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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한·일 갈등 국면에서 한 발짝 비켜 있는 듯하지만 실은 중요한 기능을 하는 변수가 있다. 바로 북한이다.

수면 위에서 보면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이 한일관계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것 같지만, 수면 아래서 보면 북한이란 변수가 그에 못지않은, 어쩌면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북한 변수는 한일관계의 변화를 설명하기에 충분한 요인이다.

우선,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한일관계가 최근 들어 악화되고 있다'는 말이 한일관계의 본질을 올바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일관계는 지금뿐 아니라 과거에도 험악한 적이 많았다. 박정희 정권 때인 1974년 8월과 9월에는 양국이 국교중단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일본과 유달리 친했던 박정희 정권 때도 파국 직전까지 간 적이 있을 정도로, 한일관계는 화약고처럼 항상 위험했다.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는 위험한 관계였던 것이다.

북한과는 관계가 악화되다가도 동족이라는 이유 때문에 감정이 확 풀어지는 일이 있지만, 일본과는 그럴 만한 일도 없어 감정이 누그러질 계기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1945년 8.15 해방 이후 수십 년간 한·일 양국은 물리적 충돌 없이 그럭저럭 지내왔다.

이는 양국의 갈등 폭발을 억제해온 요인들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 요인들로 인해 한일관계가 파탄되지 않고 이제까지 유지돼 왔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일관계가 최근 들어 악화되고 있다'고 표현하기보다는 '한·일 갈등을 억제하던 요인이 최근 들어 약화되고 있다'고 표현하는 편이 상황의 본질에 좀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한일관계 파탄을 억제해온 최대 요인은 아무래도 미국의 중재다. 그 다음 요인들 중 하나가 바로 북한 변수다.

북한 변수 : 북한 위협에 대한 공동대응 필요성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났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것으로,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북미 정상이 손을 맞잡은 모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났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통신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것으로, 군사분계선(MDL)을 사이에 두고 북미 정상이 손을 맞잡은 모습.
ⓒ 조선중앙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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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한·일 양국이 충돌 일보 직전에 갈등을 해소하곤 했던 데는 '북한 위협에 대한 공동대응의 필요성'이 크게 작용했다. 미국의 중재 때문에 충돌을 자제한 측면도 컸지만, 대북 공동대응 필요성 때문에 자제한 측면도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공동대응 필요성이 낮아지면서 최근 들어 한일관계가 위험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의 논문 '위기의 한일관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는 "한일관계의 최대 갈등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독도, 역사인식을 둘러싼 마찰은 경험적으로 볼 때, 그 빈도와 심도의 양 측면에서 1990년대 이후 한층 격화되었고, 2000년대 들어서도 수그러들기는커녕 더욱 증폭"됐다면서 그 원인 중 하나를 이렇게 설명한다.
 
"냉전 종결에 따라 한일관계의 갈등 요소는 오히려 증폭되었다. 냉전 시기 한·일 간의 결속을 강화시켰던 요인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 하에서의 반공 연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냉전체제 하에서 한국과 일본의 긴밀한 협력을 기반으로 하여 대(對)공산권 봉쇄 전략을 추진해왔다. 이러한 국제정세 하에서 한·일 간의 독도 및 역사인식을 둘러싼 갈등은 잠복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냉전체제의 붕괴로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민족주의적 갈등 요소는 여과 없이 표면으로 분출하게 되었다." - 한양대 일본학국제비교연구소가 2014년 발행한 <비교 일본학> 제32집.
 
항상 화약고 같은 한일관계가 결정적 파국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양국이 대북관계에서 공동 보조를 취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논문은 이 외에도 1990년대 이후의 정치적 격동 속에서 양국 정치권의 세대교체가 급격히 이루어져 정치인들의 인적 네트워크가 약해진 점, 1990년대 이후의 국력 신장으로 한국의 대일 태도가 변한 점,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 정계가 한층 더 우경화되는 점 등을 한일관계 변화의 원인들로 제시했다. 이 논문은 이런 측면들을 인정하면서도, 탈냉전으로 인한 긴장 완화가 한·일 갈등을 촉진하는 측면에 좀더 비중을 두고 있다.

