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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정 사진작가. <땅의 사람들>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이천시립월전미술관에서.
 석정 사진작가. <땅의 사람들>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이천시립월전미술관에서.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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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주로 자연을 배경으로 농촌 어르신들을 촬영해요. 삶을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분들에게서 사계의 신비로운 변화를 선물 받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에게 사진은 '목마름을 해소해주는 샘이고 황금알'이에요."
 

석정(57) 사진작가는 전국의 농촌을 누비며 다양한 부류의 인물을 촬영했다. 2008년부터는 특히 농사 현장을 배경으로 한 농민 인물 사진 작업에 집중했다. 땅의 사람들은 검정 비닐을 씌운 고구마밭 한가운데서, 잘 익은 토마토를 따다가, 비닐하우스 안 경운기 옆에서, 비포장도로 등에서 포즈를 취했다.

지난 9일부터 이천시립월전미술관에서 석정 작가의 개인전 <땅의 사람들>가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2015년 <이천-강을 건너온 사람들>, 2016년 <감천(甘川)+통의(通儀)동 사람(人)들>에 이은 석 작가의 세 번째 개인전이다. 2018년 <제2회 부산국제사진제>, 경기도 미술관 특별전 <경기 아카이브-지금>, 2019년 <한국현대사진전> 등 다수의 단체전과 개인전을 통해 작가는 우리의 농촌과 땅의 사람들 이야기를 전했다.

작가는 <땅의 사람들>에서 이천을 시작으로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등 10여 년 이상 전국에서 촬영한 인물 사진 가운데 작품 6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특히 작가의 초기 작품으로 2008년 이천의 농촌에서 살던 어르신 모습과 그분들의 젊고 앳된 시절 사진, 생애 이야기를 넣은 작품이 눈길을 끈다.   

석정 작가가 농촌 사람들을 주시하게 된 것은 세월을 거슬러 올라 가야 한다. 서울에서 살던 작가는 1997년 충청도에 계신 시부모님과 가까운 곳에서 지내기 위해 경기도 이천으로 이사를 했다. 이천은 서울로 출·퇴근하고 충청도로 내려가기에 편리한 교통의 요충지인 데다 농촌 풍경이 많이 살아있는 도농복합도시다. 

지인의 카메라 선물, 작가의 운명을 바꾸다
 
오래전 카메라 렌즈를 지나 하얀 천에서 시간을 멈춰선 땅의 사람들. 묵묵히 우리 농촌을 지키며 우리를 키워온 많은 분들이 하나 둘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다.  이천시립월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석정 사진개인전 <땅의 사람들>
 오래전 카메라 렌즈를 지나 하얀 천에서 시간을 멈춰선 땅의 사람들. 묵묵히 우리 농촌을 지키며 우리를 키워온 많은 분들이 하나 둘 어디론가 떠나가고 있다. 이천시립월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석정 사진개인전 <땅의 사람들>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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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이천으로 이사 온 후 지인에게 필름카메라를 선물 받았어요. 저희 아이들이 어릴 때였는데 그 카메라로 아이들 사진 촬영을 많이 해줬어요. 마을 풍경과 자연 풍경도 찍었고요. 당시 저는 사진 촬영하는 것을 즐겼어요. 한해 두해 지나다 보니 사진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서 사진 교실에 등록해 강의를 들었어요. 그래도 사진에 대한 갈증이 해소되지 않아 중앙대학교 산업교육원 학점은행제를 들어가 강의를 들었어요. 사진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을 무렵 중부대학교 인문산업대학원 사진영상학과에 입학해 더 폭넓은 사진 세계를 배웠어요. 제가 어렸을 때 친정아버지께서 제 사진을 많이 찍어주셨는데 그때 아버지가 사용한 카메라를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는 걸 보면 아버지 영향을 받을 것 같습니다."

석정 작가는 농부의 생활공간을 배경으로 하여 농부의 전신과 정면 모습을 촬영한다. 시대마다 농민들의 생활양식과 옷차림 등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당대 농촌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 사회상 등 농촌 사람들 본연의 모습 그대로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방식이다.

