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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현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위원장
 주재현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위원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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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시간, 5.5시간, 6.5시간. 

대형마트 노동자들은 2013년까지만 해도 이런 시간제 계약을 맺었다. 사측은 노동자들이 일을 시작하기 전과 후 생기는 대기 시간을 노동 시간에서 제외해 임금을 주지 않기 위해 30분 단위로 쪼개기 계약을 맺었다. 이런 시간제 계약은 '쩜오 계약', 혹은 꼼수 계약으로 불렸다. 

쩜오 계약을 처음 들여온 건 유통업계에서 홈플러스가 처음이었다. 당시 홈플러스는 노동자들로부터 '역대급' 원성을 들었다. 하지만 6년 후 상황은 극적으로 반전됐다. 홈플러스는 지난 1일 업계 최초로 무기계약직 노동자 1만4283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정규직으로 전환된 사원은 홈플러스 전체 임직원 중 62%에 달한다. 기존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현재 저연차 정규직에 해당하는 '선임' 직급을 달게 됐다. 주임이나 대리로 승진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6년 전 쩜오 계약으로 원성을 샀던 홈플러스는 이제 노동자들로부터 찬사를 듣고 있다. 6년 새 홈플러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지난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에 위치한 마트산업노동조합 사무실에서 홈플러스 지부 주재현 위원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똑똑... 6년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요?

"회사쪽이요? 별로 놀라지도 않던데요. 마음의 준비를 했던 건지."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을 때 처음 회사 반응이 어땠냐'는 질문에 주 위원장은 덤덤하게 이런 답변을 내놨다. 그러면서 주 위원장은 "본사 입장에서도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분 10.9%를 반영해 계약직 직원들의 임금을 높이느니 (직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진 결과물이 아니다. 2013년 3월, 홈플러스 노동조합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노동조합은 정규직 전환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사측과 이견을 좁혀왔다. 주 위원장은 2013년에는 노조 사무국장으로, 2017년부터는 위원장을 맡아 이 과정을 이끌었다. 노조 집행부가 조합원들과 공유했던 정규직 전환이라는 꿈은 2019년 현실이 됐다.

"30대 중후반정도 되는 조합원 한 분이 있어요. 그 분이 언젠가 그러더라고요. 당연히 비정규직으로 입사해서 비정규직으로 퇴직할 거라고 생각했다고. 정규직 선발절차는 있었지만 문턱이 높으니까. 그런데 설마 정규직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대요. 저한테 그랬어요. 너무 꿈만 같다고 너무 고맙다고. 그때 참 뿌듯하더라고요."
 
주재현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위원장
 주재현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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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위원장이 회사 쪽에 공식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한 건 지난해 12월 말이다. 회사 측과의 협상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올 1월 초 회사와 협상을 사실상 마무리한 후, 주 위원장은 곧바로 2월에 임일순 홈플러스 대표이사와 만나 무기계약직 직원 1만4283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했다. 

- 합의가 생각보다 쉽게 이뤄진 것 같은데 이유는 뭐였나요.
"회사 입장에서도 정규직 전환이 유리하다고 이미 판단했기 때문일 거예요. 사실상 계약직이랑 정규직이 처우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거든요. 지난해 최저임금도 10.9%나 올랐잖아요. 무기계약직이나 비정규직이 최저임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거든요. 회사 입장에선 임금을 크게 올리는 것보다 정규직 전환을 하는 게 비용이 덜 든다는 결정을 내린 것 같아요."  

- 무기계약직과 정규직에 대한 처우가 어떤지 설명해주세요.
"일단 무기계약직은 정년이 보장돼요. 급여도 월급제고, 상여금 제도도 정규직과 같아요. 무기계약직의 대다수는 정규직처럼 전일제로 일해요. 홈플러스를 20년 동안 다닌 무기계약직 조합원에 대한 처우는 갓 들어온 정규직 직원보다 오히려 나을 정도고요."

매 년 한 걸음씩

홈플러스 지부는 2013년 노조를 만든 뒤 임금 인상보다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이의 차이를 메우는 데 힘을 모았다. 당시만 해도 고용 형태에 따라 수많은 차별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2004년부터 이어져온 쩜오 계약뿐 아니다. 상여금도 정규직은 기본급의 일정 비율을 받은 반면, 비정규직은 정규직 상여금의 70%만 받았다.  

- 과거 어떤 차별이 있었고, 어떻게 바꿔왔나요.
"우선 당시 정규직은 하루 8시간 전일제였지만 무기계약직은 시간제였어요. 본사는 필요한 시간에만 사람을 쓰고 싶었던 거겠죠. 하지만 대다수의 계약직들은 몇몇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8시간 전일제로 근무하고 싶어 했어요. 그게 안정적이니까. 그래서 전일제로 바꿨죠."

