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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6월 1일 오후 주요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을 돌아오는 구간에서 대규모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6월 1일 오후 주요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을 돌아오는 구간에서 대규모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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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서 남성의 삶을 선택한 A씨는 자궁적출수술을 하고나서도 한참 뒤에야 성별 정정 신청을 낼 수 있었다.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부모동의서를 쓰기까지 1년이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반면 B씨는 고환적출수술까지 했지만 주민등록번호 뒷부분 앞자리를 1에서 2로 바꾸지 못했다. 그는 아버지의 동의를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성인이잖아요. 미성년자도 아니고 성년자인데. 부모동의서가 왜 필요한지 좀 많이 의문이 들었어요. 법원에 많이 묻고 싶었어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들이 2013년~2018년 동안 성별 정정 신청을 했거나 신청을 준비 중인 트랜스젠더(성전환자) 70명을 설문조사하고 이 가운데 6명을 심층 인터뷰 해 펴낸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절차개선을 위한 성별 정정 경험조사' 보고서 속 이야기다.

조사에 참여한 70명 가운데 32명(45.7%)는 실제로 성별 정정 신청을 하거나 준비하는 과정에서 부모동의서 제출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종교적 이유나 사회적 편견으로 부모와 갈등을 빚는 일이 많은 트랜스젠더가 부모의 동의를 받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며 부모동의서 제출요구를 "큰 장벽"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성별 정정 신청 때 부모동의서 제출을 요구하는 나라는 해외에서는 사례를 찾기가 어렵다. 13년 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처음 제시한 성별 정정 요건도 아니었고, 오직 대법원가족관계등록예규 537호에만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인권단체들은 성별 정정 허가신청서에 부모동의서를 첨부하도록 한 예규 3조 1항 6호의 삭제를 요구해왔다. 대법원은 그들의 오랜 외침에 응답, 지난 19일 해당 조항을 삭제한 예규 개정안을 공개했다.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6월 1일 오후 주요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을 돌아오는 구간에서 대규모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개최된 6월 1일 오후 주요 행사가 열린 서울광장을 출발해 광화문광장을 돌아오는 구간에서 대규모 서울퀴어퍼레이드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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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SOGI(성적지향·성별정체성)법정책연구회는 대법원예규 개정을 환영한다는 논평을 냈다. 이들은 "대법원예규는 2006년 제정 당시부터 성별 정정 신청 시 부모동의서를 첨부하도록 규정했으나 성인에게만 성별 정정을 가능하게 하면서 부모 동의까지 요구하는 것은 트랜스젠더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됐다"며 "이번 개정은 트랜스젠더들의 구체적 현실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했다.

하지만 부모동의서 제출 요구가 사라진다고 해서 성별 정정 제도가 완벽해지진 않는다. 법원은 여전히 성별 정정 신청의 전제조건으로 외과수술을 요구하고 있다. 또 트랜스젠더들은 심문과정에서 정체성을 의심받거나 외모나 이성관계 등 불필요한 사생활 관련 질문을 받는 등 인권침해를 당하기도 한다. 법원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고, 대법원예규에 명확한 절차가 정해있지 않다는 문제점도 남아 있다.

SOGI법정책연구회는 "대법원이 이번 예규 개정을 계기로 트랜스젠더의 기본권을 온전히 보장하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방안을 논의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또 "2006년 이후 지금까지 방관해온 국회와 정부 역시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트랜스젠더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성별 정정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태그:#트랜스젠더, #성별 정정, #LGBT, #성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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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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