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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교육의 주체다. 어디에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노동의 가치, 노동자의 삶을 파업을 통해 온 몸으로 알리고 있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거다. 이게 진짜 교육의 주체다. 교육감들에게 감히 이야기한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당신들보다 더 진짜 교육자라고." (안명자/교육공무직 본부장)

전국 6천여 개의 학교, 총 4만 명의 학교 비정규직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으로 모였다. 노동복을 벗고, 머리에 '비정규직 철폐', '총파업'이라 적힌 빨간 띠를 둘렀다. 이들이 학교를 벗어나 거리로 나온 이유는 '30년 가까이 지나도 바뀌지 않는 학교 비정규직들을 향한 차별 문제' 때문이다.
 
3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전국학비노조 사전 총파업 대회가 열렸다.
 3일 오후 1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전국학비노조 사전 총파업 대회가 열렸다.
ⓒ 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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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1시, 서울광화문 광장에서 학비노조 사전 총파업 집회가 열렸다
 3일 오후 1시, 서울광화문 광장에서 학비노조 사전 총파업 집회가 열렸다
ⓒ 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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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오후 1시, 예고됐던 학교 비정규직들의 총파업 대회가 시작됐다. 광화문 광장에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서비스연맹 전국학교비정규직 노동조합(아래 학비노조) 공동주최로 총파업 사전대회가 열렸다. 사전 총파업대회현장에는 학비노조원 약 4만명을 비롯해 박금자 학비노조 위원장, 안명자 전국교육공무직본부 본부장 등이 참석했다.

2일 실무교섭... 개선안도, 해결안도 나온 것 없이 제자리

이날 대회사를 연 박금자 위원장은 "(어제) 총파업과 국민여론 압박으로 마지못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나온 교육부와 교육청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촛불 정신으로 국민의 환호 속에 탄생한 문재인 정권, 집권 3년 차에 접어들었는데 직접 공약한 공정임금제와 학교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아직도 준비 된 게 없다고 한다"고 규탄했다.
 
경남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7월 2일 경남도청 마당 천막농성장 앞에서 "총파업 돌입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경남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7월 2일 경남도청 마당 천막농성장 앞에서 "총파업 돌입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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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언급한 것은 총파업을 하루 앞둔 2일 오후 1시부터 약 2시간가량 진행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아래 전국학비)와 교육부, 시도교육청 간의 실무교섭이다. 이날 교섭 직전 박금자 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2시간밖에 안 되는 교섭 시간 동안 협상이 이뤄질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며 "하지만 조금이나마 진척이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답한 바 있다.

하지만 교섭은 결렬됐다. 개선안도 나온 게 없었다. 현장에 있던 박금자 위원장은 <오마이뉴스>에 "그냥 결렬, 역시나 아무것도 없었다. 교육부는 교섭에 참여하지도 않았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향후 우리 측과의 교섭 과정에 임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괄적인 말만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 비정규직 임금 인상을 요구하니까 예산 타령만 했다"며 "협상안을 내놨는데도 수용불가라고만 한다. 불리하면 천천히 가자고만 한다"고 비판했다. "촛불의 명령과 비정규직 제로(를 요구한 정부의 공약)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는 말도 더했다.

눈물의 삭발만 5번... 그럼에도 나는 비정규직자였다

한연임 학비노조 광주지부장도 "실무교섭, 조금이나마 기대했는데 역시나 아무것도 나온 게 없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나는 24년 간 학교 비정규직자로 일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지만 지금도 그렇고, 변한 게 없다. 나는 여전히 비정규직 공무원이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가 6월 17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 100인 집단삭발식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가 6월 17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학교비정규직 여성노동자 100인 집단삭발식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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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부장은 "나는 삭발을 5번이나 했다"며 "첫 번째 삭발은 큰 딸 아이 결혼을 앞두고 했다. 같은 일 하고도 80, 90만원 받는 것을 끝장내자는 의미에서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년 코앞에 두고 한 이번 삭발, 사경을 헤매다 이제 건강을 막 회복한 남편의 뒷바라지도 뒤로 하고 참여했다"며 "할 때도, 하고나서도 억장이 무너졌다. 노조를 한 지 9년이 넘었음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나누는 이 사회를 깨뜨리지 못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언급한 다섯 번째 삭발은 6월 17일, 학교 비정규직 100여 명이 집단 삭발식을 감행한 일이다. 이들은 학교 비정규직의 기본급 6% 인상과 정규직과의 수당 차별 철폐를 요구했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움직이지 않았다. 교육청은 1.8% 인상 외의 요구는 모두 거부했다.

