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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재생 일반론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홍수에 마실 물 없다고, 그중 내가 경험한 현장에 들어맞는 이야기는 많지 않다. 심지어 서울형 도시재생사업인 '다시세운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도 해석의 차이를 걷어내고 나면 다른 실체를 접하게 된다.

도시재생으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의 사례로 인용되기도 하고, 최근엔 세운상가가 맞닿은 청계천 을지로 재개발로 인해 도시재생 전체가 부정되기도 하지만, 관점을 달리해 마주한 실체는 해석 한쪽을 옹호하거나 부인한다기보다는 우리 앞에 놓인 방정식이 많은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고차원 방정식임을, 도시란 그 자체로 거대한 복잡계임을 실감케 한다.

이 글을 시작하는 이유도 그 도시라는 복잡계의 면면을 기록하기 위해서다. 제도 개선과 입법을 촉구하는 거시 담론보다는 현장의 활동가로서 매일 마주하는 지금 이곳의 현안을, 그리고 그에 대한 응급 처방을 찾는 목소리들을 담으려 한다. 더 나아가 논의의 초점을 '도시재생'에서 '도시'로 돌리고 싶기도 하다. 일천한 경험으로도 '도시재생' 현장은 일반론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들 정도로 모두 제각각이다.

도시재생이 각각의 현장에 따른 대안이자 처방이라고 보면, 그 처방에 대한 비판은 특정 현장이 드러내는 증후에 대한 정확한 진단에 기반해야 한다. 이 글이 그 진단을 위한 일종의 문진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그 문진엔 나를 비롯한 우리 현장 활동가의 관점과 행적도 고스란히 담으려 한다. 이런 기록마저 없다면 우리가 벌인 그토록 잦은 시행착오는 영영 무의미해질 테니.

'다시세운 프로젝트'의 공중 보행로 신설
 
신설 공중 보행로 예정지로 사진 왼쪽 건물이 삼풍상가와 PJ호텔이다. 원래 이 건물 3층 높이에 붙어 있었던 보행 데크는 2007년 상가 리모델링과 함께 철거되었다. 다시세운프로젝트 2단계 공사는 끊어진 보행데크를 다시 잇는다.
 신설 공중 보행로 예정지로 사진 왼쪽 건물이 삼풍상가와 PJ호텔이다. 원래 이 건물 3층 높이에 붙어 있었던 보행 데크는 2007년 상가 리모델링과 함께 철거되었다. 다시세운프로젝트 2단계 공사는 끊어진 보행데크를 다시 잇는다.
ⓒ 최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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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세운 프로젝트'는 2015년 2월 '세운상가 활성화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시작되었다. 종로에서 퇴계로에 이르는 약 1킬로미터 길이의 세운상가군을 두고, 을지로를 중심으로 나누어 북쪽 절반인 1단계 구간은 2017년 9월 마중물 사업이 종료되었고, 2019년 7월 현재는 내년 완공을 목표로 남쪽 절반 구간인 2단계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오늘 소개할 곳은 2단계 공사 중에서도 첨예하게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는 공중 보행로 신설구간이다. 1968년 건설 당시 건물 3층 곁에 붙어 세운상가군 전체 건물을 하나로 이었던 공중 보행로 중 몇 곳은 이 일대 변화와 더불어 철거되었다. 을지로에서 마른내길에 이르는 삼풍상가, PJ호텔 구간 약 250미터도 그렇다. 2007년에 공중 보행로를 떼어냈던 이곳에 올해 연말까지 새로운 공중 보행로가 신설된다.
     
지상으로부터 높이 7미터, 폭 3미터의 공중 보행로가 상가 앞을 가로지른다는 소식에 인접한 상가 상인들의 반대는 거셌다. 공사로 인한 영업방해와 일조권 침해 등을 꼬집기도 했지만,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신설 공중 보행로를 지탱하는 기둥이 상가 출구에 바짝 붙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보도의 폭이 달라 편차가 있지만 보도가 좁은 남쪽 구간의 경우 점포 앞 1미터에 기둥이 설치될 예정이었다. 음식점의 경우 그동안 관행으로 업소 밖에 내놓은 시설물과 맞닿게 된 셈이다.
 
2018년 9월 신설 공중 보행로 앞 상인과 함께 실제 기둥이 놓일 자리를 가늠해 보았다. 깃발이 놓인 자리가 정확하게 기둥이 놓이는 자리는 아니지만 같은 선상에 기둥이 줄지어 놓일 상황이었다.
 2018년 9월 신설 공중 보행로 앞 상인과 함께 실제 기둥이 놓일 자리를 가늠해 보았다. 깃발이 놓인 자리가 정확하게 기둥이 놓이는 자리는 아니지만 같은 선상에 기둥이 줄지어 놓일 상황이었다.
ⓒ 최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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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점은 우리 활동가들이 보기에도 심각한 문제였다. 상황을 공유하기 위해서 상인들과 함께 기둥이 놓일 자리를 실측하고 이를 근거로 서울시에 민원을 제기했다. 여기에 2단계 다른 구간에서 공사에 반대하는 상인들이 연대해 서울시청 앞 집회가 수차례 이어졌다. 민원과 집회가 이어지자 서울시에서는 설계 변경에 들어갔다.

