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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마초들이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나는 익히 보아왔다. 초등학교 때 멀쩡하던(?) 남자애들이 중학교 올라가며 대거 마초의 대열에 합류하는 변화상을 딸애의 전언으로 자주 접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어린 마초들의 부모는 전혀 모른다. 자기 아들들을 여전히 착하고 순진하다고 말한다.
 
갑자기 다른 인간이라도 된 양 구는 어린 마초들의 행보는 대담하다. 자신의 페북을 '여혐'으로 도배하거나, '야동'을 개인 톡으로 보내거나, 교실에서 성행위 동작을 여자 급우들 앞에서 재현하거나, 여자 급우의 가슴 부분을 잘못 친 척 어물쩍 만지기까지, 차마 지면에 다 전하기 어려울 정도다.

재작년 여교사의 수업 시간에 교실에서 벌어진 중학교 남학생들의 집단 자위행위는 어린 마초들이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나?
 
남자들,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니냐며, 자정에 나선 두 남성이 있다. 대체 어떻게 남성성을 정의하길래 이 모양이 되었는지 묻는 두 남성이 있다. 그냥 묻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년간 천착해온 연구와 활동을 통해 새로운 남성성을 제안하고 있다.

작금의 '버닝썬 게이트'와 '서울교대 성희롱사건' 등은 새로운 남성성을 정립해야 하는 시급성을, 이제 더 이상 뒷전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알람이다. 남성들이여. 신호에 응답하라.
 
폭력성이 남성성으로 대체되는 상황에 절치부심하던 두 남성은 각각의 저서 <맨 박스>와 <마초 패러독스>를 통해 작심 발언을 시작한다. 왜곡된 남성성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를 찾던 토니 포터는 자신이 아들을 가르치던 방식에서 시작해 사회규범으로 확장시킨다.

<마초패러독스>의 잭슨 카츠는 남성이 본격적으로 '보이 코드(boy code)'를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접하는 전방위적인 매개들, 미디어, 영화, 랩, 스포츠 등을 살피고, 이를 통해 왜곡된 남성성이 어떻게 규범화하게 되는지를 면밀히 파헤친다. 토니 포터는 살살, 잭슨 카츠는 다소 빡세게 이야기를 개진한다.
 
토니 포터 "남성다움 같은 건 없어"
 
토니 포터 지음 '맨박스'
 토니 포터 지음 "맨박스"
ⓒ 한빛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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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박스>의 저자 토니 포터는 교육가이자 사회 운동가다. 뉴욕 브롱크스 지역 커뮤니티에서 약물 중독 관련 활동을 하다, 유색인의 여성과 빈곤층 여성들의 폭력 피해를 접하게 된다.

여성폭력 피해의 원인이 남성의 폭력성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선, 자신의 연구와 활동은 미완일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봉착한다. 그의 질문이 '왜 맞는가'가 아니라, '왜 때리는가'로 향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토니 포터는 어느 날 어머니에게서 성폭력 피해 증언을 듣는다. 어머니가 어릴 적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은 그를 충격에 빠뜨린다. 타자화된 성폭력이 비로소 내 어머니가 당한 범죄가 되면서, 내 일이 되면서, 그는 성별(젠더) 이분법과 성적 대상화, 여성성 비하와 혐오의 문제를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된다.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이 당위니까. 토니 포터는 집단적 강요를 통해 남자다움의 정의를 인식하고 있는 문화에서부터 문제를 제기한다.

"남성성의 집단 사회화 교육은 여성을 남성보다 가치가 낮은 열등한 존재이며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자 성적인 대상이라고 가르쳤다."(p19)

그는 딸에게는 보호로만 일관했고, 아들에게는 더 강해지라고, 계집애처럼 굴지 말라는 윽박질로 점철했던 자신의 훈육이 얼마나 성차별적이었나를 성찰한다. 결국 남성을 맨박스에 가두는 건 바로 남성인 것이다.
 
그는 많은 남성들과의 인터뷰를 통한 일화를 소개하며, 성적 대상화와 여성성 비인격화가 남성 규범 속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깨닫게 하는 데 공을 들인다. 일화들을 들려주고 '함께 생각해 보자'는 코너를 통해 독자의 판단을 개입시키는 것은, 일화에 소개된 남성이 결코 타자가 아님을 각성시키기 위함이다.

잭슨 카츠 "성폭력 가해자 너는 아닐까"
 
잭슨 카츠 지음 '마초 패러독스'
 잭슨 카츠 지음 "마초 패러독스"
ⓒ 갈마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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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 패러독스>의 저자 잭슨 카츠는, 어리광 부리지 말고 당신의 가해자성을 잘 살펴보라고, 꼭 찍는다. 여성 성폭력 피해의 29%가 11세 이전에, 50%가 18세 이전에 일어나는 이 무시무시한 수치가 무엇을 말하는가. 성폭력이 일부 악마들의 소행이라고 지금도 믿고 싶겠지만, 폭력 가해자의 90%가 보통의 남성이고 대부분이 면식범이라는 이 엄연한 사실은, 당신의 신념이 아주 허약하다고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하고 말이다.

잭슨 카츠는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보다 대대적인 성차별 시스템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성폭력이 일어났을 때 가해자 성 중립적 표현이 어떻게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지를 보자.

'존이 메리를 때렸다'가, '메리가 존에게 맞았다'-'메리가 맞았다'-'메리는 자주 매를 맞는다'-'메리는 매 맞는 여성이다'가 된다. 어떤가, 정의로운가? 누구 말에 귀 기울이냐는 사회적 권력이 작동하는 위계 속에 있음을 적시해 주고 있다.
 
