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간절했던 한일전 승리'...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2019 월드컵 대회 경기 모습 (2019.9.16)

'너무 간절했던 한일전 승리'...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2019 월드컵 대회 경기 모습 (2019.9.16) ⓒ 국제배구연맹

 
한국 여자배구가 숙명의 한일전에서 통쾌한 역전승을 거두었다. 한국 대표팀은 16일 일본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펼쳐진 '2019 여자배구 월드컵 대회' 일본과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1(23-25, 25-19, 25-22, 27-25)로 승리했다.

역시 한일전이었다. 경기 내용도 중요하지만, 결과가 모든 걸 압도한다는 점을 여실히 증명했다. 승리한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엄청난 부담감에서 시원하게 탈출했다. 반면, 패한 일본 대표팀은 쏟아지는 언론 인터뷰에서 감독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침통했다. 언론 언론도 '굴욕적 패배'라는 표현을 써가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이날 승리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정하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만약 한국이 패했다면 어땠을까. 여자배구 대표팀 앞날에 큰 후폭풍이 불어닥칠 수도 있었다.

그동안 라바리니 감독을 중심으로 한 외국인 코칭스태프 체제에 대해 배구계와 배구팬들 사이에서는 우호적인 여론이 많았다. 지난 5~6월 열린 2019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VNL), 8월 초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 8월 중순 서울 아시아선수권에서 모두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한국 배구가 세계적 흐름에 따라가기 위한 성장통으로 여기고 기다려 줘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그러나 이번 한일전마저 패했다면 상황은 부정적으로 급변할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14일 중국과 15일 도미니카에 연속 패하자 '외국인 감독 영입으로 달라진 게 뭐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늘어났다.

더군다나 지난 8월 서울 아시아선수권 준결승에서 한국 성인 대표팀 1군이 일본 청소년 대표팀에게 1-3으로 역전패를 당한 바 있다. 이번 경기마저 패할 경우 라바리니 체제가 크게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는 4개월밖에 남지 않은 도쿄 올림픽 출전권 경쟁에서 큰 '악재'가 될 수 있다.

또한 개막을 한 달 앞둔 2019-2020 시즌 V리그 흥행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월드컵 대회가 끝나면 바로 터키로 돌아가야 하는 김연경에게도 부담감으로 남게 된다.

'지옥과 천국' 오간 한일전... 극명한 희비 엇갈려

그러나 한국이 통쾌한 역전승을 거두면서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뿐만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큰 소득을 챙겼다.

일단 한국이 일본에게 '우세'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양 팀 모두 '1군 최정예 멤버'끼리 정면 충돌했고, 승리할 경우 어느 한 쪽의 우세를 규정할 수 있는 빅매치였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번 승리로 올해 일본과 3차례 맞대결에서 2승 1패로 우위를 기록했다.

한일전 승리가 빛난 대목은 또 있다. 사실 이 부분이 훨씬 중요하다. 내년 1월 7~12일 태국에서 열릴 '도쿄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공식명칭 대륙별 예선전)'에서 도쿄 올림픽 본선 티켓을 따낼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 여자배구는 대표팀 선수들뿐만 아니라, 대한민국배구협회, 프로구단, 한국배구연맹(KOVO) 등 배구계 전체가 '도쿄 올림픽 출전권 획득'에 모든 걸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 스포츠 팬들도 관심이 크다. 지상파 방송사까지 지난 8월 열린 도쿄 올림픽 예선전에서 한국 팀의 전 경기를 생중계했다.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한국 여자배구가 도쿄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서는 내년 1월 열리는 도쿄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에서 반드시 우승을 해야만 한다. 중국과 일본은 이미 본선 티켓을 획득했다.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 출전하지 않는다. 때문에 객관적인 전력상 한국과 태국이 마지막 남은 단 1장의 본선 티켓을 놓고 끝장 승부를 펼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일본, 태국과 배구 스타일 비슷... 수준도 더 높아

일본은 태국과 여러 면에서 스타일이 비슷하다. 두 팀은 단신 군단, 상대가 질리도록 걷어올리는 '질식 수비', 토털 배구를 바탕으로 하는 스피드 배구가 핵심이다. 심지어 자국에서 여자배구 인기가 국민 스포츠에 가까울 정도로 엄청나다는 것도 똑같다.

아울러 일본이 여러 면에서 태국보다 다소 앞선 것도 사실이다. 일본은 단신 군단의 한계 때문에 주요 국제대회에서 상위권 근처까지 갔다가 좌절한 경력이 많다. 또한 끈끈한 수비 조직력과 스피드 배구의 완성도만 놓고 보면, 여전히 세계 최상급 수준이다. 지난 6월 VNL 일본-태국의 1군 맞대결에서도 일본이 3-0으로 완승을 거두었다.

그런 일본을 상대로 한국 대표팀이 일본 홈구장에서 그것도 1만 2000명 만원 관중의 엄청난 응원 열기를 극복하고 우세한 경기력으로 승리했다. 이는 내년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서 자신감을 높일 수 있는 큰 밑거름이다. 더군다나 한국도 지난 8월 서울 아시아선수권에서 태국 1군에게 3-1로 승리한 좋은 기억이 있다.

