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금까지 레이덴을 한가하고 정적인 도시로 묘사했는데, 시선을 과거로 돌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눈앞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정숙한 부인이 알고 보니 왕년에 잘나가는 딴따라였다거나,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왜소한 노인이 예전에 유명한 운동선수였다는 식의 반전이랄까.

400년 전 네덜란드의 황금기 시절(17세기)에 레이덴은 유럽에서 가장 활기차고 역동적인 도시였다. 레이덴은 스페인과의 독립전쟁 중인 1574년에 3만 명의 시민들 중 1만5천명이 희생되었지만, 1622년엔 4만5천명으로 급속하게 회복되었고, 1670년에는 7만명이 되었다.

레이덴의 주요 산업은 직물업이었다. 네덜란드(플랑드르 포함) 지방에서 직물산업이 번성한 이유는 영국의 양털이 수입하기 좋은 위치였고, 종교적 박해를 피해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노동력이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생산 노하우가 쌓이고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레이덴은 직물산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고 암스테르담에 이어 홀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가 되었다.

이후 영국에서 원재료 수출에 머무르지 않고 직접 직조하는 공정까지 따라왔지만, 염색ㆍ표백ㆍ스탠실 등 부가가치가 높은 마무리 공정에서는 네덜란드의 우위가 17세기 후반까지 계속되었다. 특히 정련표백업은 거의 독점산업이었다.

염색하려면 먼저 직물을 표백해야 하는데 네덜란드는 이 분야에서 가장 앞서 있었다. 이 방법은 잿물에 침지하고 햇볕에 말리기를 수개월씩 반복하면서 젖산과 비누로 처리하여 천을 하얗게 만든다. 레이덴의 운하는 이와 같은 표백공정을 처리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운하에 비친 레이덴 시내
 운하에 비친 레이덴 시내
ⓒ 황인규

관련사진보기

   
17세기 유럽 최대 직물도시인 레이덴은 인구 7만명 중 4만5천명이 노동자였다. 산업혁명 이전이라 공장형 노동자들이 본격적인 사회계급으로 대두된 건 아니지만 인구의 3분의 2가 노동자라는 사실에서 근대적 산업도시의 출발이라고 볼 수 있다.

주경철씨가 지은 <네덜란드: 튤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에도 나오듯, 노동자의 권리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 내륙에선 중세의 외투도 벗기 전인 1619년, 1637년, 1644년, 1700년, 1714년에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킨 것만 해도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암스테르담에서 처음 증권거래소가 생기면서 자본주의가 발아했다면 산업시대의 맹아는 레이덴에서 싹텄다고 볼 수 있다. 암스테르담의 상업과 레이덴의 직물산업은 어떤 의미에서 서구 자본주의의 원형(proto type)을 배태한 곳이다. 17세기에서 19세기 사이 유럽에서 언론 잡지의 발행이 가장 왕성했던 곳 또한 레이덴이었다.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 17세기 초 영국의 청교도(Puritan)들이 신대륙으로 향하기 전 레이덴에 정착을 시도했다. 종교개혁 운동이 전 유럽을 휩쓸 시점에 영국에서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절충한 성공회가 국왕 헨리8세의 지지를 받으면서 주류로 자리 잡는다. 영국 성공회는 헨리8세가 자신의 혼사를 불허한 교황청과의 불화 때문에 종교적 독립을 선언한 것이라서 교리나 집전 상으로는 가톨릭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일부 개신교도들은 스스로를 순수한(purify) 퓨리탄이라고 하면서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개혁을 요구하게 된다. 그들이 외치는 부패척결과 평등사상은 기득권자들이 보기에 매우 위험했다. 당시 유럽에서 종교적이든 사상적이든 모든 박해자와 억압자들은 네덜란드로 모였듯이, 탄압에 직면한 청교도들은 네덜란드로 이주를 결심한다.
  
헨리8세
 헨리8세
ⓒ 위키피디아

관련사진보기

    
1608년 일단의 급진파 청교도들이 레이덴에 도착했다. 청교도들은 신앙생활에 열중하면서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려 했다. 당시 레이덴은 직물산업이 번성하면서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이 미만한 곳이었다.

익히 알다시피 자본주의와 물적 타락은 동전의 양면이다. 초기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착취 구조도 그들이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권력의 망치를 피하고 보니 물신 지배의 지옥으로 떨어진 것이다.

청교도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생활이 점차 나태해지고 무엇보다 2세들의 사고가 오염되는 걸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차라리 탄압이 나았다. 신앙이라는 쇠는 맞을수록 단단해지지만 자본주의라는 타락의 용광로에 있으면 흔적도 없이 녹아 버린다. 그들은 순수한 신대륙에 가서 신앙공동체를 구축하면서 지상천국을 건설하자고 맘먹었다. 레이덴으로 이주한 지 십일 년이 지난 후였다.

