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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 말씀 드려도 될까요? 지금 사람들이 희생양을 던져주면 모두 언론들 말에 따라서 돌 던지고 합니다. 사실관계도 확인을 하지 않고요. 지난 한 주간 저희 집사람이 얼마나 무서워했나 모릅니다. 매일 협박 이메일에 전화에, 집 전화번호는 어떻게 누구 마음대로 공개를 해서 집 전화 제 휴대폰이 5초마다 울리니 어떤 전화를 받아야 하고 어떤 전화를 안 받아야할지도 모릅니다.

학교 윤리위가 소집이 됐다는데 학자가 윤리위에 소집돼서 끌려간다는 게 얼마나 사형선고에 가까운 건지 모르십니다. 시간이 흘러서 모든 게 밝혀진대도 누가 관심이나 갖겠습니까. 남의 고통이나 희생을 어떤 정의를 위해서든 당연하게 생각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27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공주대 A 교수의 토로다. 조국 후보자의 딸이 논문 제3저자로 등재됐다는 의혹의 당사자인 이 교수는 그간의 의혹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조 후보자 딸의 참여는 논문 발표가 아닌 논문 초록에 해당하며 "특혜는 일절 없었다"는 것이다.

언론의 광풍 아래 '1대 다수'의 취재 경쟁에 시달려야 하는 A 교수의 절절한 토로는 과연 누구를 위한 청문회 정국인지 되돌아보게 만든다.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의혹 보도, '단독' 보도에 시름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단적으로 대변하는 목소리라 할 만하다.

지난 8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 이후 한국 언론의 보도 양상은 그야말로 전례 없는 수준이었고, 또 9월 2~3일로 확정된 인사청문회 전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일각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른바 '아방궁' 보도, '논두렁 시계' 보도의 악몽과 공포를 호소하는 이도 여럿이다.

4일 만에 논조 뒤집은 SBS... 27만 건 쏟아진 조국 보도
 
지난 24일, SBS는 <조국이 내려놓겠다는 웅동학원, 자산보다 '빚' 더 많아> 를 보도했다. 앞서 보도한 내용과 반대다.
 지난 24일, SBS는 <조국이 내려놓겠다는 웅동학원, 자산보다 "빚" 더 많아> 를 보도했다. 앞서 보도한 내용과 반대다.
ⓒ SBS "8시 뉴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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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가족 운영 창원 웅동학원 법인재산만 130억 원대>
지난 20일 SBS 보도다. SBS는 "재정난을 겪고 있다는 그동안의 소문과는 다른 것"이라며 웅동학원의 자산 현황을 나열했다. 기사에서 SBS는 "지난 2월 기준 웅동학원 자산현황은 토지 108억4700만원, 건물 18억1천만 원, 금융자산 6200만 원 등 127억2천만 원으로 잡혀있습니다"라며 "다만 웅동학원이 사립학교법 적용을 받기 때문에 학교가 문을 닫지 않는 한 재산을 처분하기는 힘듭니다"라고 보도를 이어갔다.

SBS의 제목과 보도 논조만 보면, 웅동학원은 재정난 소문과는 달리 튼실한 사학으로 보인다. 그런데 며칠 만에 SBS가 자사 논조를 완전히 뒤집는다. 조 후보자가 사모펀드와 웅동학원을 사회에 기부한다고 밝힌 지난 24일, SBS <8뉴스>는 며칠 전 자사 보도와 완전히 다른 논조를 보였다. 

<조국이 내려놓겠다는 웅동학원, 자산보다 '빚' 더 많아>
SBS는 이 보도에서 "논란도 있습니다. 웅동학원의 경우 자산보다 채무가 더 많다는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며 "공시를 보면 웅동학원 자산은 모두 127억 원인데, 판결문에 드러난 재단 채무는 180억 원이 넘습니다"라고 밝혔다. 왜 20일 보도에선 이 채무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는지, 며칠 만에 없던 부채가 생긴 것인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검증'이 부실하거나 '아니면 말고식' 의혹 제기가 지상파를 비롯한 유력 언론들에 횡행한다. 소위 '신상 털기'도 도를 넘었다. 지난 21일자 <매일경제>의 <조국 딸 오피스텔... 거주자 주차장엔 차 10대 중 2대가 포르쉐>는 조 후보자가 거주하는 오피스텔을 기자가 직접 찾았다는 내용이었지만, 논란이 일자 <매일경제> 측은 이 기사를 삭제했다. '조국 후보자 딸이 포르셰를 타고 다닌다는' 주장은 강용석 전 변호사 등이 진행하는 유튜브 '가로세로연구소'가 제기한 주장이었다. 조 후보자와 민주당은 이 주장을 허위조작정보라고 반박했다.
 