물론 방심과 자만은 절대 금물이다. 태국은 그럴 수 있는 만만한 상대도 아니다. 경기 컨디션이 좋은 날은 세계 정상급 팀도 무너뜨리는 도깨비 팀이기 때문이다. 철저한 대비와 준비만이 실수 없이 올림픽 티켓을 획득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 대표팀이 이번 한일전에서 보여준 경기력에서 주목할 만한 '패턴 변화'가 몇 가지 발견됐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현재 '공격 다변화'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한국이 세계 정상권에 근접하기 위해서다. 특히 승기를 잡아놓고도 연속 실점으로 역전패를 당하는 패턴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최우선 보완 과제'이다.

​따지고 보면,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 러시아에 역전패, 아시아선수권 일본전 역전패 모두 똑같은 패턴으로 패했다. 가장 큰 문제는 막판 중요한 상황(클러치)에서 공격 루트가 레프트, 라이트 윙 공격수에게 지나치게 편중된다는 점이었다.

센터의 중앙 속공이나 이동 공격, 윙 공격수들의 '파이프 공격'(중앙 후위 시간차 공격)을 클러치 상황에서도 과감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공격 옵션을 늘리지 않으면, 앞으로도 중요한 대회에서 고비를 넘지 못하고 역전패를 당하는 패턴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센터 공격과 파이프 공격을 핵심 옵션이 아니라 간간이 양념으로 사용하는 팀은 결코 국제 무대에서 상위권 성적을 거둘 수 없다.

한국, 파이프 공격 늘었지만... '센터 속공' 반드시 살려야

이번 한일전에서 한국 대표팀은 진전된 모습과 보완 과제를 동시에 보여주었다. 한국은 이재영 26득점, 김연경 22득점, 김희진 17득점으로 공격 삼각편대가 고른 득점을 올렸다. 이재영이 맹활약하면서 김연경과 김희진의 부담을 덜어줬다. 김연경도 승부처인 3세트에서 세계적인 공격수로서 위력을 보여주었다. 이날 경기를 생중계한 일본 지상파 방송사의 중계 화면 자막에 나타난 김연경의 공격 타점은 304cm였다. 32살이란 한국 나이가 무색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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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터진에서는 김수지가 블로킹 6개를 포함해 11득점으로 눈부신 활약을 했다. 리베로 오지영도 서브 리시브와 디그, 2단 연결에서 안정감과 정확도 높은 수비력으로 팀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 선수 전체가 '일본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투혼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경기 패턴 측면에서도 진일보한 모습이었다. 특히 세트 스코어 1-1 상황에서 맞이한 3세트 승부처에서 잘 드러났다. 20-17로 앞서가다 막판에 20-19, 22-21로 급격히 좁혀진 두 번의 위기 상황에서 이다영 세터의 최종 선택은 김연경의 파이프 공격이었다. 결과는 두 번 모두 대성공이었고, 역전패 위기도 훌륭하게 돌파해냈다. 위기 상황에서 레프트와 라이트 전위 공격만 몰아주다 역전패를 당했던 패턴과는 분명 달랐다.

4세트 막판은 영화 같은 극적 상황이 벌어졌다. 한국이 24-19로 앞선 상황. 1점만 따내면 경기를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또다시 내리 6연속 실점을 허용하고, 24-25로 역전까지 당하고 말았다. 악몽 같은 순간이었다. 지난 8월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에서 러시아전 연속 실점과 대역전패가 그대로 재현되는 듯했다. 그 상황에서 이다영 세터의 토스워크와 분배는 분명 아쉬움이 많았다. 그럼에도 파이프 공격을 시도했다.

3세트와 4세트 중요한 상황(클러치)에서 한국 대표팀은 '개선된 점'과 '반드시 개선해야 할 점'을 동시에 드러냈다.

파이프 공격을 적극 사용하면서 위기를 돌파한 측면은 분명 좋아졌다. 또다시 재현된 역전패 상황을 극복해냈다는 경험도 긍정적인 대목이다. 그러나 두 번의 위기 상황에서 센터진의 중앙 속공과 이동 공격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는 단점도 드러났다. 문제는 서브 리시브가 잘된 상황에서도 센터 공격을 활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월드컵 남은 경기에서 반드시 센터진 공격을 살려야 한다. 동료 선수를 서로 믿고 함께 극복해내야 한다. 그래야 내년 1월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서 또다시 역전 위기 상황을 맞이했을 때 이겨낼 수 있다. 센터진 공격까지 살아나면 라바리니호가 추구하는 '토털 배구를 바탕으로 하는 스피드 배구'가 완성도 높게 나타날 수 있다. 세계 강팀과도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다.

라바리니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한일전의 중요성을 알고 철저히 준비를 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작전 타임 때 상대팀 선수들의 움직임에 대해 조목조목 선수들에게 일깨워 줬고, 선수 기용과 교체 타이밍도 적시에 효율적으로 전개됐다. 일본 언론과 배구팬들도 벤치의 지략 싸움에서도 일본이 패했다는 지적을 쏟아냈다.

홀가분해진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18일 점심 시간대인 낮 12시 30분에 유럽 강호 러시아와 대결한다. 이 경기도 국내 스포츠 전문 채널인 SPOTV에서 생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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