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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군이 흥남철수작전 완료 뒤 부두를 폭파하고 있다(1950. 12.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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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철수작전
미 제1해병사단의 장진호 철수작전이 마무리되자 곧 이어 흥남철수 작전이 시작됐다. 당시 미 제10군단 병력 10만여 명, 차량 1만8422대. 전투장비 3만5000톤을 철수시켜야 했다. 이를 위해 미 해군 125척의 수송선을 지원했으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게다가 민간인 피란민 9만1000명이 따라 나섰다.
유엔군은 이들을 철수선에 실었다. 그러자 200톤의 탄약, 폭약 400톤, 500발의 포탄, 200여 드럼의 유류는 끝내 철수선에 싣지 못했다. 그러자 유엔군은 철수작전 후 부두를 폭파할 때 같이 이들 군수품들도 모두 불태웠다.
그 당시 우리 사회에는 흥남철수를 배경으로 한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노래가 유행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를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 박시춘 작사, 강사랑 작곡 '굳세어러 금순아'
이번 회는 1950년 12월 흥남 철수작전 그 시기의 NARA 소장 사진으로 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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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남 철수작전 뒤 미 해군함정이 부두를 향해 함포사격을 하고 있다(1950.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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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산, 생선을 파는 노천 어물가게(1950. 12.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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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남, 강추위 속에 남하하는 피란민 행렬(1950. 12. 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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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퇴준비를 하고 있는 비행장으로 몰려든 피란민들(1950.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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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가는 LST(수송선)에 승선하고 있다(1950.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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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영복 지음 <6.25전쟁사>를 참고하여 썼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