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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3일 한국을 방문한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에 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했다고 국내 언론이 보도했다. 7월 30일 나온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는 내년 분담금으로 50억 달러(약 5조 9천억 원)를 요구했다고 한다. 올해 분담금 1조389억 원의 약 5배에 이르는 금액을 요구한 것이다.

일단은 5배를 요구했으니, 실제로 5배는 아닐지라도 상당한 인상을 희망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예전에는 5년마다 하던 분담금 협상을 2018년부터는 해마다 하게 됐으니, 내년에는 또 얼마나 더 달라고 할지 알 수 없다. 

한·일 무역분쟁 때문에, 또 한반도 평화 문제 때문에 지금의 한국은 한미동맹에 더욱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한국의 발언권이 한층 더 약해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강경책을 막고 한반도 평화를 지킬 목적으로 미국의 이라크 파병 요구를 들어준 적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회고록 <문재인의 운명>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에 시종일관 '무력에 의한 대북문제 해결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천명했다"면서 "그렇게 이끌어가기 위해선 미국 정부의 협조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자면 우리도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계속 들어주다 보면 우리의 세금 부담이 과중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세상을 해롭게 하는 데 일조하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남한테 돈을 줄 때 '어디에 쓸 거냐'고 물어봐야 하는 경우가 있다. 돈이 옳지 않게 쓰일 가능성이 있을 때 그렇게 한다. 지금 상황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는 왜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를 요구했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진은 2016년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을 할 때의 모습.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진은 2016년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을 할 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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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고 외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위대한 미국의 재건'을 부르짖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의 미국이 전성기가 아님을 반증하는 것이다. 지금은 '위대'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의 국력이 '위대'하지 않다는 점은 병력 규모에서도 드러난다. 첨단 무기로 전쟁하는 시대이므로, 병력 규모가 예전 같은 중요성을 가질 수는 없다. 병력이 군사력의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병력은 여전히 국력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 중 하나다. 바로 이 핵심 지표에서 미국의 국력 약화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한국 국방부가 발간한 <2018 국방백서>에 따르면, 2018년 현재의 미국 총 병력은 134만 8400명이다. 이는 59만 9000여 명인 한국군과 90만 명인 러시아군보다는 '위대'하지만, 203만 5000명인 중국군보다는 '위대'하지 않다. 128만여 명인 북한군보다는 '약간 위대'한 편이다. 병력만 놓고 보면 미군은 세계 최고가 아니다.

지금의 미군 병력은 중국군에 뒤질 뿐만 아니라 전성기의 자국 병력에도 한참 못 미친다. 소련이 해체되기 직전인 1990년 8월에 미군 병력은 210만이었다. 1990년 8월 4일자 <한겨레신문>은 워싱턴 특파원발 기사에서 <뉴욕타임스>를 인용해 이렇게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 국방부가 소련군이 동유럽에서 철수한 상황을 전제로 한, 이른바 탈냉전 시대의 미 국방 전략을 마련했다고 전하고, 이 방안에 따르면 미국은 90년대 중반에 가서 미국의 병력 수준을 현재의 2백 10만 명에서 약 25%인 50만 명을 감축할 것이라고 전했다."

1990년만 해도, 중국이 지금처럼 강해지리라고 예상하기 힘들었다. 이때만 해도, 미군 50만 명을 감축해도 미국의 군사 패권 유지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측됐던 것이다.

냉전구도가 와해되는 제2차 탈냉전이 1990년을 전후해 시작됐다면, 그것의 원조인 제1차 탈냉전은 1970년을 전후해서 시작됐다. 이 시기에도 미국은 병력 감축을 추진했다.

1970년 6월 4일자 <경향신문>은 "레어드 미 국방장관은 3일, 앞으로 미국은 병력 1백 만을 감축하여 2백 50만 선의 군사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면서 "월남전 절정기에 3백 50만에 달했던 미군 병력이 2백 50만선으로, 1백만 명을 감축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는지는 말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베트남전(월남전) 절정기인 1960년대 후반에는 미군 병력이 350만에 육박했던 것이다.

