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30 10:14최종 업데이트 19.07.30 10:15
날카로운 통찰과 통통 튀는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는 2030 칼럼 '해시태그 #청년'이 매주 화요일 <오마이뉴스> 독자를 찾아갑니다.[편집자말]
최근에 지인이 불쾌한 경험에 대해 토로한 적이 있다. 육아/교육 시장에 만연한 불안과 죄책감을 자극하는 세일즈 기법들 때문이었다. 소비자의 불안을 자극하는 것은 소비자로 하여금 구매를 이끌어내는 꽤 좋은 기법 중 하나다. 예를 들어서 한정 판매나 마감 시간을 걸어두면 소비자의 입장에선 지금 사지 않으면 못살 거라 생각하거나 다음엔 더 비싸게 사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빠진다. 그 덕분에 평소라면 구매를 보류했을 사안이더라도 구매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인이 분노했던 부분은 이 정도의 일상적인 수준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지금 어머님이 고민하시는 만큼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지는 거예요'라든가 '좋은 엄마가 되시려면 당연히 이 정도는 하셔야 합니다', '다른 엄마들 다 하는데 안 하신다구요?' 같은 식으로 끊임없이 죄책감을 자아내는 것이다.


육아에 있어서 이런 세일즈의 문제점은 그 끝이 없다는 것이다. 자녀를 가진 부모라면 자신의 자녀에게 좋은 것을 해주길 원하는 한편, 자신이 나쁜 부모가 아니길 원한다. 문제는 이 개념이 매우 불명확하고 공통으로 합의된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좋은 부모의 기준도 없고 나쁜 부모의 기준도 없다. 그 때문에 불안과 죄책감을 바탕으로 한 세일즈는 이 시장 전체를 뒤흔드는 좋은 수단이 된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가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남들 다 한다는 비용경쟁에 합류한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일단 뛰고 보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그만큼 육아와 교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한다.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만 '나쁜 부모', '뒤처진 아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경제력이 '나쁜 부모'가 되지 않는 면죄부가 될 수 있다면 당연히 출산은 고소득자일수록 선호되는 선택일 수밖에 없다.

  

성별 임금수준별 기혼자 비율(20-30대 임금노동자), 자료.김유선, “저출산과 청년일자리” ⓒ 저출산과 청년일자리

 
불안 조장해 아이 위한 소비 부추겨... 저출산에 영향 안 끼쳤을까

실제로 국회 입법조사처가 펴낸 '저출산 관련 지표의 현황과 시사점'을 살펴보면 분만 건수에서 상위 소득자인 8·9·10분위가 차지하는 비중은 과거에 비해 증가한 반면, 2분위를 제외한 1·3·4분위의 비중은 두드러지게 하락했다.

성별 임금 수준별 기혼자 비율에도 현 주소가 반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비혼출산에 대한 터부가 있는 한국의 특성상 결혼은 출산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고소득자에게서 나타나는 높은 출산 건은 그만큼 고소득자의 높은 기혼 비율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남녀 모두 고소득자인 9·10분위에서 높은 기혼 비율을 보인다.

하지만 남성은 7분위, 여성은 8분위 이하로만 내려가도 기혼율은 50%를 넘지 못한다. 특히나 여성의 기혼율은 기혼 여성이 출산 등으로 인해 노동시장을 이탈하는 현상과 함께, 충분히 높은 소득이 아닌 경우 결혼을 기피하는 현상이 반영된 모습을 보인다. 

통계상으로 나타나는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일반적으로 저출산에 대한 해법으로 출산과 육아의 경제적, 사회적 비용을 하락시키는 방안들이 제시된다. 분명 출산과 육아에 대한 노동시장의 적대적 환경과 보육 시스템 등의 개선, 육아 지원금 등이 저출산이라는 상황의 개선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출산과 육아가 경제적인 부분에서 '고비용'이 된 원인 중의 하나가 '아이를 망치는 나쁜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한 소비에 기인한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지금도 육아교육전이나 키즈페어 등에선 부모들의 불안과 죄책감을 자극하며 구매를 독촉하는 경우가 목격된다. 이렇게 쉽게 불안과 죄책감이 자극될수록 '비용'은 올라가고 나쁜 부모가 되지 않기는 점점 어려워진다. 결국 출산과 육아의 경제적 비용과 심리적 비용은 한계에 이른다. 이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에게 불안과 죄책감을 자극한 행동과 방식들이 저출산이란 결과에 영향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이 과거에는 성공적이었던 세일즈 방식이었을지 몰라도 현재는 그 부작용이 늘어가고 있다. 어쩌면 지금은 앞선 질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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