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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다닐 때 여성 선배들 중 정말 존경해 따르고 싶은 분이 많았다. 그러나 정작 아주 높은 직급을 가진 이들 중에서는 그런 사람이 없었다. 높은 직급에 있는 여성 선배들은 출산, 육아휴직 및 회식 관련 양해나 승진 심사 등에 있어서 남성 상사들보다 더 가혹하고 가차없이 대했다. 성차별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도 어지간한 남성보다도 못했다. 소위 말하는 '젠더 감수성'이란 것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심지어 한 여성 임원은 임신한 여직원들을 호출하여 '육아휴직을 할 건지' '얼마동안 할 건지'를 물으며 '정 내고 싶어서 내는 것까지 금지할 수는 없지만 그럴 경우 승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하기도 했다. 1980년대도, 1990년대도 아닌 2010년의 일이었다.

물론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진부하고 동의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반복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들 중 대다수는 높은 위치에 오르기까지 동년배의 남성보다 훨씬 심한 고난을 겪고 그야말로 스스로를 갈아넣는 고통을 경험했을 확률이 높다. 살아남기 위해 '여성적인' 특성을 모두 버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적인 행동과 남성적인 가치관이 존중받는 조직에서 여성이 남성을 누르고 올라서려면 '남성 이상의 남성'이 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전 영국 수상 마가렛 대처는 '영국 유일의 남성'이라고 불린 적이 있다고 한다. 아마 이들은 일반적인 여성들이 내는 목소리에 대해 이러한 생각은 했을 것이다.

'난 했는데, 왜 넌 못 해?'

30년 동안 시집살이 한 엄마의 뜻밖의 대답
 

나는 딸만 둘 있는 집안의 맏이로 태어났다. 이야기인즉슨 나의 엄마는 '장모님'은 될 수 있을지언정 애시당초 '시어머니'는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어느 날 장난으로 엄마에게 "엄마도 만약 며느리가 있었으면 시집살이 시켰을 것 같아?"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엄마는 '며느리가 있었으면 시집살이 시켰을 것 같아'라는 질문에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엄마도 시어머니인데 시집살이 좀 시켜볼 수 있지. 그게 뭐 어때서"라고 했다. 깜짝 놀랐다.  당시의 대답, 가벼운 농담을 가지고 엄마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 사람은 자신이 겪었던 괴로움을 남에게 다시 전파하는 것일까.
 엄마는 "며느리가 있었으면 시집살이 시켰을 것 같아"라는 질문에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엄마도 시어머니인데 시집살이 좀 시켜볼 수 있지. 그게 뭐 어때서"라고 했다. 깜짝 놀랐다. 당시의 대답, 가벼운 농담을 가지고 엄마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 사람은 자신이 겪었던 괴로움을 남에게 다시 전파하는 것일까.
ⓒ unspal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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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4형제 중 막내였던 아빠와 연애결혼을 했다. 결혼과 동시에 시부모가 사는 집으로 들어갔다. 당시만 하더라도 시부모를 자식 중 누군가가 모시는 것이 보편적이던 시절이었다. 부모 봉양의 도리는 첫째에게서 둘째로, 둘째에게서 셋째로, 막내에게로 줄줄이 내려왔다. 27세의 나이에 결혼할 때만 하더라도 엄마는 환갑이 될 때까지 시집살이를 할 줄 몰랐을 것이다.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이다. 엄마는 자기가 사는 집임에도 마음대로 누워 있지 못했다. 가사노동을 담당했으나 (가족으로부터) 제대로 된 인정조차 받지 못했다. 그저 '도리'와 '의무'로 여기며 살았다. 명절이라도 끼어 있는 날이면 엄마는 죽다시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아니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냐'는 대답이 돌아올 줄 알았다. 시집살이의 고됨과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겪은 엄마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엄마도 시어머니인데 시집살이 좀 시켜볼 수 있지. 그게 뭐 어때서"라고 했다. 깜짝 놀랐다. 엄마가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직접 다 겪어봤으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물론 생각과 행동은 같지 않기에 '시어머니'로서 엄마가 어떻게 행동했을지는 알 수 없다. 말뿐이었을 수도 있고 반쯤은 농담 삼아 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당시의 대답, 가벼운 농담을 가지고 엄마를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엄마는 힘든 세월을 버텼고 그런 엄마를 무척 존경한다. 그러나 워낙 놀랐던 탓인지 당시의 기억이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도대체 어째서일까. 왜 사람은 자신이 겪었던 괴로움을 남에게 다시 전파하는 것일까. 오래도록 생각해본 결과 결론은 같았다.

