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한 직업이지만, 그 수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쉽게 천대받는 직업이 있다.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은 대한민국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이 직업을 가지고 칭찬을 듣는 것이 과거 학생들의 장래희망이던 시절도 있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밖에서 하릴없는 사람에게 농담조로 이 직업의 일을 하라는 조롱이 쏟아지기도 하고, 이 직업을 하는 대다수의 성별이 아닌 사람이 이 직업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부자연스러워 한다.

'집에서 노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백수? 아니면 말 그대로 집에서 게임을 하거나 취미 생활을 하는 사람?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생산성과 결부된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혹시 '주부'가 생각난 사람도 있을까?

그녀는 왜 전업주부가 됐나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표지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표지
ⓒ 마음의숲

관련사진보기

 ​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의 저자 최윤아씨는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사는 사람이었다. 취업 자체도 힘들지만, 좋은 언론사를 지망하는 사람이 많기에 많은 언론사 준비생들이 고배를 마신다. 언론인이 되는 일은 바늘구멍 뚫기이고, 당연히 급여가 높은 언론에 들어가는 일은 더 어려운 일이다.

저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경제지와 국내 주요 일간지에 취업하는 데 성공한 사람이다. 남이 부러워할 만한 직장에서 일하면서 매일매일 일에 열중했다. 저자는 힘든 노력 끝에 자신의 목표를 이뤄냈다. 그야말로 '알파걸'이었다.

하지만 저자는 기자를 그만뒀다. 전업주부가 되어 살기로 한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퇴사를 하면 행복할 줄 알았고, 회사가 싫어서 집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이 책의 표지에는 '회사가 싫어 집으로 도망친 여자의 리얼 주부 일기'라고 쓰여 있다.

100대 1의 경쟁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저자는 매번 승리했다. 100명 중 1명이 되어 나머지 99명을 몰아낸 인생이었지만 그렇다고 행복할 수는 없었다.
 
1등이 아니면, 2등이나 99등이나 기회가 없다는 점에서 매한가지였다. 간발의 차로라도 그 한 자리를 사수하기 위해 나는 가장 절박한 마음으로 치밀하게 준비했다. 덕분에 첫 직장과 두 번째 직장 모두 100대 1의 바늘구멍을 통과했다. 하지만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두 번째 직장 최종 면접을 이틀 앞두고 나는 난생처음 정신과를 찾았다. (중략) 그땐 합격만 하면 이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다. 아니었다. - 23P

그 어려운 유력 언론사 취업을 성공해낸 저자는 매일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건강을 크게 해쳤다. 기자 수습 기간만 두번을 거치면서 일과 생활의 균형이 붕괴했지만 그 대가로 쓴 기사는 좋은 기사가 아니었다. 하루종일 일하면서도 성과에 신경을 쓰지 않기는 힘든 일이니, 몸은 당연하고 정신도 지쳐갔다. 다른 사람들이 가진 재능이 자신에게만 없는 것같은 느낌이 들어 더 괴로웠다고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자가 일했던 회사는 육아휴직에 매우 관대하지 않고 보수적인 기풍을 가진 곳이었다. 저자는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회사의 주요 부서가 아닌 곳으로 배치된다. 어떤 식으로 해석하면 배려지만, 자신의 성취를 중요시하는 사람에게는 좌천으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있었다. 결국, 방황하던 저자는 성공한 커리어우먼으로 걷던 길을 포기하고 아예 회사를 관두기로 결정한다. 

투명인간으로 살아야 하는 전업주부

하지만 전업주부의 삶도 만만치 않았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미처 전업주부의 어려움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워킹 우먼으로 살던 저자는 전업주부의 어둠을 몰랐다. 전업주부로 살아가기 위해서 저자는 이전의 소비 습관을 바꾸고, 남편에게 더 싸고 좋은 요리를 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새로운 삶에 적응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자존감을 얻지 못했다.

평온을 갈망해서 회사를 그만뒀지만, 오히려 나쁜 기분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삶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아이가 없는 가정에서 전업주부로서 살아가는 삶은 발언권이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저자의 시간은 '노는 사람'의 시간이 되고 말았다. 할일 없이 사는 사람의 시간이니 다른 가족들이 시간을 마음껏 나누어 쓰게 된 것이다.
 
"형수? 형수 놀잖아. 그 아가씨랑 시간 맞춰보고 연락 줘." '의문의 1패'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였다. 남편과 도련님의 통화를 먼발치에서 듣다가 난데없이 일격을 당했다. 내가 차린 밥상을 받고, 내가 세탁한 셔츠를 입고, 내가 치우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남편이 나를 '논다'고 표현할 줄이야. -75P

또한 전업주부가 되자, 전업주부로 살면서 마냥 행복해 보이던 사람들이 사실 우울함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커리어우먼이 아닌 전업주부로서 다른 사람의 치어리더가 되는 일은 무력함을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남편이 아무리 힘들어 하고, 어려움을 겪어도 자신은 치어리더일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없었다는 것이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책은 맞벌이 부부의 한 명으로 살아가는 삶과 전업 주부의 삶을 비교해서 보여준다. 책이 말하는 사실은 어떤 것이 낫다고 하기는 쉽지 않지만 나름의 단점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두 삶의 단점을 모두 겪은 저자는 지금 나름의 우울을 이겨내는 법을 찾았고, 글을 쓰며 살고 있다.

책은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던 여성이 전업주부가 되면서 겪은 수많은 일들과 그에 대한 감상을 보여준다. 원래 기자였던 저자가 쓴 책이기 때문에 읽기 쉽게 작은 글로 쪼개져 있고 쉽게 쉽게 읽힌다.

저자처럼 본인과 가족이 교육과 취업에 많은 자본을 투입한 사람이 자존감을 잃게 되는 상황은 씁쓸한 장면이다. 꼭 나이가 많은 세대만이 전업주부를 폄하하고 주부의 삶을 노는 사람의 인생으로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주부가 하는 가사 노동은 밖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쉽게 폄하된다. 하지만 그 땀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노는 일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남편은 내가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최윤아 (지은이), 마음의숲(2018)


태그:#주부, #가정주부, #가정, #전업주부, #기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화해주실 일 있으신경우에 쪽지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