- 쩜오 계약을 없앤 것도 비슷한 맥락인가요.
"맞아요. 2013년 크리스마스 이브를 잊을 수가 없어요. 조합원들에게 쩜오 계약 폐지를 위한 등벽보(업무복 뒤에 붙이는 선전물)를 붙이라고 지시가 나갔어요. 전국에 조합원이 1000명 정도밖에 되지 않던 시절이었죠. 회사 쪽은 '아줌마들이 뭘 얼마나 할 수 있겠어'라는 반응이었어요. 그런데 주부 조합원들이 일제히 등벽보를 등에 다 붙였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몇몇 분들은 청심환을 드시고 동참했다고 하더라고요. 놀란 회사는 그해 쩜오계약을 폐지했어요."

- 또 어떤 것들이 바뀌었나요.
"시급제가 월급제로 바뀌었어요. 회사쪽은 바꾸고 싶지 않아 했죠. 시급제랑 월급제랑 사실상 비슷하다면서. 정규직 임금이 그리 높지 않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휴일의 개수가 달랐어요. 월급제에는 법정 공휴일분이 포함돼 있었거든요. 결국 월급제로 바꿨고 쉴 수 있는 날이 늘어났어요.

상여금도 지금은 차별이 없어졌어요. 과거에는 정규직은 기본급의 일정 비율을 상여금으로 받았지만, 계약직은 정규직 상여금의 70%만을 받았어요. 부서별 시급도 통일했어요. 이전까지만 해도 계산원과 수산물 코너 직원, 청소 직원들에 대한 급여가 모두 달랐거든요. 근데 급여의 차이가 직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일으키니까 똑같은 시급을 주도록 했죠."

노조의 노력으로 정규직과의 차별이 하나씩 사라지자 조합 가입자 수도 크게 늘었다. 현재 홈플러스 전체 직원 가운데 1/4에 달하는 5000명이 마트노조 홈플러스 지부에 조합원으로 가입한 상태다.

"그래도 정규직 전환은 안 된다"는 편견

홈플러스 지부가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면서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무기계약직의 90%를 차지하는 주부 사원에 대한 회사와 사회의 편견이었다. 주부 사원들의 노동을 '진짜 일'이 아니라 용돈 벌이를 위한 아르바이트로 여기는 인식이 강했다. 
 
주재현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위원장
 주재현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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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뭐였나요?
"처음 사측 인사 일부는 특별한 이유 없이 정규직 전환에 의문을 제기했어요. 비용이 크게 늘지 않는다는 걸 안다면서도 그냥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길이니 움츠러들었던 것 같아요. '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급하게 가려 하냐'는 말도 들었어요. 정규직을 전환하면 큰 리스크가 생길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던 거죠." 

- 또 다른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주부 사원에 대한 편견도 있었어요. 주부들의 일을 '진짜 일'이 아니라 '아르바이트'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이 있었어요. '용돈 벌려고 나온 아줌마들이 어떻게 나와 같은 정규직이냐'고 토로한 이들도 꽤 있었던 걸로 알아요."

이 같은 편견을 깨기 위해 주 위원장은 정규직 전환이 회사와 노동자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수없이 강조했고, 설득했고, 결국 합의에 이르는 데 성공했다. 정규직 전환이라는 목표를 이룬 주 위원장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단계적 임금 인상이다. 주 위원장은 "홈플러스의 임금 수준이 이마트나 롯데마트 등 동종 업계와 비교했을 때 크게 낮다"며 "정규직 1년차 임금을 비교했을 때, 거의 1000만원에 가까운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당장 2020년에 1000만원을 올리자는 게 아니에요. 어떻게 그렇게 하겠어요. 회사쪽 부담이 크잖아요. 회사도 할 만해야 해주죠. 시간을 두고 점차 임금을 올릴 계획이에요."

주 위원장은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싸우고 있는 다른 노동조합에도 응원 섞인 조언을 건넸다.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다른 노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홈플러스를 포함한 대형마트 3사 모두 '무기 계약직이면 사실상 정규직'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정규직 전환을 반대해 왔어요. 매년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야 해요. 100점 만점이라고 한다면 올해는 70점, 80점짜리 협상을 하더라도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해요. 그 작은 차이들이 장기적으로 쌓여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이가 줄어든다면, 회사 쪽에서도 정규직 전환을 해주지 않을 이유가 없거든요." 

태그:#홈플러스, #홈플러스 정규직전환, #정규직전환, #이마트, #롯데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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