잭슨 카츠는 나치 치하의 독인인들이 자신들을 '선한 독일인'이라고 생각했다는 역사를 전하며, '나는 아니다', '나는 다르다'로 자기 합리화는 남성들의 행태가 방관자로서 침묵으로 공모했던 과거 나치의 독일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뼈아프게 지적한다. 성폭력 문제에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남성 연대에 균열을 내지 않는 한, 성폭력을 근절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말이다.
 
'버닝썬 게이트' 관련 포털사이트 지식질문에 '정준영은 그렇다 쳐도 승리, 용준형은 왜 욕하나요?'는 강간 문화에 대한 남성 연대가 얼마나 공고하고 위험한 수준인가를 여실히 드러낸다. 또한 서울교육대 남자 재학생과 졸업생의 카톡방 사건은 어떤가. 여자 후배들의 개인정보 책자를 돌려보며 외모를 물건처럼 품평하거나, 현직 초등학교 교사가 자신의 제자를 성적 대상으로 보고 남긴, "따로 챙겨 먹어요. 이쁜애는"은 남성들의 성적 대상화 심각성이 매우 위태로운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다.
 
잭슨 카츠는 성폭력 문제의 일등공신은 무엇보다 대중문화라고 일갈한다.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 도구화하는 포르노물의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청소년과 성폭력 예방 교육 활동 중, 한 청소년이 포르노를 보고 섹스를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줄 알았다는 고백이 이를 증명한다. 그밖에 잡지, TV, 영화 등의 여성에 대한 폭력적인 장면의 과다 노출, 삐뚤어진 분노에서 나온 래퍼들의 과도한 여성 혐오, 스포츠와 군대에서의 남성 중심 폭력 문화 또한 성폭력 조장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성폭력은 문화의 산물
 
<멘박스>의 토니 포터와 <마초 패러독스>의 잭슨 카츠는 성폭력은 문화의 산물임을 강조한다. 남성의 폭력성을 강한 남성성으로, 여성의 복종과 종속을 여성성으로 미화하는 유구한 성차별적 관념을 갈아엎어야만 성폭력을 끝장낼 수 있다고 역설한다. 남성들에게 동료 남성들의 평가에 자신을 맡기지 말라고 조언한다. 성폭력을 조장하고 협력하게 하고 공모하게 하는 남성 '강간문화'와 결별해야만, 보다 나은 남성성이 비로소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강간 문화에 대한 거부를 표할 시, 그 당사자는 동성애자로 낙인 될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여자를 강간할 줄 모르는 놈은 남자가 아니라는 괴상한 암시는, 남자들로 하여금 '호모 포비아'를 일으키게 하여, 오랫동안 강간 문화에 복무하게 했다. 새로운 남성성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혁명에 준하는 지각변동이 필요하다.
 
토니 포터와 잭슨 카츠는 남성들의 각성과 더불어 정책적 제안도 개진한다. 토니는 강간 문화가 청소년기에 고착화되는 것을 감안, 정부 보조금 지원 대학에 성폭력 방지 교육과 성범죄 의식 개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센터를 운영해야 하며, 성폭력 가해자 처벌을 강화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대학가의 숙박촌과 동호회를 매개한 성폭력에 대한 감시가 적실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매우 실효적인 정책적 요구다. 대학 내 성폭력을 다룬 <헌팅 그라운드>를 보면 토니 포터가 왜 이런 정책을 요구하는지 공감할 수 있다.
 
잭슨 카츠는 사회 전방위적으로 성폭력 방지를 위한 '빅텐트'를 칠 것을 제안한다. 사회 전 분야에 걸친 거버넌스를 구축해, 성폭력의 문제를 사회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야만 한다고 설득한다. 그는 사법처리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 여성의 현실을 감안할 때, 성폭력 가해자의 사법처리를 강화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지적한다. 특히 백인 성폭력 가해자에 비해 유색인종과 낮은 계급의 가해자가 사법처리 시스템에서 불리한 판결을 받게 되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두 남성의 제안은 한국의 성폭력 강간 문화의 위태로움을 생각해볼 때, 함의하는 바가 매우 크다. 모든 남성들이 귀담아 들어주길 바란다. 이제 새로운 남성성에 대한 진정한 고민을 시작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우선, <맨박스>로 워밍업을 한 후 <마초 패러독스>로 옮아가기를 권한다. 살살 다뤄주는 토니 쪽에 마음이 끌리겠지만, 제대로 알고 싶다면 잭슨까지 가봐야, 비로소 '남성성은 어떻게 구성되는가'에 대한 감이 온다.
 
책을 다 읽은 후, 두 저자들이 질문을 던져올 때, 이것이 핵심 포인트다, 피하지 말고 응하기 바란다. 남성들은 자신에게 솔직해져야만 한다. 그래야만 감추어 두었던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인 그림자를 찾아낼 수 있다. 이제, 남루한 남성성은 버리고 새로운 남성성에 다가갈 시간이다. 낡은 것을 버려야 새것을 탑재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 아닌가.

덧붙이는 글 | 개인블로그 게시


맨박스 (리커버 개정판) - 남자다움에 갇힌 남자들

토니 포터 지음, 김영진 옮김, 한빛비즈(2019)


마초 패러독스 - 여성폭력은 결국 남성의 문제다

잭슨 카츠 (지은이), 신동숙 (옮긴이), 갈마바람(2017)


태그:#맨박스, #마초패러독스, #성폭력, #젠더이분법, #강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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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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