올 초 원안에서 60~80cm 뒤로 물러난 설계안이 나왔고, 현재는 이를 토대로 공사를 진행 중이다. 바뀐 설계안은 상인들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었을까? 불행히도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상인들이 보기에 새 설계안은 기존 안과 오십 보 백 보였고, 반대 여론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분위기를 바꾼 것은 예기치 않은 상황 때문이었다.
               
4월 들어 공사를 위해 기존 공영주차장 자리에 펜스를 쳐 놓자, 마치 자리 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펜스 안에 간이 테이블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공사를 위해 차들을 쫓아낸 자리에 야외 식당이 들어선 셈이다. 소셜 미디어에 충무로, 을지로, LA갈비가 해시태그로 걸리기 시작했고, 이를 보고 찾아온 20~30대가 펜스 안을 가득 메웠다. 대기줄은 십수 미터씩 늘어지기 일쑤였다. 5월 말에는 종편 방송에서 맛집으로 소개되어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공사에 대한 반대 여론이 확실히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인들에게 신설 공중 보행로는 미래가 불확실한 리스크였다면, 옥외 영업은 당장 수익으로 증명되는 보증된 비전이었다. 공중 보행로가 아니라 공중 보행로 공사를 위한 펜스로 비전을 확인한 셈이었다. 몇몇 상인들이 옥외 영업활성화를 언급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중구에서 양성화한 을지로 노가리 골목처럼 이곳을 음식 문화 거리로 특화시켜 옥외 영업을 양성화해 달라는 얘기였다.

상당수 상인이 느끼는 불안은 해소되지 않았다
 
공사를 위한 펜스 안에서 옥외 영업 중인 모습. 지난 5월 종편 방송인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소개되면서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 펜스 안을 가득 메웠다.
 공사를 위한 펜스 안에서 옥외 영업 중인 모습. 지난 5월 종편 방송인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소개되면서 소문을 듣고 온 사람들이 펜스 안을 가득 메웠다.
ⓒ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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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소통방'으로 부르는 도시재생지원센터에 돌파구가 보이는 듯했다. 만약 옥외영업 양성화를 소통방이 적극 지원한다면, 공중 보행로 건설 이후에도 데크 아래로 옥외 영업을 할 수 있다면 상인들과 행정 사이에서 화해가 이뤄질 수도 있을 것이다. 5월 28일, 상인 회의를 소집했다. 옥외 영업을 조건으로 밖에 내놓은 석쇠를 안으로 들이는 등 운영 방안과 대안들을 논의하고자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회의에서는 옥외 영업은 의제로 꺼내놓을 수도 없었다.

음식점 상인들은 전과 달리 관망세였지만 그 외 문구점이나 인쇄소를 운영하는 이들은 여전히 공중 보행로 공사 자체를 거세게 반대했다. 생각해 보면 이들에게 달라진 상황은 아무것도 없었다. 일부 상인들의 변화가 있었다손 치더라도 여전히 상당수 상인이 느끼는 불안은 해소되지 않았다. 또 한 번의 시행착오.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활동가의 조급증이 발동했다가 다시 한번 반대 여론만 확인한 셈이었다.

7월에 접어든 지금은 옥외 영업에 대한 이슈는 잠시 접어 두었다. 서울시가 '가꿈가게 사업'을 통해 신설구간 인접 상가의 간판 등 전면부와 내부 구조 등을 개선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는 이 사업을 통해 인근 점포들의 환경을 개선하면서 공사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 신청 접수가 마감된 6월 말 현재, 이곳 상가 30여 개 중 13개 점포에서 신청서를 제출했다. 기둥이 놓이는 점포는 대부분 신청한 셈이다.

7월 초 심사를 거쳐 지원이 결정되면 8월경에는 새 단장한 점포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사업이 마냥 순탄하게 진행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보도에 내놓은 석쇠를 가게 안으로 들이자는 제안을 가게가 좁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상인도 있고, 보조금 집행 규정에 의해 설정된 10% 자부담도 부담스럽다는 이들이 많다. 건물 보수가 이뤄졌을 때 임대인이 임대료를 올릴 것이 걱정이기도 하다. 오늘도 이 사업 담당인 활동가는 상인들을 만나면서 의견을 조율 중이다.

그 사이 이곳 음식점들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늘어나는 손님만큼 덩달아 문제도 늘어났는데, 야외에서 고기를 굽는 바람에 음식점 사이에 끼인 인쇄소 사장님이 질식해 쓰러지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당연히 민원이 급증했고(담당 공무원에 따르면 최근 민원의 80%는 주변 이웃이 제기한다) 단속과 눈치 영업의 숨바꼭질이 이어지다가 최근에는 공사를 진행하는 시행사가 CCTV까지 동원해 펜스 안 영업을 감시하고 있어 다시 올 초의 풍경으로 되돌아갔다.

