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 글은 지난 2월, 우리 가족이 일주일 동안 머문 네덜란드 인상기다. 짧은 여행이라 영혼을 깨우는 깊은 통찰은 기대하지 못하더라도 무뎌진 감각을 꼬집어 잠자는 감성 정도는 일깨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씁니다. - 기자말

출발 시간이 임박해 우리는 플랫폼으로 뛰어 갔다. 노란색 이층열차가 쉬익 쉭, 호흡을 고르며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다. 급히 열차에 올랐다. 이층으로 올라간 후 혹시나 싶어 좌석에 앉아 있는 중년부인에게 물었다.

"실례합니다. 이 기차 로테르담 행이 맞나요?"

고운 인상의 중년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그맣게 뭐라고 속삭였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알아듣진 못했지만 로테르담 행이 맞는 건 확실했다. "땡큐!" 나는 대한남아답게 씩씩하게 답했다. 
  
그 사이 아내와 딸은 몇 칸 앞에 자리를 잡았다. 마주보는 좌석인데 맞은편엔 지긋한 나이의 장년 남자가 이미 앉아 있어 나는 뒤 칸에 따로 앉아야 했다. 우리 가족이 몇 마디 말을 좌석 너머로 주고받는데 맞은편 남자가 정색을 하면서 "This is quiet car!" 한다. 조용한 칸이라고?

그제서야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 부인이 나한테 속삭인 거며, 어쩐지 사람들이 지나치게 얌전히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년 남자가 손으로 차창을 가리켰다. 창문엔 'silence'가 적혀 있다. 아하, 정숙칸이구나!

정숙칸을 지정하려면 사람들이 들어오는 입구에 아이콘(기호)이라도 그려 놓았으면 알아보았을 터인데, 창문에 그것도 시트지로 희미하게 붙여놓으니 우리가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정숙 기호도 정숙하게 붙여놓았다.

그동안 여행하면서 여유롭고 친절한 사람들만 만나다가 갑자기 버럭, 하는 남자를 보니 당황스러웠다. 장년 남자들의 버럭성 분노 표출은 이곳이라고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일어나서 옆 칸으로 갔다. 거기에는 보통의 열차 객실에서 들려오는 적당한 소음, 즉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slience'라고 적힌 창문. 낮에는 잘 안보인다.
▲ "slience" 글자 "slience"라고 적힌 창문. 낮에는 잘 안보인다.
ⓒ 황인규

관련사진보기

 
하를렘

적당한 소음 속에서 우리 가족은 마주보는 좌석에 앉았다. 기차가 출발한 지 십분 쯤 지나자 하를렘(Haarlem) 역에 도착했다. 이곳은 뉴욕 할렘 가(街)의 지명이 유래된 곳이다. 네덜란드는 1621년 서인도회사를 창설하고 신대륙에 식민지 건설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식민지 건설의 의도가 코미디에 가깝다.

앞마당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바, 말루쿠 해역에서 영국과 마찰을 빚고 전쟁까지 치른 네덜란드는 영국이 북아메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걸 보고 순전히 훼방을 놓기 위해 서인도회사를 만든다(영국이 인도네시아에서 자신들의 영업을 방해한 만큼 그들도 영국의 나와바리에서 몽니 부리기 위해서).

1626년 서인도회사는 신대륙에서 인디언에게 (장난감에 가까운) 자질구레한 상품 60길더 어치를 주고 땅을 샀다. 오늘날의 맨해튼 섬이다. 이를 기반으로 도시를 확장하면서 이름을 새로운 암스테르담(뉴암스테르담)이라고 명명했다. 뉴암스테르담의 행정 구역에도 고향의 지명을 같다 붙였다. 그중 하나가 하를렘이다.

1664년 3차 영란전쟁을 치른 후 영국과 네덜란드는 브레다 조약을 맺었다. 영국은 인도네시아 반다해에서 철수하고, 네덜란드는 뉴암스테르담을 영국에 넘기면서 카리브해의 수리남을 챙겼다. 뉴암스테르담을 접수한 영국은 도시 이름으로 뉴욕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동네 이름까지 바꾸진 않았으니, 브루클린, 월스트리트 등이 네덜란드에서 유래된 뉴욕의 지명이다.

하를렘 하면 우선 떠오르는 사람이 화가 프란스 할스(Frans Hals, 1582~1666)다. 초상화의 대가인 그는 하를렘에 머물면서 많은 의뢰를 받았는데 특이하게도 제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해도 하를렘을 벗어나지 않았다. 자기에게 그림을 의뢰하고 싶으면 하를렘까지 오라고 했다.

그가 하를렘의 화가 길드 조합에 가입돼 있는 탓도 있지만 그건 핑계에 불과했다. 부자들은 대부분 암스테르담에 기거했기 때문에(그리고 부자들은 대개 바쁘다) 화구를 챙겨 들고 뛰어갈 법도 하건만 할스는 자신의 화실에서 그리기를 고집했다. 화가가 돈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성질이 드러워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자존심 하나는 알아줄 만했다.
 
