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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성태 일러스트레이터
 배성태 일러스트레이터
ⓒ 배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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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가 만연한 세상이다. 숨 막히는 사회 속, 쉼터가 있다면 여기일까. 둥그런 그림체 위에 단색으로 칠한 그림, 그 위로 덧대인 말풍선 속에는 신혼부부의 대화가 오간다. 누군가는 판타지로 느낄 법한 이 소소하고 훈훈한 대화 속 주인공은 바로 일러스트레이터 배성태와 그의 아내 윤소리다.

배성태 일러스트레이터는 4년 전 인스타그램에 신혼 일기를 연재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두 권의 책을 내고 한 번의 웹툰 연재를 했다. 꾸준히 늘어난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지금 46만 명에 달한다. 연예인도 아니면서 수많은 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 인스타그램 게시글에 일일이 답글을 달아주시는 걸 봤어요. 말풍선 채우기 이벤트도 꾸준히 해 오고 계시고요. 독자와의 소통을 중요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독자와의 소통을 중요시하기보다 사실 제 그림을 좋아해 주는 분들이 하나같이 고맙고 소중해서예요. 그림이 사람의 마음에 스며들기 위해서는 그림도 중요하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도 중요한 것 같아요. 보는 이의 마음이 준비가 되었을 때 제 그림도 마음에 스며들 수 있는 거죠. 그림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댓글은 그 연장선입니다. 제 그림을 마음에 담아줘서, 온전히 느껴줘서 고맙다고 저도 표현을 하고 싶거든요."

배성태 일러스트레이터의 작품 중 독자에게 가장 반응이 좋은 그림은 부부가 서로를 바라보며 사랑을 나누는 그림이지만 배 작가는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는 일상의 그림을 더 선호한다. 그는 사람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이 느끼는 깊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다수의 사람이 원하는 걸 그리는 게 아니라 작가가 좋아하는 것들을 표현하면 독자는 원하는 그림을 골라보면 된다.

배성태 작가의 인스타그램에는 아내와의 불화를 다룬 그림이 없다. 그는 아내와 다투더라도 독자를 위해 좋은 경험만 그리는데, 우울한 감정을 그릴 때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서다. 덧붙여 행복한 마음으로 그린 그림을 독자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어릴 적부터 만화를 좋아한 그는 대학에서도 만화를 전공했지만 스토리를 이어 나가는 능력이 부족해 만화가의 꿈을 포기했다. 대신 능력과 강점을 최대로 살릴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 일종의 슬럼프라고 할까요. 살면서 그림이 재미없었던 적이 있나요?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받기 위해 '잘 그린' 포트폴리오를 준비할 때였습니다. 다방면의 기술적인 면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기 싫은 그림이나 표현들을 그려야 할 때가 있었어요. 그때 연습해둔 그림들이 분명 도움이 되었지만 1년 정도 그림이 정말 일처럼 느껴졌어요."

반대로 신혼의 일상을 담은 그림을 그리는 건 쉬는 시간처럼 다가왔다. 그 그림들이 독자들에게 오히려 더 좋은 평을 얻었다. 좋아서 그리는 그림이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이후 슬럼프가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결혼 전 아동 학습지 삽화를 그리던 직장인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려 준비를 하면서 여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렸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신혼의 일상이 잊히기 전에 그린 그림들이 바로 '신혼일기'다.  

"현재에 집중하며 살고 싶어요"
 
배성태 일러스트레이터가 인스타그램(@grim_b)에 연재하는 그림
 배성태 일러스트레이터가 인스타그램(@grim_b)에 연재하는 그림
ⓒ 배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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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정의 아들로서, 그리고 한 가정의 남편으로서 각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작가님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저는 현재 내가 속한 가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혼 후에는 자연히 이전의 가족과 지금의 가족을 혼동하게 돼요. 이전의 가족에 지금의 가족을 끼워 맞추려 하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각자 속했던 가족에 억지로 부부를 섞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에 집중하며 각자의 교집합을 천천히 섞어 가야만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있어요."

-아내가 바깥일을 하고 작가님이 집안일을 주로 하시잖아요. 혹시 주변에서 그런 모습에 편견을 가지진 않나요?
"아내와 제가 하는 일은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아내는 왕복 1시간을 넘게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해요. 늘 서서 사람을 대하는 등 하루도 편할 날이 없는 일을 하죠. 반면 저는 집에서 편하게 일하고 남는 시간도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집안일을 많이 해요. 돈을 얼마나 버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아내를 사랑해서 집안일을 맡았다기보다는 제가 집안일 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아내의 노동량이 많은 만큼 제가 집안일을 많이 하는 거예요."

하고 싶은 걸 하라는 가족들의 응원 아래 꿈을 키워왔다. 부모님은 그 길의 결과가 어떻든 그가 자신있다 하면 수긍했다. 만화가가 되는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는 배성태가 되었다. 그는 다른 직업을 가졌어도 본인이 선택한 길이니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 같다며 자신있게 말한다.

- 훗날 아이가 작가님처럼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간섭하지 않고 응원해 줄 거에요. 아이의 미래에 부모가 간섭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부부에겐 부부의 삶이 있고 자식에겐 자식의 삶이 있으니까요.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행복했다는 걸 경험했기 때문에,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선택의 자유와 책임을 가르치고 응원해줄 거예요."

- 주로 신혼생활이나 고양이와 함께하는 그림을 그리시잖아요. 두 주제 말고 다른 주제의 그림으로 연재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으셨나요?
"할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여행기를 그려보고 싶었어요. 사실 예전에 제가 갔던, 가고싶은 여행지를 할아버지로 대신 여행을 시키는 그림을 그린 적이 있거든요. 여행의 추억도 떠올리고 가보고 싶은 다른 여행지를 그리면서 대리만족했어요. 그때보다 여행도 많이 다녔고 소재도 많아서 다시 그린다면 그때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여행 그림은 조금 더 있다 그리고 싶습니다. 경험이 더 쌓이고 갈무리가 되면 더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거든요. 그 그림들을 책으로도 만들고 싶어 글도 종종 써서 모아두고 있답니다."

- 인생에서 과거, 현재, 미래 중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현재가 가장 중요해요. 몇 년 전만 해도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았지만, 결혼 후에는 현재의 순간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재에 행복을 뒤로 미루다 보면 미래도 똑같겠죠.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먹고 싶은 걸 먹고, 여행하고 싶은 곳을 여행하며 살고 있어요. 신혼의 순간들을 그리면서 점차 제 마음가짐도 변한 것 같아요.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 뒤따라 올 결과에 맞춰 미래의 현재에서 최선을 다할 거예요."

-10년 뒤 작가 배성태의 모습은 어떨까요?
"지금처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적당히 쉴 수 있을 만큼 벌면서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때가 되면 지금 키우는 고양이 3마리가 많이 늙어 있겠네요. 반려동물을 처음 키우는 거라 반려동물의 마지막을 함께했던 적이 없는데 그게 얼마나 슬프게 다가올지 벌써 걱정입니다."

먼 미래에서도 지금처럼 최선을 다해 살아갈 그의 날들을 응원한다.

태그:#인터뷰, #일러스트레이터, #배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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