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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6일 오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원폭 희생자 위령식에 참석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6일 오전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원폭 희생자 위령식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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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사실이지만 1950년 6.25 전쟁 당시, 한국에는 각종 사업 등을 매개로 체류하고 있던 일본인들이 상당수 있었다. 전쟁 초기, 기습적인 북한의 남침에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는 등 전세가 험악해지자 한반도 체류 일본인들 역시 전화(戰火)를 피해 고국으로의 귀환을 도모했다. 하지만 당시 연합군(GHQ) 점령 하에 있었던 일본 정부는 이들에 대한 귀환 명령 등을 통제하지 못했고 결국 이들은 대부분 '자력'으로 피난을 실시, 부산이나 목포 등 일본과 가까운 항구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곳에 정박해있던 일본 민간 화물선 등을 통해 일본으로 귀환했다.

이때의 번잡한 경험은 일본인들에게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은 어떻게?'라는 심오한 과제를 부여하게 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 민간교류가 확대되고 동시에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증대되는 등 복합적인 상황이 맞물리면서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에 대한 과제는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일본 방위연구소가 발간한 보고서 <조선반도 유사시 피난을 둘러싼 문제>(2013.5.15)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한반도 유사시'에 대한 검토를 시작한 것은 1993년으로 북한의 핵개발 의혹에 따른 위기가 그 계기였다.

이어 1996년에는 하시모토 류타로 내각에 의해 한반도 내 일본인 보호 및 구조, 피난민 대책 등이 안보 과제로 본격 다뤄지게 된다. 2010년에는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을 위해 한국에 자위대를 파견시키겠다는 의사를 표명, 한일 양국에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에 대한 논의들
 
 재외 일본인 보호조치 훈련중인 일본 자위대(출처: 해상자위대 홈페이지)
 재외 일본인 보호조치 훈련중인 일본 자위대(출처: 해상자위대 홈페이지)
ⓒ 최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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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논의는 어떨까? 아베 내각 출범 이후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 '자위대 파견' 등에 대한 검토와 요구는 날로 강화되어 왔다. 그런데 특기할 만한 점은 이러한 논의가 어느 특정한 시점에 이르러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는 것인데, 이는 2016~2017년 사이의 시기로 짚어볼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2016년 3월, 일본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을 규정한 '안보법제'가 시행되는 시점부터다.
  
"(한반도에서) 일본인의 안전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정부가 '자위대에 의한 주한 일본인 수송' 실시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검토 상황은 일의 특성상 대답을 보류하겠습니다만... 어쨌든, 필요한 경우에 주어진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체제 정비에 힘쓰는 동시에 필요한 훈련을 실시하고 재외 일본인의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해 나갈 생각입니다." - 일본 방위대신 기자회견(2017.4.21.)

"일본 정부는 한반도에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을 보호, 대피시키기 위해 필요한 예방책을 항상 연구해 왔습니다." - 아베 총리 중의원 공개발언(2017.4.19.)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이 같은 발언들은 사실상 한반도의 전쟁위기와 이에 따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암시하고 있었다. 이는 당시 한국 외교부가 유감을 표명할 정도의 첨예한 논의사항이기도 했다.

이 밖에 2017년 10월 일본 중의원 선거 당시 자민당은 '재외 일본인 구출' 관련 내용을 공약으로 제시했는데 이 또한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을 배경에 놓고 있다는 의혹이 일며 논의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반도 내 일본인 구출'과 GSOMIA

앞서 언급했듯, 아베 내각에서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에 대한 논의가 불붙기 시작한 것은 일본 안보법제가 가동된 2016년~2017년경부터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한국과 일본이 체결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즉 지소미아(GSOMIA)가 체결, 가동된 때와도 일치한다.

특히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에 대한 논의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2017년은 한일 양국이 가장 많은 군사정보를 교류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지난 1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에 한일 양국이 교류한 군사정보는 모두 19건으로 한일 양국이 3년간 교류한 전체 정보 건수의 79.1%에 달한다.

정리하자면, GSOMIA를 통해 제공된 군사비밀의 대부분이 2017년에 빠져나갔고, 이는 일본에서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에 대한 논의가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시기, 즉 2017년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에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과 일본이 GSOMIA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들에는 상당한 접점이 있을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GSOMIA가 체결될 당시(2016년 11월), 일본 언론은 어떤 기대와 반응을 보였을까? (관련 기사 : 한일 갈등,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에 미칠 영향은?) 2016년 GSOMIA 체결 당시, 일본의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 등 주요 일간지는 일제히 GSOMIA를 통해 일본이 얻을 수 있는 이익과 정보들에 대해 특필했다. 이들의 공통적인 논조는 GSOMIA를 통해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 활동에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극우 <산케이 신문>의 경우에는 한발 더 나아가 "한국군의 배치와 사용 가능한 공항·항만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GSOMIA가 필요했다"는 식의 노골적인 보도(2016.11.23.)를 내기도 했다.
 