그렇게 결정하기까지에는 헨리 허드슨의 신대륙 발견 소식이 발단이 되었다. 그들이 막 레이덴에 도착하던 해(1609년), 탐험가 허드슨은 일본ㆍ중국으로 가는 북동항로를 찾기 위한 4차 항해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와 계약했다. 허드슨은 일본으로 가는 지름길을 발견하지 못하고 북극해를 방랑하다가 북서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오늘날 뉴욕 주에 해당하는 신대륙을 만났다.

(허드슨)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태평양과 만날 것으로 기대했으나 강폭은 좁아지고 내륙으로 판명되었다. 그래도 강 이름 하나는 제 이름으로 남겼으니 개인적으론 성과가 없는 건 아니다.

끝내 일본으로 가는 뱃길을 발견하지 못한 그는 돌아오는 길에 영국에 정박했다가 신대륙에 관한 정보를 유출시키지 않으려는 영국 정부의 방해로 네덜란드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허드슨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의 계약 때문에 지도와 항해 정보만 따로 보내고 자신은 영국에 남았다. 덕분에 네덜란드 사람들도 북위 40도 쯤에 광활한 신대륙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1620년, 존 카버를 지도자로 삼은 일백여 명의 레이덴 청교도들이 짐을 쌌다. 그들은 운하를 따라 로테르담의 델프스하벤 항으로 이동하고는 스피드웰호를 타고 영국의 사우샘프턴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대서양을 횡단할 수 있는 큰 배 '메이플라워' 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두 달 뒤 메사추세스의 케이프코드에 도착한다.

항해가 지연되는 바람에 겨울에 도착한 그들은 땅이 얼어 개간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봄이 올 때까지 배에서 생활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서로의 생활을 규약하고 공동체의 새로운 질서를 정할 서약서를 작성한다. 이를 '메이플라워 서약'이라고 하는데, 자치와 민주와 평등의 원리를 담았다.
 
항해 준비하는 메이플라워호
 항해 준비하는 메이플라워호
ⓒ 위키피디아

관련사진보기

   
메이플라워 서약은 다수의 자유 의지에 의한 정부 설립을 결정한 최초의 서약으로 평가받으며 이는 미국 독립정신의 토대가 된다. 이 사상은 네덜란드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철회령'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청교도들이 레이덴에서 생활하면서 자연스레 습득한 것이다. 훗날 미국 독립선언문은 이 '철회령'(암스테르담 편에서 다시 설명)의 아류이다. 요즘 기준으로 AI가 검색하면 싱크로율 80% 이상의 표절에 해당될 터이다.

미국 2대 대통령이며 독립선언서 작성에 관여했던 존 애덤스는 독립혁명 자금 마련을 위해 암스테르담을 방문했다. 그는 네덜란드의 정치사상이 자신들의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을 간파하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대통령이 된 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미합중국은 네덜란드의 복제품에 불과하다"라고.

일정이 빠듯해 한 도시에 오래 머물 수 없는 우리는 보폭을 늘이며 바삐 걸었다. 저만치 레이덴 역이 보였다. 뒤돌아보니 붉은 벽돌의 시청 건물이 햇살에 붉게 타오르고 있다. 이 사연 많은 도시를 스치듯 지나갈 수밖에 없는 미안함에 내 마음도 붉어진다.
 
레이덴 시청 신청사
 레이덴 시청 신청사
ⓒ 황인규

관련사진보기

   
레이덴에서 다시 열차를 탔다. 얼마쯤 지나자 댄 헤그가 나온다. 역사 밖으로 현대식 건물이 삐죽삐죽 솟아 있다. 커튼 월로 번쩍이는 고층 유리건물이 낮은 시선에 익숙해진 나를 압도한다.

댄 헤그, 네덜란드 정치 일번지. 내각(국회)이 있고 각종 행정기관이 밀집돼 있는 곳. 이 나라 권력의 중심지이자 국제적인 행정도시. 무엇보다 우리 역사 교과서에 이준 열사가 장렬하게(?) 순직한 도시 헤이그.

일견 거기부터 가야할 것만 같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권력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동한다. 드러나는 권력은 권력이 아니다. 우리가 청와대 정문 앞에서 서 있으면 권력을 느낄 수 있을까. 권력은 감각으로 포착되지 않는 작용이다.

권력은 상징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스펙터클하게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권력의 자장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스펙터클의 이면을 흘깃거린다. 공자가 그리 내세우는 정명(必也正名乎)이란 스펙터클 그 너머를 조준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름을 바로 세우는(正名) 정치이다. 권력이 작용하는 공간으로서의 댄 헤그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건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문화의 상징이다. 가장 유럽답지 않은 도시면서 가장 유럽스러운 도시, 로테르담. 그곳으로 직행하자. 살짝 들썩였던 엉덩이를 내리누르며 나는 눈을 감았다.

태그:#홀란드 인문산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설가. 『디고』, 『마지막 항해』, 『책사냥』, 『사라진 그림자』(장편소설), 르포 『신발산업의 젊은사자들』 등 출간. 2019년 해양문학상 대상.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