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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의 만종보다도 감사 기도가 더 어울리는 풍경이다... ⓒ 이현숙
 
전남 영광의 두우리 염전으로 향해 달릴 때는 한낮의 무더위가 가라앉고 해넘이도 머잖은 시간이었다. 염전이라는 생각에 바다와 갯벌을 떠올리지만 가는 길의 논과 밭은 여름 농사가 익어가는 시골 들판이다. 넓은 밭 가득 심은 파 모종이 덜 자란 채 더위에 시들시들하다. 시원하게 비 한 줄기 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든다.

들판의 흔한 논밭처럼 차츰 갯벌이 나타나고 멀리 바다도 보이기 시작한다. 염전이 가까워진다. '영광'이라 하면 우리 입에 '굴비'란 말이 저절로 따라붙는 곳이다. 또한 영광군에는 우수한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이 밀집해서 넓게 펼쳐져 있다. 지명조차도 영광군 염산면이다. 염산(鹽山)이라는 소금을 칭하는 땅이름으로 쓰이는 곳이다.
 
염부들이 떠난 텅 빈 염전에 노을의 빛갈림이 반짝~ ⓒ 이현숙
 
오후가 끝나가는 시간에는 염전의 일도 끝나가는 시간이었다. 일하는 염부들이 많지 않았다. 고무래를 밀며 묵묵히 소금밭을 왔다 갔다 한다. 그럴 때마다 무수한 물너울이 부드러운 선을 그리며 출렁인다.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그분들에게 다가가 셔터를 누른다는 게 영 미안하고 편치 않은 마음이다. 그분들은 의외로 익숙한 듯 심드렁한 모습이다. 개의치 않고 소금 수레를 밀고 나르고 하더니 훌훌 가버리신다.

문득 생각난 것이 내가 어릴 적 초등학교 사회시간에 배운 각 지역의 특색이나 특산물이다. 그 중에 염전(鹽田)도 있었다. 나주의 배, 성환은 참외... 이런 식으로 수십 년 전 교과서에서 염전은 주안이었던 게 선명히 떠올랐다.

찾아보니 정말 우리나라 최초의 천일제염이 1907년 경기도 부천군 주안에서 시도되었다는 기록이 있다(현재 인천의 주안은 당시 부천군에 속함). 전라도의 소금밭에서 잠깐 어릴 적 주입식 교육의 기억이 느닷없이 떠오르는 재미도 있다.
 
염부님의 밀대 방향에 따라 염전의 물너울이 촤르르르르..... ⓒ 이현숙

천일염은 자연 방식대로 생산되기 때문에 기온과 기후에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더욱 생명력이 넘치는 환경이 염전이다. 장마가 그친 7~8월엔 장마로 바닷물이 한 번 정화되고 염전이 깨끗하게 씻긴 후가 좋다고 한다. 여름철의 뜨거운 햇볕과 좋은 바닷물, 맑은 해풍이 만들어낸 천일염은 굵고 깨끗하게 생산된다고 한다.

바로 이곳 영광군의 염전들이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갯벌은 진흙과 모래가 적절히 배합되어 있다. 일조량과 바람도 적당해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소금이 맛의 원천이기에 좋은 소금은 건강과도 연결이 된다. 특히 아기가 세상에 갓 태어나 엄마젖을 먹고 이유식과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 가능하면 유아 반찬의 첫 소금 간을 최대한 늦추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염분이 몸에 안 좋다고는 하지만 또한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맛의 기본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 번 간을 한 음식의 맛을 알아버린 아기는 간이 되지 않은 음식은 뱉어내기 시작한다. 당장 소금 간의 맛을 알아버린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그때부터 인간들은 죽을 때까지 소금 맛의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루를 마치고 염전을 떠나는 부부 뒤에서 비추이고 있는 노을 ⓒ 이현숙

두우리 갯벌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고 염전이 노을에 물들기 시작한다. 묵묵히 소금밭을 밀던 염부는 고무래를 세워두고 가득 담긴 소금 수레를 밀며 소금창고로 향한다. 배부른 듯 불룩하게 수북이 담긴 소금 수레가 보는 이도 뿌듯하다. 막 염전에서 건져 올린 각진 소금의 눈부신 결정체가 마치 살아있는 듯하다. 신선함 그 자체다. 그리고 이렇게나 이쁠 수가~

이제는 소금 만들기도 쇠락해서 젊은 염부들이 많지 않다고 한다. 염부들의 땀이 소금보다도 귀한 시점이 된 것이다. 이제는 작업조차 하지 않는 소금밭도 늘어나고 있다. 소금밭이 부직포로 덮여있거나 함초와 같은 소금 풀이 자라는 곳도 생겨난다.
 
배부른듯 불룩하게 보석을 가득 실은 수레,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 뿌듯하다. ⓒ 이현숙
 
수북하게 담긴 소금 수레를 함께 밀면서 부부는 서해안의 일몰 속으로 잠겨간다. 어둠 속에서 보일 듯 말 듯한 부부의 아름다운 뒷모습에 그림처럼 노을빛이 따라가면서 비춘다. 그리고 텅 빈 염전에는 바닷가 사람들의 삶의 편린들이 곳곳에서 너울거린다. 그들의 땀의 결정체가 담긴 수레 안 가득 쌓인 소금은 노을 속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서해안 고속도로 영광 IC 또는 호남고속도로 정읍 IC에서 내려 고창을 거쳐 영광.
함평 방면(23번 국도) - 영광읍 외곽 칠거리 - 군서면 방면(808번 지방도) - 염산면 소재지에서 두우 해수욕장 방면으로 우회전(77번 국도) - 두우리
*또는 전라남도 영광군 염산면 두우리 187-16 장수 염전. 이 주소로 가면 이 외에도 밀집해 있는 또 다른 많은 염전들을 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여행에세이 -잠깐이어도 괜찮아- 의 저자, 이 글은 개인 커뮤니티에도 공유합니다.

태그:#염전, #염부, #소금, #당일여행, #영광 두우리 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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