한 지부장은 "100여 명이 집단 삭발할 때, 엄마의 머리를 깎는 딸도 있었고 이제 막 귀중한 아이를 출산한 배우자의 머리를 밀기 위해 온 남편도 있었다"며 "그럼에도 우리는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현실을 바꾸겠다고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온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올 12월이면 지부장 임기가 끝난다"며 "비정규직의 '비'를 떼는 날이 꼭 오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임금인상, 우리가 떼 쓰는 거 아니야... 정부가 약속했던 것"

이날 안명자 본부장은 '임금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임용시험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너희는 당연히 그 정도(임금) 받으면 된다는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자 (파업을) 하는 거다"라며 "그래서 우리는 교육공무직 법제화를 주장하고 있다. 아이들을 교육하는 학교 내 차별을 바꾸려 하는 것"이라고 했다.

교육공무직 법제화란 학교 비정규직에게 '교육 공무직'이라는 이름을 붙여달라는 요구다. 2일, 박금자 위원장은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우리(학교 비정규직)들은 이름이 없다"며 "그래서 이번에 '교육 공무직 법제화'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의 직업에 이름을 붙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교육공무직 법제화가 최소한의 처우 개선이자, 시작점이라고 말했다.

안명자 본부장은 "임금 인상은 우리가 달라고 떼쓰는 게 아니다"라며 "문재인 대통령이 '공정임금제'로 먼저 약속했던 것이다"고 말했다. 공정임금제는 공무원 최하위 직급의 60~70%인 현 임금 수준을 80%로 올리는 것이다. 안 본부장은 "이는 문재인 정부도, 진보 교육감도 약속한 사항이다"라며 "하지만 대통령도 교육감도 그 누구도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는다"고 규탄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어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교육감들. 당신들은 진정한 교육자이십니까, 우리도 교육의 주체입니다."

안 본부장의 목소리에 광장에서는 환호성이 쏟아졌다. 그는 "교육감들에게 감히 이야기 한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이 많은 조합원들이 당신들보다 노동 현장을 보여주는, 진짜 교육자"라고 소리 높였다. 그는 "학교를 바로 세워 차별 있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강조했다.

노조에 따르면 전체 공공부문 비정규직 70만 명 가운데 38만여 명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다. 절반이 넘는 수치다. 학교에서 일하는 전체 노동자 중 41%가 비정규직이다. 지난해 이들은 정규직의 약 64% 정도를 받았다. 출근하지 않는 방학을 제외하고 기본급이 평균 164만 2710원 정도에 그쳤다.

"불편해도 괜찮아요, 응원합니다"... 학생, 학교 응원 봇물

"불편해도 괜찮아요, 하며 피켓 들어주는 아이들, 우리를 응원해주며 불편함 감수할 수 있다는 학교 가정통신문, 그리고 총파업 반드시 승리하라며 지지해주는 전국 학부모님들의 지지선언... 이 모든 국민들의 지지와 격려에 이제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가 답할 차례다."

이 말과 함께 박금자 위원장의 목소리가 격앙됐다. 안 본부장은 "우리가 하는 일들이 미래 우리 아이들에게 하나의 직업으로 당당히 세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며 "아이들이 우리 직업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도 "학생들이 응원한다, 총파업 투쟁 승리하자!"는 구호가 반복해서 울려 퍼졌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격려하며 교장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이 전달한 격려금의 봉투.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격려하며 교장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이 전달한 격려금의 봉투.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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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응원하는 쪽지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총파업을 응원하는 쪽지글.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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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기준, 학교 현장 및 SNS 상에서 학생과 교사들의 응원이 잇따르고 있다. 특성화고등학생권리연합회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응원하는 '파업지지 인증샷'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은 '불편해도 괜찮아요! 7.3 총파업 응원합니다!'라는 글과 본인의 이름과 학교를 기재하며 응원 게시물을 올리고 있다.

총파업에 나선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학교 교장들이 격려금을 보낸 사례도 있었다. 격려금 봉투에는 "선생님, 시원한 커피 사드세요. 조심해서 잘 다녀오세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우지 않는 자를 남이 도와줄 리 없다, 투쟁"이라는 글이 적혔다. 이밖에도 정규직 교사들이 격려금과 함께 응원의 글을 보낸 것도, 학생들이 '응원한다'는 벽보를 붙인 일도 있다.

파업 현장을 지나가던 박성원(58)씨는 "총파업 한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며 "응원한다. 처우가 나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세종문화회관 인근에서 대회를 지켜보던 강중현(29)씨는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했다"며 "이분들 없이는 학교가 운영될 수 없다. 이번 파업으로 이분들의 중요성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태그:#총파업, #비정규직, #학교, #교육부, #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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