한국전쟁 1년 전이자 미국의 세계 최강 등극 4년 뒤인 1949년에도, 미국은 현재보다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1949년 8월 20일자 <경향신문>은 "미 국방성 발표를 보면 미군의 총 병력은 7월 1일 현재 백육십만이며 평화시의 군비체제론 과다하지만, 소련이 붉은 군대 이백 사단 이상을 가지고 동·서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때, 미(美)의 병력은 오히려 부족감이 있다"고 보도했다.

참고로, 그 당시 미국 육군성이 주장하는 소련군 병력은 약 300만 명이었다. 미국이 소련의 위협을 과장하느라 숫자를 부풀렸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위와 같이 현재의 미군 병력은 두 차례의 탈냉전 때보다 적을 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직후보다도 적다. 미국의 군사력이 예전보다 약해졌다고 볼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트럼프의 위험한 미국 우선주의
 
미국 육군.
 미국 육군.
ⓒ 미국 육군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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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는 군사 분야에서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추진하고 있다. 컴퓨터에 문제가 있을 때 누르게 되는 '시스템 복원'을, 트럼프도 군사 분야에서 작동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복원 시점'이 제2차 탈냉전 이전인지 제1차 탈냉전 이전인지 아니면 1945년 이후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확실한 게 있다. 그가 자기네 돈이 아닌 동맹국 돈으로 '시스템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의 증액을 요구하는 동기 중 하나도 거기에 있다. 한국 국민들이 내는 세금을 보태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려는 것이다. 김열수(한국군사문제연구원)와 김경규(성신여대)의 공동논문 '트럼프 대통령의 위대한 미국 재건 전략: 힘의 절약과 비축'은 강력한 군사력 건설을 위한 트럼프의 계산을 이렇게 설명한다.

"강력한 군사력을 건설하려면 천문학적인 국방비가 투입될 수밖에 없는데, 미국은 이런 국방비의 일부를 동맹에게 전가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동맹들이 자주국방의 차원에서 자신들의 방위비를 올려 안보를 튼튼히 하고 또 주둔 미군을 위해 방위비를 많이 분담하면 그 절약된 돈을 다시 군사력 건설에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중략) 결국 동맹을 협박해서 최강의 미국 군사력을 건설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국방대학교가 2018년 발행한 <국방연구> 제61권 제3호.

방위비 분담금 증액으로 한국 국민들의 세금 부담이 커지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게 증액된 돈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쓰일 것 같지 않다는 점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트럼프가 추진하는 군사력 증강 속에는 위험 요소가 내재돼 있다. 그 위험 요소를 부추기는 쪽으로 우리의 세금이 쓰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국방대학교가 발행한 위 논문은 "이렇게 몇 년이 지나면 미국은 위대하게 재건될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 뒤 이렇게 경고한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재건 전략은 세계적 차원에서 보면 부정적인 측면이 훨씬 더 커 보인다. 국제평화와 안전 그리고 번영을 위해 세계와 함께 이런 전략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통한 미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이런 전략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넘어 오로지 미국(Only America)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논문은 "(트럼프는) 공동 번영에도 관심이 없다"면서 "오로지 미국의 일자리와 경제성장만이 관심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이나 우방도 한낱 수단으로 취급하고 있다. 동맹을 가치나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금 방식으로 동맹국들의 분담금을 마구 증액하다 보면 몇 년 안 가서 '위대한 미국'이 재건될 수도 있다고 위 논문은 예측했다. 그렇게 재건된 '위대한 미국'이 미국 일방주의를 강화하고 미국의 세계 압박을 부채질하게 될 거라는 것이 위 논문의 경고다. 동맹국들한테 거둬진 방위비가 세상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위대한 미국'이 재건되면,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더 거세지고 한국민의 세금 부담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에 대해 우리 국민들과 정부가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다.

태그:#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도널드 트럼프, #한미동맹, #위대한 미국 재건, #미군 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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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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