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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를 통해 수많은 역사 인물의 평전을 연재해온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오늘부터 새 연재 '5·18 광주혈사'를 시작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영정. 광주광역시 운정동의 국립 5·18민주묘지 내의 유영봉안소에서 찍은 사진.
 5·18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의 영정. 광주광역시 운정동의 국립 5·18민주묘지 내의 유영봉안소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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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2020년)이면 5ㆍ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이다.

'5ㆍ18'이라는 수치, '광주'라는 지명, '민주화운동'이라는 사회과학의 용어, 그리고 '40년'이라는 시공(時空)이 우리를 여리게 한다.

광주폭동 → 광주사태 → 광주항쟁 →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명(正名)은 찾게 되었으나, 40년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도 "누가? 왜? 어떻게?"는 여전히 의문부호로 남는다.

역사상의 큰 사건, 사태는 대체로 진상규명 → 책임자처벌 → 보상(배상) → 바른기록의 과정을 거쳐 마무리되는 것이 상례인데, 유독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은 첫 단계인 진상규명부터 벽에 부딪쳐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가해세력의 존재 때문이다. 광주학살의 원흉은 여전히 왕년의 부하(공범)들과 어울려 골프를 치고 자서전을 쓰고, 그가 만들었던 정당의 후예들은 광주에 대한 망언을 일삼고 민주화의 발목을 잡는다.

국회는 2018년 9월 국가차원에서 5ㆍ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5ㆍ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구성의 결의안을 채택하고 관련 입법도 마련했지만, 자유한국당 소속의원들의 잇단 5ㆍ18망언과 국회가 추천하는 조사위원으로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한 인물을 추천하는 등 제동을 걸고 있다. 해서 1년이 지나도록 5ㆍ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출범도 하지 못한 상태이다.
  
12.12 쿠데타의 핵심 관계자들 12.12 쿠데타에 이어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까지 무력 진압하면서 차례로 정권을 잡았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정부 시절 무기징역과 징역 17년형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1979년 12월 14일 서울 보안사령부에서 기념촬영한 12.12 핵심 관계자들의 모습. 이 가운데에는 상황이 완전히 끝난 13일 아침에 뒤늦게 합류한 장성들도 있으며 거사과정서 소외되었던 보안사 간부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 12.12 쿠데타의 핵심 관계자들 12.12 쿠데타에 이어 1980년 광주민주화항쟁까지 무력 진압하면서 차례로 정권을 잡았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정부 시절 무기징역과 징역 17년형을 선고받았다. 사진은 1979년 12월 14일 서울 보안사령부에서 기념촬영한 12.12 핵심 관계자들의 모습. 이 가운데에는 상황이 완전히 끝난 13일 아침에 뒤늦게 합류한 장성들도 있으며 거사과정서 소외되었던 보안사 간부들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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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김순례 의원이 "종북좌파들이 판을 치며 5ㆍ18유공자라는 괴물을 만들어 우리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망언을 하고, 같은 당 이종명 의원은 "5ㆍ18은 폭동"이라는 망언을 내뱉었지만 당은 솜방망이 징계로 일관했다. 제1야당의 이같은 분위기에서 극우논객 지만원씨가 '5ㆍ18북한군 개입설'을 꾸준히 떠들게 되었다.

그동안 정부차원의 5ㆍ18 진상조사가 없지는 않았다. 1988년 국회청문회, 1995년 검찰 수사와 1997년의 재판, 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활동이 그것이다. 하지만 발포명령자, 민간인 희생자 숫자, 행불자, 암매장 장소, 헬기총격 실태, 미국의 역할 등 핵심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서 국회가 뒤늦게나마 5ㆍ18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는데 아직 출범도 하지 못한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은 해방 이후 6ㆍ25한국전쟁, 제주4ㆍ3항쟁에 이어 가장 많은 시민의 희생을 가져온 비극적인 사건이다. 6ㆍ25는 전쟁이고 제주4ㆍ3은 엄격한 의미에서 미군정기에 시작된 참사여서, 사실상 '광주'가 최대의 국민 대량학살사건이다. 4ㆍ19혁명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냈고 훨씬 잔혹하게 진행되었다.
  