작가가 특히 농촌 사람들을 주시하게 된 까닭은 작가가 살아온 환경과 연결돼 있다. 충청북도 수안보 산골 마을에서 자란 작가는 목화밭에 하얗게 핀 솜꽃과 칠월이면 푸른 이파리 사이에 빨갛게 익어가는 산딸기, 담배밭 등 고향 풍경을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결혼 후 시부모님도 평생 과수원 일과 농사일을 하셨다. 작가가 농부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또한 독일의 초상사진가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 1876~1964)의 영향도 받았다고 한다. 잔더는 20세기 독일의 농민에서 출발하여 도시의 실업자에 이르기까지 평생 그들의 삶이 드러나는 인물 사진을 찍었다. 잔더는 이후 사진집 <시대의 얼굴>을 펴냈다. 책을 통해 토지와 관계된 농민에서 출발하여 사회구조 속의 인간상을 7개의 섹션으로 나눠 보여주고 있는데 그의 사진은 단순한 사진 이상의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작가의 작업은 집 앞의 텃밭이나 들녘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도시로 빠져나간 젊은이들을 대신해 농촌을 지키고 있는 70~80대 어르신들이다. 

'사라져가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오늘도 카메라를 들다
 
 이천문화지킴이 회원들이 <땅의 사람들> 사진전을 관람하다가 카메라를 보며 포즈를 취했다. 비닐 검정을 씌운 고구마 밭 한가운데서 땅을 일구고  성실하게 삶을 꾸려간 일군 우리의 어머니처럼, 아름답고 당당한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이천문화지킴이 회원들이 <땅의 사람들> 사진전을 관람하다가 카메라를 보며 포즈를 취했다. 비닐 검정을 씌운 고구마 밭 한가운데서 땅을 일구고 성실하게 삶을 꾸려간 일군 우리의 어머니처럼, 아름답고 당당한 모습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 김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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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저를 낯설게 보는 분들도 계셨어요. 주변의 사라지는 것들을 촬영할 때 저를 이상하게 보는 시선을 느낄 때도 있었고요. 당황스러웠지만 (취지에 대해) 설명해 드리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정하게 대해주셨어요. 모델이 되어줄 뿐만 아니라 그분들의 사소한 일상부터 곡절 많은 이야기까지 들려주셨어요. 이웃처럼요. 촬영이 끝난 얼마 후 사진을 인화해 어르신들께 갖다 드리곤 했는데요, 사진을 보고 흐뭇해하는 어르신들을 볼 때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어요. 어르신들은 화면으로 접하는 이미지보다 인화된 사진을 좋아하시거든요. 더욱 감사한 것은 어르신들께서 텃밭이나 밭에서 일하시다가 양파, 고추, 배추 등을 흔쾌히 주신다는 거예요. 힘들게 농사지은 걸 저는 넙죽 받아와 감사히 먹는답니다."

석 작가는 농부들을 만나고 촬영을 하면서 안타까운 사연도 많이 접한다고 했다.

"우연히 그 집 앞을 지나거나 인화된 사진을 드리기 위해 촬영에 응해준 분 댁에 들르곤 해요. 그런데 어르신들이 계시지 않을 때가 있어요. 자녀가 사는 곳으로 이주해 가족과 함께 살면 괜찮은데, 하늘나라로 가시거나 요양원 혹은 병원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먹먹해져요. 먼지 쌓인 텅 빈 집을 볼 때면 다양한 생각이 밀려와요.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농촌도 현대화가 되어가고 있는데 사라져가는 이 집과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부모님 세대가 지나고 우리 세대가 지나면 누가 텃밭을 지킬까' 하는 그런 생각들이요."

석 작가는 카메라를 들고 오늘도 길을 나선다. 농촌 사람들을 찾아가 인사를 나누고 말을 건넨다. 우리를 살려온 생명의 터를 지켜온 사람들, 사라져가는 것을 카메라에 담아 그날, 그 사람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다. 소리 없는 언어, 사진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다.

그는 꾸준히 이 시대의 인물을 촬영할 계획이다. 아울러 <공원과 사람들>을 기획하고 있다. 이천시립월전미술관 1층에서 열리고 있는 <땅의 사람들> 전시는 오는 14일까지 열린다. 관람료는 무료다.

태그:#이천시립월전미술관, #땅의 사람들 사진전, #농촌 사람들 , #기록 , #석정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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