'매일경제'가 지난 21일 '조국 딸 오피스텔... 주차장엔 차 10대 중 2대가 포르쉐'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이 기사는 22일 자정께 삭제됐다. 왼쪽은 네이버 뉴스에서 확인한 '매일경제' 보도. 오른쪽은 삭제된 현재 상태.
 "매일경제"가 지난 21일 "조국 딸 오피스텔... 주차장엔 차 10대 중 2대가 포르쉐"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하지만 이 기사는 22일 자정께 삭제됐다. 왼쪽은 네이버 뉴스에서 확인한 "매일경제" 보도. 오른쪽은 삭제된 현재 상태.
ⓒ 네이버 갈무리/조재현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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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량도 '역대급'이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후보자 지명이 이뤄진 지난 9일부터 27일 오후 5시까지 검색된 기사만 27만 8천 건이 넘었다. 군소매체의 어뷰징 기사를 포함한 것이겠지만, 실로 어마어마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러한 보도의 선두에 선 것은 조중동과 보수 종편을 비롯한 보수 언론이다. 28일 tbs 라디오에 출연한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에 따르면, 같은 기간 경향, 동아, 조선, 중앙, 한겨레 다섯 개 신문의 지면 보도 568건 중 <조선일보>는 무려 159건을 차지했다.

<동아일보>는 같은 기간 "11일 동안 조국 보도가 1면"이었고, <조선일보>는 "17일부터 26일까지 쭉 한 번도 쉬지 않고 모두 1면 톱기사"였다고 한다. 채널A, TV조선 등 종편 보도 역시 대동소이했다고 보면 다르지 않다.

문제는 소위 제대로 된 '검증'이 이뤄졌느냐다.

"기자들이 대체 왜 이러지?"

"사람들은 기자들이 알고도 그런다고 말한다. 오해다. 기자들은 잘 모른다. 사람들은 기자들이 고의로 그런다고 말한다. 정파적 이유 때문에. 그것도 절반쯤은 오해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 하는 건 이것이다. 기자들이 대체 왜 이러지?

대부분의 원인은 경쟁적 문화, 상명하복의 구조, 질문하지 않는 습성, 부족한 시간, 넓은 지면, 엄청난 방송 뉴스 시간, 재계발이 되지 않는 시스템,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해 질 수밖에 없는 주입식 교육 등에 있다.

그러나 이런 문화적, 구조적 요인들 중 단 한 가지만 뽑으라면... 장사다. 논란이 돼야 장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 지금 한국 언론의 본질은 공론이라는 공공적 행위가 아니다. 자사의 클릭 수, 시청률, 이익이다. 신뢰나 품위 또는 객관이라는 제스처도 이를 가리기 위한 변장술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은 장사다. 그냥 무작정 더 많이 팔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조국 현상을 설명하기 힘들다."


28일 KBS1 라디오 <최경영의 경제쇼> 진행자인 최경영 기자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은 글이다. 같은 맥락에서, 조 후보자 관련 현안을 보도한 일선 기자들이 팟캐스트나 유튜브 방송에 출연, "어렵다", "복잡하다"라고 토로하는 장면이 여러 번 목격됐다.

검증은 실종됐고, 소위 '의혹', '편법', '위법', '부정'이란 수사를 앞세운 부실한 팩트와 부각되지 못한 해명 아래 프레임 전략이 횡행했다. 이에 대해 최 기자는 "의혹에 의혹을 덧씌워서 분노만 촉발시키고 낙인 찍어놓은 이미지만 더 커지게 하려는, 즉 모든 방향이 조국은 나쁜 짓을 했을 것이다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 기사들이 주류를 이룬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의혹의 빌미는 물론 조 후보자 측이 제공했고, 검증은 필수다. 그런데 이게 검증일까?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여당 의원실에서 받은 자료나 개별 언론이 취재한 단발적인 의혹 보도가 '단독'이란 이름하에 쏟아진다. 여기에 강용석 변호사를 필두로 보수/극우 유튜버들의 의혹 제기 역시 어뷰징 기사로 재탄생한다. 반박 의견이나 검증이 부실한 경우도 상당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단독' 이후엔, 어김없이 어뷰징 기사가 쏟아진다.

반면 후보자 측의 반박 자료는 축소 보도되거나 외면 받기 일쑤다. 소셜 미디어 상에서 교육계 혹은 투자 업계 종사자들이 제기한 반대 의견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의 반박이 '단독'의 여파를 이겨낼 리 만무하다. 그러한 보도가 다시 '여론'을 생성했고, 보수여당은 이러한 여론을 앞세워 조 후보자를 '범죄자'로 규정한 채 검찰 수사와 특검, 자진 사퇴 혹은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형국이다. 이를 두고 27일 주진형 전 한화증권 사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국 동란의 광풍'이라 일갈하기도 했다.

