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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엄마와 서울 여행을 다녀왔다. 둘째 날 엄마는 서울에 사는 학창 시절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강남역 지하상가에서 속옷 가게를 하신다는 친구분을 만나기 위해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지하상가에 도착해서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찾은 매장. 엄마와 친구분은 얼싸안고 웃으며 첫 인사를 했다. 마치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소녀들처럼 해맑은 모습이었다.

"엄마 친구 미숙이 이모야. 인사해."

멋쩍게 인사를 하자 이모는 엄마와 내게 앉을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리고 근처 테이크아웃 카페에서 커피도 두 잔 사오셨다. 먼 길 왔다고, 오늘은 서울 어디를 구경할 거냐고 물으셨다. 인사동, 익선동, 종로…내가 한 곳씩 말할 때마다 이모는 큰 리액션과 함께 한 마디를 덧붙였다.

"윤숙아, 딸 있어서 좋겠다~난 아들만 둘이라 이런 건 꿈도 못 꿔."

그 말에 엄마의 표정에는 뿌듯함과 당당함이 묻어나는 듯했다.

"아유 그러게. 요즘은 딸이 최고야."

집안에 아들이 있어야 됨을 강조하던 옛날과 달리 요즘은 딸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딸바보'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임신을 준비하며 딸 아이를 원하는 신혼부부들 역시 많다고 한다.
 
 도서 <딸에 대하여>
 도서 <딸에 대하여>
ⓒ 믿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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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 대하여> 주인공 역시 이제는 서른이 넘은 딸을 둔 60대 여성이다. 이제는 나이 앞에 붙는 숫자만큼이나 모든 것이 쇠약해진, 그러나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하는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평범한 인물. 그녀에게 하나뿐인 딸은 그야말로 세상 전부였을 터.

그런 소중한 딸은 어느 순간부터 주인공이 모르는 낯선 모습들을 보여준다. 마치 "엄마, 이게 원래 나야. 싫어도 인정하고 견뎌"라고 말하듯 어딘가 공격적인 딸의 행동들.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처럼, 자식은 내 뜻대로 안 된다고는 하지만 그녀가 마주해야 하는 딸의 민낯은 힘들기만 하다.

대학 공부까지 시켜놓은 딸은 시간 강사를 하고, 자신도 불안한 고용 상황에 시달리지만, 부당해고를 당한 동료를 위해 투쟁에 나선다. 결혼 적령기인 만큼 좋은 짝을 만나서 결혼도 했으면 좋겠으나, 7년간 사귄 동성 애인을 데려오며 자신의 사랑을 인정해달라 한다.

나는 아직 엄마의 딸일 뿐, 한 아이의 엄마가 돼 본 적이 없어 부모의 마음을 전부 이해하진 못할 터. 그러나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딸의 이기적인 태도에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지하실에 갇힌 듯 마음 한켠이 답답했다.

시대가 달라지고 사람들의 주관이 달라졌으니 성적 취향의 자유, 표현의 자유 모두 좋다. 그러나 어머니가 느낄 절망과 고통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진정으로 엄마를 위한다면, 그리고 자신의 사랑이 인정받기를 원한다면 성소수자로 살아온 자신의 입장이 아닌 어머니의 마음을 한 번 더 헤아려봤으면 좋았을텐데. 씁쓸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었다.

나의 어머니도 주인공과 같은 요양보호사다. 자신이 케어하는 노인 '젠'에게서 자신의 미래를 보게 되는 주인공. 젊은 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결국 그 끝은 요양원에 머무는 삶이다.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들 역시 책의 내용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같은 포항에 살지만 자식들은 한두 달에 한 번 얼굴 비출까 말까이며, 그분들은 자식보다도 본인을 옆에서 케어해주는 요양보호사들과 더 내면적으로 교류하고 있다 한다. 정말 한평생을 자식들을 먹이고 키우고 공부시킨 대가가 겨우 이것일까? 사실이라면 결혼이고 출산이고 다 부질없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왜 티비나 영화 같은 미디어에선 아직까지도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부모의 미덕인 양 묘사하고, 자식은 부모의 사랑을 죽을 때까지 못 갚는다는 결론에 도달하는가. 이제 다르다. 자식도 부모가 살아계신 동안 갚을 수 있으면 갚아야 한다.

딸에게 묻고 싶다. 너는 엄마를 위해 무엇을 희생했냐고 말이다. 네가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삼십년이 넘는 시간 동안 널 키워주신 어머니를 진심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내가 힘들 때 기꺼이 시간과 노동을 내어줄 수 있는 건 가족밖에 없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 문장에 해당되는 유일한 존재다.

개인적으로 <82년생 김지영> 보다 더 흥미롭게 읽었다. 여성이라는 젠더적 소재를 다룬 두 책은 닮은 듯하지만 다르다. <딸에 대하여>는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들에게 날리는 편지 같았다.

엄마로서의 삶은 이렇다, 이런 상황에서 엄마의 내면은 이렇다 세밀히 묘사된 부분들은 독자들을 아프게 하지만 그 상처를 공감할 수 있도록 한다.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잔잔하지만 깊은 메시지. 가을이 성큼 다가온 8월의 끝자락에 읽은 책이었다.

딸에 대하여

김혜진 지음, 민음사(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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