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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나무 꽃과 열매.
 산사나무 꽃과 열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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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이나 고궁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산사나무는 봄에 흰색 꽃이 핀다. 여름내 초록색이었던 열매는 이즈음 익기 시작한다. 잠깐이라도 열매를 들여다보면 이 나무에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산사나무를 실물로 처음 본 것은 십 년 전쯤 봄. 주로 산에서 자라는 나무들을 알아가는 재미에 푹 빠지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노린재나무와 팥배나무, 귀룽나무 등, 그즈음 비슷한 꽃잎 모양의 흰색 꽃을 피운 나무들이 많았다.

한꺼번에 많은 나무를 알게 된 무렵이라 나무 이름을 혼동하거나, 잊기 쉬운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산사나무는 어디서나 단박에 알아보는 나무가 되었다. 열매를 보는 순간 '산에서 나는 아기 사과라 산사구나!', 이처럼 쉽게 짐작되는 이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날 쉽게 짐작되지 않는 이름의 나무들이 더 많(았)다. 한자 표기이거나, 나무를 자주 혹은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알 수 있는 생태 특성, 쓰임 혹은 용도, 주로 자라는 장소, 아마도 이름 붙여질 당시 사람들의 풍습이나 정서와 관련된 말이 들어간 경우 등 다양한 이유로 이름이 붙여졌기 때문이다.

'백일 동안 꽃이 피는 나무라 백일홍나무→배기롱나무→배롱나무'나, '하얀 꽃이 마치 뭉게구름 같아 구름나무→귀룽나무'처럼 애초 그 나무의 특징에 따라 불렸으나 세월 따라 이름이 바뀐 경우도 많다. 이렇다 보니 짐작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까마귀밥나무 꽃과 열매.
 까마귀밥나무 꽃과 열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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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밥나무도 그중 하나. 봄에 새끼손톱처럼 작고 예쁜 꽃이 핀다. 가을에 조그만 열매가 빨갛게 익는데, 예쁜 구슬 같다. 꽃도 열매도 예쁜 나무인 것이다. 그런데 왜 흉조로 여긴 까마귀 이름을 붙었을까? 나무를 볼 때마다 궁금했다.
 
까마귀밥나무는 콩알 굵기에 꼭지가 조금 볼록한 빨간 열매가 특징인 작은 나무다. '까마귀의 밥이 열리는 나무'란 뜻이고, 북한 이름인 까마귀밥여름나무는 보다 구체적으로 까마귀가 밥으로 먹는 여름(열매의 옛말)이 열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열매는 쓴맛이 나며 특별한 독성이 있진 않지만 먹을 수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까마귀나 먹으라고 붙인 이름으로 짐작된다. - 60쪽, 까마귀밥나무 편   
 
<우리 나무 이름 사전> 책표지.
 <우리 나무 이름 사전> 책표지.
ⓒ 눌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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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무 500여 종의 이름과 유래에 얽힌 것들을 들려주는 <우리 나무 이름 사전>(눌와 펴냄)에 의하면 뭣보다 맛이 없어서다. 반대로 열매가 맛있는 나무에는 까마귀와 반대되는 정서, 즉 좋은 의미로 민화나 동화 등에 종종 등장하곤 하는 까치를 이름에 붙이기도 했다.

중남부 지방에서 드물게 자란다는 까치밥나무가 그런 경우. 그냥 먹거나, 젤리로 만들어 먹거나, 술로 담가 먹는 등 까치밥나무 열매는 맛있다고 한다. 그래서 새들이 좋아하는데, 특히 '길조로 여겼던 까치의 밥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64쪽)' 붙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혹은 식량 사정이 좋지 못했던 옛 시절, 맛있는 열매가 달리는 나무라 까치처럼 반가워서 붙인 이름 아닐까? 설명을 읽으며 지레짐작해 본다. 지난날 배고픔은 가장 큰 고통이었으니, 그래서 나무나 풀에 밥이란 말과 먹을 수 있음의 말을 붙인 경우도 많으니 말이다.
 
까치는 새의 이름으로 익숙한 말이지만 까치고들빼기, 까치깨, 까치발, 까치수영 등의 경우에서 확인할 수 있듯 '작은', '버금'을 뜻하기도 한다. 까치박달은 줄기 껍질이 박달나무와 얼핏 비슷한 점이 있으므로, 박달나무보다 작지만 모양새가 비슷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보인다. 그러나 까치박달은 서어나무 속이어서 자작나무 속인 박달나무보다 오히려 서어나무에 훨씬 더 가깝다. - 63쪽, 까치박달 편

책 제목으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사전이다. 사전인 만큼 찾아보기 쉽게 가나다순으로, 한 쪽에 한 나무를 다룬다. 까마귀밥나무에 이어지는 나무들은 까마귀베개, 까마귀쪽나무, 까치박달, 까치밥나무 등. 이중 까치박달은 풀꽃인 까치깨와 까치수영과 함께 까치와의 연관성이 궁금하기도 했던 터라 이런 설명이 참 반갑다.  
 
까마귀베개 열매. 점차 익어 까맣게 된다.
 까마귀베개 열매. 점차 익어 까맣게 된다.
ⓒ 유건희(한강의 꽃)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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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까마귀베개는 '손톱 길이가 채 안 될 정도로 작디작은 소시지 모양의 열매 그 가운데가 약간 오목하게 들어가기도 하여 영락없이 꼬마 베개를 닮았다. 열매가 새까맣게 익는 가을이면 깃털이 까만 까마귀가 베기에 안성맞춤'(61쪽)이라서.

그리고 까마귀쪽나무는 '2년에 걸쳐 익는 나무 열매 색이 쪽을 삶아 염색물을 만들었을 때의 진한 흑청색과 비슷한데 까마귀의 빛깔과 닮아서(62쪽)'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까마귀베개와 까마귀쪽나무는 이름도 재미있고 설명도 쉬워 처음 알게 된 나무들인데도 쏙쏙 와 닿는다.

대개 사전들은 훑듯 넘겨 읽으며 알고 있는 것이 나오면 제대로 알고 있는지 확인하며 읽거나, 우선 눈에 띄는 것들 위주로 읽어나가는 것으로 어떤 것들을 수록하고 있는지 파악한다. 그런 후 필요할 때마다 다시 읽거나 참고하곤 한다. 그런데 줄거리 따라 읽는 소설처럼 이어 읽은, 흥미롭게 읽은 사전이다.

더욱 흥미롭게 읽은 것은 나무 이름을 추정하거나 이해하는데 절대적으로 도움 될 것들을 전반적으로 설명하는 439쪽부터 462쪽까지. 나무 이름의 변천과 쓰임새, 나무 이름의 구조, 나무 이름 어근의 여러 형태, 나무 이름에 붙은 접두어와 접미어 등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나면 이름부터 주고받는다. 나무와 친근해지는 첫걸음도 이름을 아는 것이다. 또한, 이름을 기계적으로 외우기보다 그 유래를 알면 훨씬 쉽게 머릿속에 담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사실 나무 이름의 유래는 논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이름을 붙였는지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시 확인하고 검토해야 할 내용도 여기저기 보인다. 마침표를 찍으려면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궁금해 하는 분들이 너무 많으니 일단 세상에 내놓고 모자란 점은 고쳐나가자고 마음 먹었다. -머리말에서.

우리 나무 이름 사전

박상진 (지은이), 눌와(2019)


태그:#우리 나무 이름 사전, #박상진(식물학자), #산사나무, #까마귀밥나무, #눌와(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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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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