"(전략) 한국 언론의 가장 큰 특징은 이들이 사회의 분열을 주도하고 갈등을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무엇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고 무엇이 일방적 주장인지를 구별하는 건 그들 몫이 아니고 도리어 시민들 몫이 되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법무부 장관 하나 임명하는데 한국 사회의 모든 분열과 갈등 요소를 긁어 갖다 붙였다. 보고 있노라면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에서 이간질을 하는 간악한 이아고가 떠오른다.

조국 동란의 광풍이 지나가고 난 자리엔 무엇이 남을까? 지금까지 한국에선 이런 난리가 끝나고 나면 검찰이 나서서 뒤치닥 처리를 한다. 같지도 않은 사소한 거라도 찾아 기소한다. 나중에 무죄로 판별이 나든 말든 아무도 상관할 바가 아니다. 당한 사람은 억울하고 골이 빠지지만 다른 사람들은 흐지부지 잊고 지나간다.

혹시 조금 달라질 수는 없을까? 예를 들어, 이번 조국씨 관련 언론보도를 갖고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어 기자 이름으로 검색해 나중에 다시 찾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앞으로 그들이 새로운 분열을 주도하고 갈등을 증폭시키기 위해 다시 출전할 때 그들이 조국 동란 기간 중 뭐라고 했는지 알아보기 쉽게 말이다. 언론인들 목에 각자의 묘비석을 미리 준비해주고 싶다."


실제로 일각에선 이번 조국 후보자를 둘러싼 보도 전체를 집약한 언론 백서를 만들겠다는 움직임까지 포착된다. '논두렁 시계' 시즌 2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라 할 수 있다.

'논두렁 시계' 시즌 2가 되지 않기 위해
 
29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조국 후보자 검증에 나선 언론에 '절망감'을 토로했다.
 29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조국 후보자 검증에 나선 언론에 "절망감"을 토로했다.
ⓒ t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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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29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역시 조국 후보자 검증에 나선 언론에 대한 "절망감"을 토로했다. 참여정부 시절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로 인사청문회에 나섰을 당시 경험을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은 그는 언론을 향해 "진실까진 안 바란다"면서도 "확정된 사실에 의거해 조국 지명자에 대한 판단을 형성하느냐"고 반문하면서 첫 번째 무서움과 두 번째로 깊은 절망감을 표시했다.

"두 번째는 언론인들에 대한 절망감이에요.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무엇이고 내가 모르는 사실이 무엇인가. 내가 알고 있는 사실, 사실이라고 인정할 만한 것들을 토대로 추론할 때 어떤 주장을 내가 펼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조국을 꼬꾸라뜨려야 한다는 그 욕망, 그것이 언론 보도를 지배하고 있죠.

그러니까 제가 저는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조국 후보자가 후보자 청문회잖아요. 청문회는 아직 하지도 않았어요. 하게 될지 안 할지도 아직 불확실해요. 보이콧 이야기도 나오니까. 청문회를 일단 해야 될 거 아니에요? 해야 되는데 지금은 청문회를 하기도 전이고 그리고 본인은 검증해야 돼요.

이 모든 소동, 한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는 검증과 관련되어 있는 문제 제기 중에 단 하나라도 조국 후보자가 심각한 도덕적 비난을 받거나 법을 위반한 행위로 볼 수 있는 일을 한 게 있느냐. 한 개도 없어요. 그런 게 청문회 과정을 통해서 한 개라도 드러나면 조국 후보자가 자진 사퇴 하리라고 봐요. 자기가 직접 책임져야 될 일이 하나라도 나오면. 그런데 지금 그런 게 하나도 없어요."


개인적으론, 청문회 전까지 조국 광풍이 남긴 흔적들을 다각도로 살펴볼 생각이다. 과연 조국 후보자가 열어젖힌 '판도라의 상자'의 실체는 무엇인지, 청문회 보이콧 소식마저 들려오는 보수야당의 대응과 정유라와 최순실까지 소환한 그 '국민정서'의 일면까지 말이다.

그 과정에서 검찰 수사는 검찰 수사대로, 조 후보자 측은 의혹에 대해 성실히 소명하길 바란다. 동시에 청문회가 정상적으로 마무리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작금의 '언론 광풍'과 국민적 관심이 생산적으로 끝날 일말의 가능성은 최소한 거기서 출발할 테니까.

태그:#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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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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