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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며 취재기자들의 질문을 받자, 손으로 마이크를 밀며 답변을 거부하고 있다.
▲ 취재 기자 질문에 답변 거절하는 양승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며 취재기자들의 질문을 받자, 손으로 마이크를 밀며 답변을 거부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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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이 거의 매번 오전 시간을 검찰과 변호인의 절차 공방으로 보내고 있다. 급기야 검찰은 "이 속도면 40주 동안 (증거) 검증만 하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 심리로 열린 8차 공판은 18일, 19일과 다르지 않았다. 이날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변호인들은 증거조사 방식을 수시로 문제 삼으며 재판 속도에 제동을 걸었다. 검찰은 반발하며 재판부에 또 다시 신속한 진행을 요구했다.

첫 번째 브레이크는 검찰이 압수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USB 문제였다. 양 전 대법원장 쪽은 관련 의견서를 6월 24일까지 제출하라는 재판장의 말에 기한을 늦춰달라고 부탁했다. 박남천 부장판사는 "충분히 주장을 냈고, 입증도 됐다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주장할 게 남았냐"더니 "피고인들에게 기회를 드리겠다, 의견서 제출기한은 화요일(25일) 오전까지로 하겠다"고 정리했다.

재판마다... 변호인 '늦춰달라' 검찰 '빨리하자'

그 다음은 검찰이 준비한 서증설명서였다. 5월 31일 2차 공판 때 검찰은 증거로 신청한 자료들의 내용, 입증취지를 설명하는 서증설명서를 냈다. 당시 변호인들은 여기에 자신들이 증거 채택에 동의하지 않는 내용까지 들어갔다고 지적했고, 재판부는 검찰에 수정하라고 했다. 21일 서증설명서는 그 수정본이었다. 그런데 변호인들은 또 다시 같은 문제를 지적했고, 재판부는 "일단 문제의 소지가 있으니까 반환하겠다"고 했다.

검찰은 재판부가 허용한 범위 내에서 증거 설명을 기재했다며 반발했다. 또 박주성 부부장 검사는 "서증설명서 자체를 재판부에서 보지 못한 상태에서 변호인 주장만 듣고 반환을 결정했는데, 다음엔 실제 설명서에 변호인이 주장하는 우려가 있는지 본 뒤 (반환 여부를) 결정해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확인하는 것 자체가 적절하냐는 문제가 있어 변론 내용 기초로 결정한 것이니 양해해달라"고 했다.

또 다른 변수는 내용이 같은 문건 여러 개를 어떻게 증거조사하느냐는 문제였다. 검찰은 A라는 사람을 증인신문할 때 그에게 제시할 문건 B가 다수라면, 동일한 서류 가운데 대표순번을 정해 그것만 먼저 검증한 뒤 증인에게 보여주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강우 검사는 "현재 증거의 5%를 검증하는 데에 4회 기일을 소요했다"며 "이 속도면 80회 기일, 40주 동안 검증만 하고 어떠한 본안 심리 없이 양승태 피고인 구속기한(8월 10일)이 만료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 변호인, 이상원 변호사는 최초 보고서 작성 후 임종헌 전 차장 등 다른 사람이 수정한 내용이 있는지를 전부 확인한 다음 증인에게 제시해야 한다며 반대했다. 그는 "공소사실 입증을 위해 심의관에게 물어보기 위해선 그가 작성한 보고서가 무엇인지 확인해 제시하는 게 당연한 원칙이고 심리의 올바른 길"이라며 "원칙은 증인으로 나오는 사람이 작성한 문건, 아니면 어떤 부분은 누가 수정했다고 확인한 이후에 제시하는 게 타당하다"고 말했다.

절차만 다투다 또 사라진 2시간

'이러다 40주 동안 검증만 하겠다'는 검찰의 우려는 불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양 전 대법원장 구속 4개월 만에 첫 공판이 열릴 정도로 줄곧 헛바퀴만 돌고 있다. 최근 열린 재판들도 오전 심리(10~12시)는 어김없이 '이렇게 하면 안 된다/된다'만 다투다가 끝났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집중심리해야 하는 재판은 부득이한 사정이 없는 한 매일 계속 개정해야 하지만, 재판부는 변호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가급적 주 2회만 진행하고 있다. 또 가급적 오후 7시, 늦어도 9시쯤엔 재판을 마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오전 두 시간을 절차 공방에 쓰고, 준비한 서증조사를 다 마무리 짓지 못하는 상황을 매번 되풀이하고 있다.

재판부가 증거 검증만 마치면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사건은 검찰이 신청한 증인만 211명에 달한다. 피고인들이 검찰 수사 자료 대부분을 증거로 쓰는 데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 가운데 임종헌 전 차장, 이민걸 전 기획조정실장 등 26명을 먼저 증인으로 채택했고 신문 일정을 잡았다.

하지만 6월 21일 첫 증인신문 대상자였던 정다주 부장판사도, 시진국 부장판사(6월 26일)도, 김민수 부장판사(7월 3일)도 재판 일정 등을 이유로 날짜를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나머지 증인들이 언제, 어떤 까닭으로 불출석 사유서를 낼지 모른다. 시간은 계속 흐르지만, 사법농단 재판 시계바늘만 더디게 돌아가고 있다.

태그:#양승태, #사법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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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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