 GSOMIA 체결직후 <산케이 신문>의 보도(2016.11.23.)
 GSOMIA 체결직후 <산케이 신문>의 보도(2016.11.23.)
ⓒ 최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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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GSOMIA는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카드로 떠올랐다. 일본인들이 한반도에서 피난을 시도할 때 거쳐야 할 주요 거점에 대한 정보를 GSOMIA를 통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한국에 있는 일본인의 안전을 지키는 데 활용할 기반자료를 획득하고 실행계획을 고도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일본이 이러한 정보들을 원한다고 해도 한국 측은 정보의 제공을 거절할 수 있다. 하지만 GSOMIA가 협정의 효력이 발하고 있는 한, 일본은 상황에 따라 군사정보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가지고 있는 것이고, 더불어 이는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활동을 연계할 수 있는 중요한 교두보가 된다.

GSOMIA 체결 이후 한국과 일본이 세부적으로 어떤 정보를 교환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실제로 일본은 이후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에 대한 논의를 상당히 진전시킨 것으로도 보인다. 즉, 구체적인 실행계획이 검토된 흔적이 보인다는 것인데, 아래는 지난해(2018.1.16.) 일본 오노데라 이쓰노리 방위대신과 일본 기자의 문답 내용을 발췌, 재구성한 것이다.
 
Q : 한반도 유사시 (재외 일본인을) '대마도'에 일시적으로 대피시키고, 거기에서 왕복 수송하는 것을 정부가 검토, 자위대와 미군이 협력 수행한다는 보도가 있는데?

A : 한반도에서 유사시 일본인의 보호와 대피가 필요한 경우의 대응에 대해서는 평소 다양한 준비·검토를 실시하고 있음.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일본인의 안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대답은 보류.

Q : 대마도는 한반도에서 약 50km, 매우 가까운 위치에 해당. 이러한 관점에서 대마도는 일본인을 대피시킬 때 중요한 거점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A : 원래 우리들로서는 대마도는 일본의 안전 보장상, 특히 국경에 인접한 같은 낙도의 일부라고 생각. 안전보장상에도 중요한 장소로 인식하고 있음. 자위대가 그곳에서 임무를 수행할 것으로 인식.

이는 2018년 1월에 있었던 방위대신의 기자회견이다. 자위대가 추진할 거점으로 대마도가 언급되는 등 언뜻 살펴봐도 2017년에 비해 진전된 계획이 구축되고 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뿐만이 아니다. 일본은 이와 연계된 '재외 일본인 보호조치 훈련', '항공자위대 C-2 수송기 국외 운항훈련' 등을 2017년 후반기부터 본격 시행해오고 있다. 다양한 시도를 통해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에 대한 복안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통틀어 당시 일본이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이라는 소란스러운 과제와 GSOMIA를 상당히 밀접하게 연계해왔음을 알 수 있다.

GSOMIA 파기가 곤혹스런 일본
 
 2016년 실시된 재외일본인 보호조치 훈련(출처: 일본 방위성)
 2016년 실시된 재외일본인 보호조치 훈련(출처: 일본 방위성)
ⓒ 최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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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은 일본이 6.25 전쟁 이후부터 가져온 고민거리였다.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1990년대를 기점으로 2010년 간 나오토 총리 등을 지나 지금의 아베 총리에게로 그 공이 넘어온 것이다. 

그 과정 속에 마침내 체결된 GSOMIA는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이라는 과제에 중간점을 찍어줄 결정적 협정이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아베 내각이 2017년도부터 이에 대한 논의를 대단히 정력적으로 가동했음을 앞선 사례를 통해 이야기했다.
 
북한의 위협이 높아짐에 따라 정보 교환이 필요한 국면을 맞이하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일본이 필요로 하는 정보가 '인질'이 될 수도 있다

*<산케이 신문> 카토 타츠야, <한국 새 정부를 말한다. 「일본은 위기 속에 있다」> 보도(2017.6.16.)

<산케이 신문>의 카토 타츠야 전 서울지국장은 이에 더해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이 좌절되면 한국에 있는 5만~6만 명의 일본인이 죽게 내버려둘 위험도 있다"는 극단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이 같은 발언은 GSOMIA의 폐기가 행여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 계획을 좌절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를 잘 담아내고 있다.

실제 오늘과 같이 첨예한 경제보복 국면에서도 일본은 GSOMIA 폐기에 대한 주장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 관방장관, 방위대신, 외무대신 등 정부 지도자들은 GSOMIA 유지에 대한 희망을 확고히 내비치고 있으며, 일본 언론에서도 일본이 나서서 폐기를 주도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오죽하면 <산케이 신문>이 운영하는 극우 오피니언 사이트 IRONNA에서 조차 GSOMIA를 폐기하자는 주장은 거의 거론되지 않는다. 특기할 만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당연히 아베 총리로서도 고민이 될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경제보복으로 말미암아 일본이 그토록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GSOMIA가 폐기될 수도 있는 위기에 놓였다는 것이. 그리고 이는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이라는 계획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음을 뜻한다. 물론,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은 어떤 이유에서건 허용될 수 없는 사안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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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칼럼니스트, 작가 한국 근현대사 및 일본 역사/정치 관련 글을 쓰고 있습니다. ○ 역사 팟캐스트 채널 <역사와 사람 이야기>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