알기 위해 정밀하게 독서하는 법'을 이 책을 통해 배워야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저자의 개인 블로그 <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에도 연재됩니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박현찬, 설흔 지음, 위즈덤하우스(2007)


태그:#글쓰기교본,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연암 박지원, #열하일기, #글쓰기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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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방송작가, (주) 바오밥 대표, 바오밥 스토리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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