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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서 즐겨 바라보는 나무들이 있다. 주방 창 쪽에서는 벚나무, 느티나무가 보이고 앞 베란다에서는 은행나무가 보인다. 2년 전 부터 시로 마음을 풀면서 나무들을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벚나무는 초봄에 하얀색 꽃을 피울 뿐만 아니라, 가을에는 총 천연색으로 옷을 입고 하늘하늘 춤추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은행나무는 가을의 황금빛보다 초봄의 싱그러운 녹색이 더 예쁜 것도 알게 되었다. 가을 느티나무는 색감이 벚나무처럼 다양하지는 않지만, 가을 분위기에 딱 맞는 쓸쓸한 색감을 준다. 느티나무가 한결같이 주방 창 멀리서 나의 계절에 옷을 입혀 주며 묵묵히 서 있었던 것을 작년 가을, 정확히 말한다면 이사 온 지 8년 만에 알았다.

몇 년 전 한 친구가 내가 사는 일산으로 이사를 왔다. 미국에서 4년 살다 귀국한 이 친구는 엄밀히 말하자면 내 절친한 친구의 절친이다. 친구는 미국에서 지낼 때 학부모 중 입양아 출신인 한 엄마를 알고 지냈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은 쥴리다. 쥴리는 생모를 찾아 한국에 왔다. 친구는 공항에서부터 대구까지 쥴리의 생모 찾기 여정을 도왔다. 쥴리는 영화처럼 극적으로 자신의 출생 기록을 발견했다.

[관련기사] 지하창고에서 발견한 기록... 쥴리의 엄마를 찾아서 http://omn.kr/1cofz

그 후 몇 명의 입양아들이 대구에서 부모를 찾도록 도와준 친구는 '배냇 저고리'의 준말인 '배냇'이라는 입양아 후원 단체를 만들었다. 도와주지도 못하고 매번 친구의 얘기를 들어 주기만 해 미안해 하던 참에, 친구가 노르웨이에서 한 입양아가 양어머니와 함께 생모를 찾아온다고 전하며 함께 만나러 가자고 했다. 자식을 입양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 생모들을 본 친구는 생모는 만나주지 않을 거라는 말도 함께 했다. 이렇게 창덕궁에서 새라 (Sarah) 와 그녀의 양어머니 시그너 (Signe)를 만났다.

[관련기사] 엄마 손 잡고 엄마 찾아왔지만... 엄마는 거부했다 http://omn.kr/1j3q0

새라는 세 딸의 엄마라고 믿겨지지 않는 매력적인 용모였다. 중국 어느 시대의 미녀가 생각났다. 양어머니 시그너의 삶은 스포를 전혀 모르고 보는 영화처럼 놀라웠다. 어벤져스의 토르 같은 능력자셨다. 그녀는 고고학자였으며 박물관에서 일하셨다.

 
고고학자이셨던 시그너 여사가 아이폰으로 창덕궁을 샅샅히 찍으시다 잠깐 포즈를 취해 주셨어요
▲ 창덕궁에서의 시그너 여사님  고고학자이셨던 시그너 여사가 아이폰으로 창덕궁을 샅샅히 찍으시다 잠깐 포즈를 취해 주셨어요
ⓒ 성희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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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고고학에 매료되어 사학과에 들어갔으나 취업 걱정에 영어만 쫓아다녔던 신산스러웠던 내 20대 초반이 생각났다. 또 로맨틱하게도 아프리카 여행 중 지질학자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하셨다. 몇 년 전까지 나의 소원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한 장면처럼 아프리카에 가서 경비행기를 타 보는 것이었다. 그 분의 삶에서 가난으로 좌절된 나의 욕망이 생각났고 더불어 내 세대가 겪어온 신산스러운 우리나라의 역사도 생각이 났다.

그러나 곧 알게 된 양어머니, 시그너의 삶은 내 투정을 철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녀가 겪은 일들은 인생 경험이 짧고 투정만 많은 나로서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들이었다.

시그너와 남편은 행복하게 살다가 교통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는 비극을 겪었다. 마침 주위에서 한국인 입양아에 대한 얘기를 듣고 새라를 입양했으나 공항에서 처음 본 생후 6개월의 새라는 얼굴 한쪽이 찌그러져 있었다. 출산 과정에서 생긴 일이라 하는데 입양기관에서는 사전에 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1년에 걸친 수술로 새라는 얼굴을 고쳤다. 그리고 새라는 양어머니가 신경 써서 고른 국제학교에 다니고 어머니가 일하는 박물관에 놀러 다니며 잘 자랐다. 그러다 사춘기 혼란에 정체성 문제까지 같이 왔는지 18살에 임신을 해서 딸아이를 낳았다. 그래도 자신과 닮은 아이를 보고 새라는 안정감을 느꼈다고 한다. 시그너는 "그때 쟤가 내 속 많이 썩였죠"하며 웃으셨다. 그들이 다정하게 여기에 오기까지의 사연은 길고도 길었다.

친구의 예상대로 ​​새라는 친모를 만나지 못했다. 입양아들은 친부모를 만나 자신의 뿌리를, 그들의 기원을 확인하고자 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터이다. 그러나 생모들은 꼭꼭 숨는다. 상처를 끌어안고 깊게 묻고 싶은 생모들이다. 지난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길 원하는 입양인 딸들, 아들들이다. 그들이 한국에 온다. 한숨이 나왔다.

​한국, 일본, 중국에서 자라나는 느티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정자나무라고 불렸다. 마을 입구마다 있는 그 느티나무에서 한가하게 쉬기도 하던 그 농경사회의 한국이 산업사회로 급격히 변모했다. 그 과정에 일어난 끔찍한 일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해외 총 입양아 수 22만 명. 미국으로 입양되었으나 파양으로 국제 미아가 된 아담 크랩서라는 입양인의 대한민국 정부 상대 소송도 7월 중 1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창덕궁의 오래된 느티나무 밑에서 찍어드린 양어머니 시그너의 사진을 보며 그녀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을 해봤다. 나로서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느티나무는 가지가 널리 퍼져 그늘을 넓게 만들어준다. 새라에게, 우리나라에 그늘을 내어 주신 새라의 양어머니 시그너는 어느 나무 아래에서 쉬셨을까?

이제 우리나라가 그녀에게 그늘을 내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태그:#엄마 손잡고 엄마 찾아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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