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렇게 열하의 모든 일정을 마쳤다. 그런데 샤오까오가 아주 난처한 기색을 띠며 베이징 가는 기차표를 구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다. 순간 난감하기 짝이 없다. 결국 결정은 내가 해야 되니까 다른 방법을 모색했다.

"표를 구할 수 있는 기차는 몇 시냐?"라고 물었더니, 내일 아침 표는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내일 아침 베이징에 가서 공항으로 바로 이동해도 큰 문제는 없지만 청더에 더 머물기보다는 오늘 베이징으로 돌아가는 것이 더 좋기에, 장거리 버스표는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버스는 예매가 아니라서 지금 버스터미널로 가면 탈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결정을 내리자 샤오까오는 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빨리 오라고 했다. 잠시후 우리는 친구의 승용차편으로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샤오까오는 매표창구로 달리고 나는 짐을 챙겨 천천히 들어갔다. 버스표를 사가지고 와서는 3~4시간 소요될 것이니 음료와 간식을 준비하라고 한다.
 
고북수는 연암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곳으로, 바로 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의 현장이다.
▲ 고북수 고북수는 연암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곳으로, 바로 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의 현장이다.
ⓒ 민영인

관련사진보기

 
배낭을 짐칸에 싣고 버스에 올라 자리를 확인하고 샤오까오는 기사를 찾아서 잘 좀 부탁한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내 좌석 옆, 뒤에 앉아 있는 승객들에게 자신의 한국친구라고 소개하며 불편함이 없도록 챙겨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샤오까오는 버스가 떠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다 출발하자 손을 흔들며 작별을 했다. 머지않은 날 나는 다시 오겠다고 말했다.

버스가 출발하고 피로감에 눈을 좀 붙이려고 하나 깊이 잠들지 못하고 이번에 확인하지 못한 곳이 자꾸 어른거린다. 1시간 반쯤 지나자 고북수진(古北水鎭) 이정표가 보이고 바로 휴게소로 버스가 들어갔다. 만리장성이 지나갈 것 같은 먼 산에는 산벚꽃이 마치 눈 온 듯이 하얗게 덮여 있다.
 
만리장성이 지나갈 것 같은 먼 산에는 산벚꽃이 마치 눈 온 듯이 하얗게 덮여 있다.
▲ 휴게소에서 바라본 경치  만리장성이 지나갈 것 같은 먼 산에는 산벚꽃이 마치 눈 온 듯이 하얗게 덮여 있다.
ⓒ 민영인

관련사진보기

 
고북수는 연암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곳으로, 바로 야출고북구기(夜出古北口記)의 현장이다. 고북구는 동쪽 산해관에서 700리, 서쪽 거용관에서 280리, 몽고가 중원으로 쳐들어오는 입구에 해당된다. 연암은 밤중에 장성에 올라 술로 먹을 갈아 "건륭45년 경자 8월7일 밤 삼경에 조선 박지원이 이곳을 지나다"라고 벽돌에 낀 짙은 이끼를 긁어내고 썼다 한다.

아쉬움을 자극하는 또 다른 곳은 열하일기를 처음 알게 된 일야구도하(一夜九渡河)다. 이곳은 어디일까? 지금의 밀운(密雲)으로 현재 북경시 상수원이다. 일야구도하는 황제의 명을 받고 밤잠을 설치며 열하로 달려가다 홍수로 물이 불어 사나워진 강을 하룻밤에 아홉 번 건너면서 느낀 생각을 쓴 글이다.
 
"나는 이제야 도를 알았다. 마음이 텅 비어 고요한 사람은 귀와 눈이 탈이 되지 않고, 눈과 귀만을 믿는 자는 보고 듣는 것이 자세하면 자세할수록 더더욱 병통이 되는 것임을."
 
사나운 강물도 어떻게 듣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즉 두려움과 평안도 모두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다. 이제 신열하일기를 마무리하며 열하기행단을 꾸려야겠다. 어느 정도 인원을 만들어 아예 차를 대절하여 일야구도하의 현장과 고북구장성까지 답사를 하는 여정으로 만들 생각이다.

열하에는 샤오까오가 있으니 더 알찬 기행이 될 것이다. 사실 샤오까오는 열하에서 피서산장을 안내하면서도 조선사신이 열하에 왔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연암과 열하일기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으며, 내가 열하를 찾게 된 이유도 이것 때문이라고 했다. 샤오까오는 자신이 이 부분에 대해서 공부를 할 테니 꼭 다시 오라고 했다.
 
종업원은 청나라 시대 복장을 하고 있어 여행의 마무리를 하는 장소로 제격이었다. 여행을 무사히 마친 안도감과 분위기에 취해 주머니를 다 털었다.
▲ 식당 종업원은 청나라 시대 복장을 하고 있어 여행의 마무리를 하는 장소로 제격이었다. 여행을 무사히 마친 안도감과 분위기에 취해 주머니를 다 털었다.
ⓒ 민영인

관련사진보기

  
항상 마무리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역설적이게도 이 맛에 머지 않은 날 나는 또 배낭을 꾸릴 것이다.
▲ 북경오리구이 항상 마무리는 진한 여운을 남긴다. 역설적이게도 이 맛에 머지 않은 날 나는 또 배낭을 꾸릴 것이다.
ⓒ 민영인

관련사진보기

 
북경에 돌아오자 숙소를 정하고는 바로 식당으로 달려갔다. 종업원은 청나라 시대 복장을 하고 있어 여행의 마무리를 하는 장소로 제격이었다. 내일 공항 가는 지하철 비용만 남기고 노잣돈을 탈탈 다 털어도 되기에 북경오리구이를 핵심으로 다소 과하게 음식을 주문했다.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午門) 앞에서 이번 열하기행을 마무리했다.
▲ 오문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午門) 앞에서 이번 열하기행을 마무리했다.
ⓒ 민영인

관련사진보기

 
떠나는 날이 월요일이라 비록 고궁이 문을 닫았지만 천안문을 지나 자금성의 정문인 오문(午門) 앞에서 이번 열하기행을 마무리했다. 연암은 열하일기를 쓰고는 정조에 의해 문체반정(文體反正)이라는 반성문을 써야했다. 여행기의 백미(白眉)로 꼽히는 열하일기를 흉내내며 쓴 '신열하일기'를 끝내며 독자들이 어떻게 읽었을까 두려운 마음이 든다.

덧붙이는 글 | 제 개인블로그 '길 위에서는 구도자가 된다'에도 실립니다.


태그:#신열하일기, #야출고북구, #일야구도하, #자금성, #북경오리구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08년 10월 지리산 자락 경남 산청, 대한민국 힐링1번지 동의보감촌 특리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여전히 어슬픈 농부입니다. 자연과 건강 그 속에서 역사와 문화 인문정신을 배우고 알리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