프란스 할스의 작품 '미그르 컴퍼니'
▲ 미그르 컴퍼니  프란스 할스의 작품 "미그르 컴퍼니"
ⓒ 황인규

관련사진보기

  
예컨대 '미그르 컴파니'(빈약한 부대라는 뜻이다)라는 제목의 집단초상화를 의뢰 받았을 때 할스가 총 하를렘에 온 사람들만 그리는 바람에 나머지는 피에르 코데라는 화가가 암스테르담에서 그렸다. 작품에서 왼쪽에 9명은 할스가, 오른쪽 7명은 코데가 그렸다.

그림의 대가로 받은 보수는 '더치페이'라는 말이 유래된 네덜란드 사람답게 n분의 1로 나누어 9:7로 나누어 가졌다. 과연 이 그림에서 보수를 등장인물의 머릿수대로 나눈 것이 합당한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할스와 코데의 그림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세부묘사에서 할스가 그린 인물들의 표정이 훨씬 풍부하고 다양하다. 뿐만 아니라 구도에서도 짜임새가 있어 시선의 집중을 유도한다. 어쩜 할스는 돈에 악착같은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스를 알게 된 것은 고흐가 그를 극찬했기 때문이다. 파리에 가기 전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할스의 초상화에 감탄을 하고 그중에서도 '미그르 컴파니'에 대해 상찬을 늘어놓는다.

고흐가 특히 주목한 것은 왼쪽 첫 번째와 여덟 번째(할스가 그린 마지막) 인물이다. 왼쪽과 오른쪽 끝에 화려한 옷을 입은 색을 기둥처럼 세워놓고 그 사이 평범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배치했다. 이들 색상의 나열은 네덜란드 국기의 오렌지, 화이트, 블루를 연상시키며, 특히 올리브그린색 옷을 입은 첫 번째 사람과 오렌지색 휘장의 조화는 환상적이라고 했다.
 
올리브그린색 옷을 입은 사람
▲ 첫번째 사람  올리브그린색 옷을 입은 사람
ⓒ 황인규

관련사진보기

   
개인적으로 할스의 작품 중 최고로 치는 건 '하를렘 양로원의 여성 이사들'이다. 할스는 청장년기까지는 경쾌하고 낙천적인 초상화를 그리다가 말년에 이르러서는 장중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화풍이 변한다. 경제적인 곤궁으로 인해 비관적인 관점이 앞선 탓도 있었겠지만.

이보다는 노년에 이르러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진중해졌기 때문이라는데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젊은 시절엔 패기와 낙천으로 세상의 밝은 면만을 바라보다가 나이가 들수록 세상살이의 쓴 맛을 알게 되면서 비관적이 되는 것처럼. 할스도 사람들과 부대낄수록 인간상의 어두운 면이 자꾸 보이게 되고 이를 화폭에 담고자 하는 하지 않았을까.
 
프란스 할스 작
▲ 하를렘 양로원의 여성 이사들 프란스 할스 작
ⓒ 황인규

관련사진보기

   
'하를렘 양로원의 여성 이사들'은 구도와 색상이 단조로운 대신 흑백의 농도에 차이를 두어 변화를 꾀하고 있다. 폭넓은 흑백의 색조가 다양한 색상의 사용 이상으로 풍부함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구도와 단조로운 색감에서 인물들의 표정에 집중하게 되고 그들의 심리적 상태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심리 묘사의 걸작(김영은)으로 꼽히는 이 작품을 그릴 때 할스는 여든이 넘었다. 다양한 물감을 살 수 없을 정도로 궁핍하고, 손이 떨리고 시력이 약하고 손이 떨린 상태에서 겨우 완성했다고 한다.

이러한 불운에도 그는 계속 그림을 그렸으며, 말년에 들어 인간의 고뇌와 비극에 대한 깨달음이 느껴지는 걸작들을 탄생시켰다. 구도가 단순화되고, 색채 사용이 절제된 반면, 흑백의 색조를 더욱 폭넓고 다양하게 구사하여 장중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색채가 최소화된 것은 물감을 살 수 없을 만큼 궁핍했기 때문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두세 가지 색만으로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한 셈이었다.

말년에 그린 〈하를럼 양로원의 여성 이사들〉, 〈하를럼 양로원의 이사들〉 등은 할스의 이런 특징이 극대화된 작품으로, 심리 묘사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 작품들을 그릴 때 그는 여든이 넘은 노인으로, 손이 떨리고 시력이 약해져 형태를 비례에 맞춰 제대로 그릴 수조차 없었다고 한다.

하를렘을 알리는 이정표를 보자 문득 든 생각이다. 당장이라도 내려가 '할스미술관'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다른 도시들에 대한 기대가 들썩이는 엉덩이를 주저앉혔다. 역사 밖으로 삐죽이 보이는 하를렘의 건물들을 바라보며 입맛만 다셨다.

태그:#PERDIX, #홀랜드 인문산책 2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설가. 『디고』, 『마지막 항해』, 『책사냥』, 『사라진 그림자』(장편소설), 르포 『신발산업의 젊은사자들』 등 출간. 2019년 해양문학상 대상.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