세계의 여타 지역과 달리 동북아에서는 탈냉전이 더디게 진행됐다. 동북아 국제정치 행위자인 남북한과 미국·중국·러시아·일본 6개국을 연결하는 15개의 일대일 관계 중에서 남북관계·북미관계·북일관계 3가지만큼은 1990년대 탈냉전 때도 평화관계로 전환되지 않았다. 1990년대 초반부터 역사문제나 위안부 문제 등으로 한일관계가 삐걱거리면서도 그럭저럭 유지된 것은 이렇듯 북한을 둘러싼 냉전구도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이라는 공동 위협 앞에서 양국이 상호 갈등을 억누를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럭저럭 관계가 유지되는 속에서도 한일관계는 지속적으로 이완돼 왔다. 북한 위협이 여전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냉전시대보다는 동북아가 상대적으로 평화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탈냉전 이후의 역대 일본 정부는 대북관계에서 한국과 보조를 맞출 필요성을 점점 더 적게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일본 총리들 연설에서도 드러나는 입장 변화
  
'보고 있나 아베?' 23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의 경제 보복과 독도 침탈 행위 규탄 집회에서 평화의 소녀상 앞에 참가자들이 준비한 아베 총리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이 세워져 있다.
▲ "보고 있나 아베?" 23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의 경제 보복과 독도 침탈 행위 규탄 집회에서 평화의 소녀상 앞에 참가자들이 준비한 아베 총리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이 세워져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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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은 일본 총리들의 '소신표명연설(소신연설)'에서 표출되는 변화를 통해서도 감지할 수 있다. 1991년부터 2013년까지 있었던 34차례의 총리 소신표명연설을 분석한 양기웅·안정화의 공동 논문 '탈냉전기 일본 총리의 한반도 및 한일관계 인식 변화(1991-2013): 국회 소신표명연설 분석'을 읽어보면, 한일관계에 대한 일본 총리들의 인식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다.  

역대 총리들이 '북한 위협'을 언급할 때 한일관계에 대해 어떤 발언을 했는지를 두고 이 논문은 "2000년대 중반부터 북한과 북일관계에 관한 언급 빈도가 한국·한일관계의 그것을 크게 상회한다"고 분석한다. 총리가 북한이나 북일관계를 언급할 때 한국이나 한일관계를 언급하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대북관계에서 한국과 협조할 필요성을 그만큼 적게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논문은 "핵·미사일·납치·국교정상화 문제를 포함하는 대북관계나 북일교섭에서 일본 총리가 항상 언급하던 '한국과(의) 긴밀한 연계'라는 주요한 표현이 2004년 고이즈미 총리의 소신연설부터 사라진" 점을 언급한 뒤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북한 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던 '한국과의 긴밀한 연계'라는 표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래의 '다케시다'는 1987년 11월부터 1989년 6월까지의 총리였다.
 
"다케시타 총리부터 2003년 고이즈미 소신연설까지는 대북관계나 북일 교섭을 언급할 때 항상 '한국과(의) 긴밀한 연계를 통해서'라는 표현이 언급되었던 것이 고이즈미의 2004년 10월 소신연설부터 사라진 것이다. (...중략...) '한국과(의) 긴밀한 연계'는 미·일 혹은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연계'라는 표현으로 대체되거나 삭제되었다." - 한림대 일본학연구소가 2014년 발행한 <한림 일본학> 제25집.

논문에 따르면, 예전에는 '한국과의 긴밀한 연계'를 통해 북한 문제를 다루겠다고 말했던 일본 총리들이 2004년부터는 '관계국들과 연계하여(2004년 10월 고이즈미)', '미국과의 긴밀한 제휴 하에(아베 신조)', '국제사회와의 연계 하에(아베·후쿠다·아소·하토야마·칸·노다)' 다루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두고 위 논문은 "일본에게 대북문제와 관련한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2000년대 중반 이후 점차 낮아지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고 평가한다. 바로 옆 한국과 제휴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북한으로 인한 긴장 국면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한·일의 안보협력 필요성이 점차 감소하는 상황 속에서 2018년부터는 북한의 이미지가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평화롭게 웃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얼굴이 기존의 북한 이미지를 상당부분 대체하고 있다. 한·일 협력의 필요성이 한층 더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국면이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한·일 갈등을 억제해 왔던 결정적 요인 중 하나가 급격히 희박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지금 같은 한·일 갈등 상황이 앞으로 좀더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의 경제보복 혹은 무역분쟁이 종결되더라도 유사한 상황이 얼마든지 재발할 가능성이 있음을 뜻한다. 한일관계 패러다임을 전면 재검토하고 새로운 갈등해결 시스템을 모색해야 할 단계에 이미 진입해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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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M101.9 (목)11시25분경. (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노비들,왕의 여자,철의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