어찌어찌 펜스 안을 비집고 들어가 장사를 하던 일부 상인들은 50여만 원의 벌금 고지서가 날아들었고, 결국 펜스 안에서 영업할 때 고용했던 주방 일손들을 모두 해고한 상태라고 한다.

현장의 움직임이야말로 진짜 주민들의 목소리
 
이웃들의 민원, 중구청의 단속, 시공사의 감시로 펜스 안은 다시 공터가 되어버렸다.
 이웃들의 민원, 중구청의 단속, 시공사의 감시로 펜스 안은 다시 공터가 되어버렸다.
ⓒ 최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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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이곳에서 옥외 영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옥외영업에 대한 허가 권한은 중구청에 있다. 중구청 보건위생과 공무원은 일단 긍정적이었다. 최근 민원에 골머리를 앓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옥외 영업을 양성화하기 위해서는 거쳐야 할 산이 많았다. 보건위생과 담당자에 따르면 당장 이곳이 공영 주차장이라 관련 부서 허가를 얻어야 하고, 인근 주거지에 피해는 없는지, 환경에는 영향이 없는지, 교통 면에서는 안전한지, 청소는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등 중구의 각 부서의 승인을 얻어야 한단다.

복잡다단하지만 간략하게 줄이면 구청장의 의지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란 얘기다. 도시재생지원센터 활동가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다. 서울시와 중구가 머리를 맞대야 하는 일이다. 과연 이곳에 옥외 영업은 양성화될지 예단할 수 없다. 그것에 적합한 공간인지, 음식점이 아닌 점포의 양해를 이끌 수 있는지 등등 수많은 논의가 지난하게 필요한 일이다.

누군가는 애초에 공중 보행로를 계획하지 않았으면 이 모든 혼란은 없었을 것 아니냐 할 수도 있겠다. 이 문제 제기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품고 있다. 하나는 공중 보행로의 효용에 대한 의문이고, 또 하나는 도시재생 현장에서 종종 발견되는 하향식 계획에 대한 문제 제기다. 공중 보행로의 쓸모를 증명하는 일은 시간이 필요하나, 후자에 대해서는 얼마간 변명이 가능하다고 본다.

'거버넌스'에 대한 좀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기능적으로만 보더라도 행정이 의제를 먼저 설정하면서 주민들의 관심을 모으는 데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다른 지역의 후보지, 희망지 때의 경험을 돌아보면 계획 수립 이전 의견 수렴을 위해 주민들을 만나면 계획도 없이 불러모았냐며 질책하는 장면도 많이 보았다. 중요한 것은 계획을 행정이 먼저 수립하느냐 여부가 아니라 그 계획이 얼마나 유연하게 주민들의 의견에 반응하느냐일 것이다.

공중 보행로 신설 이슈가 제기된 이후 약 9개월의 과정을 되돌아보면 주민들의 많은 반응들이 있었다. 처음 공사에 대한 상인들의 거센 반대가 있었고, 이에 대해 미흡하지만 서울시의 응답이 있었다. 여기에 다시 주민들이 옥외 영업이라는 카드를 내밀었을 때, 행정은 단속으로 응답했다. 사실 행정의 단속은 '옥외 영업'을 요구하는 주민들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주민들이 제기한 '민원'에 대한 반응이다. 아직 이 '옥외 영업' 요구에 대한 반응은 하지 않은 셈이다.

서울시나 국토부의 도시재생이 자랑하는 것이 '주민참여'다. 그러나 정작 공론장에는 일종의 편향이 감지된다. 낮시간 생업을 접어두고 주민설명회에 참여할 수 있는 주민이란 그 자체로 편향의 소지가 있다. 나는 그 어떤 공론장의 의견보다도 이런 현장의 움직임이야말로 진짜 주민들의 목소리, 주민들의 욕구, 욕망이라 여긴다.

정말 우리의 도시재생 현장에서 '주민 참여'가 이뤄지려면 이런 주민들의 욕망의 지류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반응들과 변화들을 감지하고 이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 사실 그런 것을 민감하게 감지할 의무를 갖고 있는 것이 나와 같은 활동가들이겠다. 그래서 나는 구청엘 찾아가고, 주민을 만나고, 이 글을 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주체들이 하나둘 모이기를 기대하며.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서울형 도시재생 사업인 '다시세운프로젝트'에서 협업지원센터 공동센터장을 맡고 있습니다. 소속된 법인 'OO은대학연구소'는 이곳의 공동체 재생을 목표로 2015년부터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다시세운프로젝트, #도시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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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네트워크(사) 대표. 문화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지역 현장에 들어가 지역 이름을 걸고 시민대학을 만드는 'OO(땡땡)은대학' 프로그램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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