'난 했는데 왜 넌 못해?'

일하는 여성으로서 힘든 세월을 겪어낸 이가 후배 여성들에게 육아휴직을 내지 못하도록 닦달을 하거나, 고된 시집살이를 겪었던 이가 훗날 더 혹독한 시집살이를 시키는 것은 모두 같은 사고방식에서 출발한다. 기성 권력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그 안의 논리를 자신도 모르게 체화한 것이다.

'성공하려면 포기해야 하는 것이 많은 거야.'
'여자가 성공하려면 남자보다 두 배는 노력해야 해.'
'아이도, 일도 포기 못하면서 성공하겠다고? 왜 그렇게 욕심이 많아?'
'시집살이가 힘들다고? 며느리로서 해야 할 도리가 싫다고?' 
'여자의 삶은 불공평한 거야. 우리도 다 그렇게 살았어. 난 했는데 왜 넌 못해?'

사실 이는 고난을 겪어낸 사람이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가질 수 있는 흔한 태도이다. 학교, 군대, 그리고 사회에서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점들이 시정되지 않고 계속해서 맥락을 이어가는 것은 어쩌면 '고통을 극복해낸 이들'이 고통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고통이 대물림되는 구조를 공고히 하고 있기 때문이란 생각도 든다. '그건 원래 괴로운 거라고, 그러니 버티라고' 하면서 말이다. 

우리 사회는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그런데 살다보면 드문드문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본다. 자신이 겪은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잘못된 전통은 과감히 끊어낼 수 있는 사람들을 말이다. 이쯤에서 나는 나의 시어머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불편한 고부관계로 고민하는 이들이 많아 다소 면구스럽기는 하지만 나는 결혼한 지 7년이 되도록 이렇다 할 시집살이 혹은 불편한 경험을 한 적이 거의 없다. 시부모님은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다정하고 편안하게 대해준다. 평소에는 물론이고 명절에도 나는 이렇다 할 음식을 하거나 전을 부치는 노동을 하느라 힘들었던 적이 없다. 다 같이 만날 때는 주로 외식을 하고 설거지는 돌아가면서 한다.

결혼 전까지만 하더라도 고부관계는 모두 나쁘기만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월드'는 드라마에 나오듯 일방적이고 갑갑한 관계가 대부분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시부모님 덕분에 이런 관계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 의아한 생각이 든다. 시어머니 역시 우리 엄마만큼 오랜 세월은 아니더라도 시집살이의 경험이 있고 여성으로서 어려운 세월을 살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놀라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추석이라는 민족의 대명절이 다가올 수록 지역의 맘카페들은 난리가 난다. 친정을 먼저 가느냐, 시가를 먼저 가느냐로 다툰 이야기를 비롯해 자신은 허리가 휘도록 앉아서 전을 부치는데 나가서 놀고 있는 남편을 바라볼 때의 심경까지 내용은 다양하나 결은 모두 동일하다. 고강도의 스트레스. 흥미로운 지점은 해가 갈수록 이러한 경향이 조금씩이나마 완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명절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이는 미약하지만 줄어들고, 동시에 친정을 먼저 간다거나 해외여행을 간다며 명절을 긍정적으로 반기는 이들은 늘어나고 있다. 음식도 직접 하는 대신 사다 먹는 모습이 늘어나는 추세다. 명절 때마다 말썽이던 제사를 합치거나 없앴다는 이야기도 종종 본다.

나는 이러한 변화가 시어머니와 같이 자신이 겪었던 부당한 경험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안간힘을 쓰며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불평등한 경험, 그것을 나도 겪었으니 너도 당연히 겪어야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겪은 고통과 괴로움을 다른 사람이 더는 답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그 마음이 변화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본다. 어렵지만 과감한 결정을 한 그 분들, 더 많은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그분들의 마음에 감사하고 싶다. 그러한 분들로 인해 우리 사회는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태그:#추석, #고부관계, #페미니즘, #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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