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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동료의 엄마가 친구분과 단 둘이 대만으로 해외여행을 떠나신다고 한다.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친구와 단 둘이 해외여행이라니 참으로 낭만적이다 싶은데, 딸은 엄마의 낭만을 위해 미친 듯이 인터넷을 뒤지고 있다.

엄마에게 딱 맞을 패키지여행 상품을 찾아 가격을 비교하고 '이거다' 싶은 상품이 나올 때까지 고르고 또 고르기를 수차례... 드디어 맘에 드는 상품을 예약했다며 좋아하는 동료의 얼굴엔 뿌듯함이 가득하다.

여행의 첫날, 효녀 따라잡기에 여념이 없던 회사 동료가 누군가와 카톡을 하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비행기 잘 타셨대?" 묻는 나를 보며 한숨부터 짓고 만다.

"오늘 여행 떠나면서 어젯밤에 김치를 담그셨대요."

아...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 엄마들은 어쩜 이리 다 똑같을까? 피식, 웃음부터 난다. "누가 먹는다고!"로 시작해서 "김치 담그고 아파 죽겠는데 어떻게 여행을 다닐 거냐?"로 이어져 "암튼 엄마들은 이상해"로 끝나는 이 레퍼토리, 왠지 낯이 익다.

막내딸이 보고 싶다는 엄마, 아빠의 말에 심히 마음이 동하여 피곤한 몸을 질질 끌고 주말에 부모님 집에 다녀왔다. 일흔을 넘긴 부모님의 몸 이곳저곳이 말썽을 부려 병원을 내 집처럼 드나들고 계신 게 영 마음에 걸리던 차였다. 막내딸의 등장으로 얼굴에 화색이 돌 부모님도 보고 싶고, 무엇보다 엄마가 해주는 집밥이 너무 그립기도 했다.
 
아삭아삭 하니 맛이 들기 시작한 열무김치가 반찬으로 올라왔다.
 아삭아삭 하니 맛이 들기 시작한 열무김치가 반찬으로 올라왔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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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온갖 채소들의 향연으로 늘 시퍼런 풀이 가득했던 밥상을 보며 "아, 뱀 나오겠어!" 입을 삐죽거리던 나였는데, 이제는 그런 반찬들이 너무 정겹고 맛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식탁에도 아직 숨이 살아 있는 배추김치와 아삭아삭 하니 맛이 들기 시작한 열무김치가 반찬으로 올라 왔다.

"웬 새 김치야? 김치 담갔어?"

장마철이 되면 채소 값이 오르니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김치를 담그셨단다. 배추김치랑 열무김치. 내 것도 만들어 놨으니 나중에 택배로 보내주시겠단다. 그 다음은 나의 그 뻔하디 뻔한 레퍼토리.

"아니, 아파서 잘 걷지도 못하는 양반이 무슨 김치를 담가서 어쩌고저쩌고... 지난 겨울에 담근 김치도 많은데 어쩌고저쩌고..."

근데 새로 담근 김치가 너무 맛있다. 아삭아삭 새콤하게 익어가는 열무김치는 열무비빔국수에 제격이겠고, 아직 새로 담근 풋내가 나는 배추김치는 된장찌개랑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두 노인이 배추와 열무를 사다 낑낑거리며 씻고 다듬고, 김치 속을 준비했을 생각을 하니 '힘들게 그런 걸 왜 하나' 싶어 속에서 화딱지가 오르다가도 마음 한편이 찌릿하다.

당신들 드실 생각에 그걸 만드셨을까, 자식들 먹일 생각에 김치 담그셨겠지. 그러더니 엄마는 또 다리가 아프네, 허리가 아프네, 난리다. 이 병원 가서는 뭘 하고, 또 저 병원에서는 무슨 치료를 받았다고 병원 기행을 술술 풀어낸다.

"아니, 그러면 김치를 담그지나 말지, 엄마는 정말 이상해!"

엄마들은 정말 이상하다. 여행의 설렘이 가득한 행복한 시간에도, 몸에 찌릿찌릿 통증이 오는 고통의 순간에도, 엄마들은 가족을 위해, 딸을 위해, 다른 누군가를 위해 김치를 담근다. 그리고 딸들은 김치를 담그다 혹여 병이라도 날까 싶어 엄마에게 화를 내고 만다.

아프다면서도 김치를 담그는 엄마의 마음과 그런 엄마를 보며 울화통을 터트리는 딸의 마음은 결국 서로 맞닿아 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 서로를 아끼는 마음,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 그 마음으로 당신 몸을 힘들게 하고, 엄마에게 화를 내고, 걱정을 하고, 후회를 한다.

여행 전날 김치를 담그는 엄마의 무모함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회사 동료는 '엄마가 잘 도착했다는 문자가 없다'며 또 걱정을 하고 있다. 아, 어쩜 저렇게 세상 엄마와 딸은 다 똑같을까. 화냈다 걱정했다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동료를 보고 있자니, 어느 날의 우리 엄마와 나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우리 엄마는, 나는 이해 못 할 이유를 들며 또 새 김치를 담그실 거다. 못 말리는 우리 엄마. 다음엔 울화통을 터트리는 대신 부모님 집에 내려가 같이 김치를 담가야겠다. "엄마는 이상해!" 대신 "엄마 고마워!"라고 마음을 전해 봐야지. 나를 살찌우고, 나를 살게 하는 우리 엄마표 김치. 오늘따라 아삭아삭 더 감칠맛이 난다.

태그:#김치, #엄마, #딸, #이상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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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아이입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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