 도청에 모인 시민들
 도청에 모인 시민들
ⓒ 5.18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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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운동은 전두환을 수괴로 하는 12ㆍ12군부반란을 주도한 정치군인들의 헌정파괴 행위인 5ㆍ17쿠데타에 맞선 광주ㆍ전남도민들의 위대한 항쟁으로 시작되었다.

국내적으로는 동학농민혁명 → 3ㆍ1혁명 → 4월혁명으로 이어지는 민중혁명의 맥락이고, 국제적으로는 1789년 프랑스혁명에서 기원하는 시민저항권 사상의 계승이다. 그리고 촛불혁명으로 승화되었다.

박정희 품안에서 자란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 반란세력은 박정희 정권이 조장한 호남차별의 그릇된 사고에서 광주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리고 자신들의 집권에 최대의 걸림돌로 인식한 김대중을 제물로 만들었다.

광주를 콕 찍어 분란지점으로 택한 것은 박정희 18년 동안 조성한 '호남적대' 정책으로 인해 설혹 항쟁이 일더라도 그 불씨가 여타 지역으로 인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 본 것이다. 여기에 김대중을 엮어서 일석이조(一石二鳥)의 효과를 노린 것이다.
  
 80년 5.18 당시 태극기를 들고 민주화시위를 하고 있는 광주시민들.
 80년 5.18 당시 태극기를 들고 민주화시위를 하고 있는 광주시민들.
ⓒ 5.18기념재단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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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ㆍ18쿠데타에 서울을 비롯 모든 지역이 침묵했다. 반유신 투쟁을 줄기차게 전개해온 서울의 대학가에서도 침묵하고 있었다. 그럴 때 광주의 대학생들이 유일하게 저항의 횃불을 들었다. 처절한 살상극이 자행되고 마침내 시민들이 무장을 갖췄다. 해방 후 시민들이 무장하고 민주헌정을 짓밟은 폭력적 공권력과 맞서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조직되지 않은 '비조직'의 광주시민군은 신군부 반란군과 대치하면서 도청을 중심으로 시민들과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것은 동학혁명기 호남 53개 군현에서 실시한 집강소의 정신이고, 프랑스혁명기 파리근교에서 실행한 공동체(콤뮨) 운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광주시민들은 부상자를 위한 헌혈자로 길게 줄을 서고, 여성들은 '주먹밥'을 만들었다. '주먹밥'과 음료수는 군인들에게도 나눠주고, 다수 시민이 무장을 했는데도 시내 은행ㆍ백화점ㆍ금은방이 하나도 털리지 않는, 고도의 도덕성과 공동체의식을 보여주었다.
  
 시민들과 대치중인 진압군
 시민들과 대치중인 진압군
ⓒ 5.18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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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민주화운동은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 1980년대 이후 한국의 민주화를 이끄는 활화산이 되고, 종국에는 전두환을 몰락시킨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또한 미국의 책임을 묻고 남북화해를 촉진하는 신민족주의사상이 배태되고, 향후 어떠한 독재자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불굴의 저항정신이 촛불혁명의 불씨로 이어졌다.

이와 같은 역사성과 동시에 반역사현상도 남겼다. 5ㆍ17의 주범 전두환과 그 공범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광주항쟁을 폭도로 몰았던 언론과 망언을 계속하는 정치세력은 광주가 살린 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민주제도를 악용하고 있다.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이 12·12및 5·18사건에 관련한 재판을 받고 있다.(1996.12.16)
 전두환 노태우 전대통령이 12·12및 5·18사건에 관련한 재판을 받고 있다.(1996.12.16)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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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군주시대 사람인 맹자도 "백성을 학대한 죄는 반드시 물어야 한다(以討虐民之罪)"라는 시민저항권 사상을 주창하였다. 그렇다. 죄는 물어야 하고. 용서는 죄 지은 자가 잘못을 반성할 때 가능하다.

5ㆍ17신군부 쿠데타 주동자, 즉 '죄 지은 악당들'은 한 사람도 사죄하지 않았다. 사죄는커녕 기회만 있으면 광주희생자와 유족들을 향해 망언을 토한다.

척구폐요(跖狗吠堯)란 말이 있다. 도척(盜拓, 공자연대의 도적 우두머리)의 밥을 먹는 개는 아무리 자기 주인이 악당이라도 주인이 시키면 요(堯)와 같은 성인에게까지 서슴없이 짖어댄다는 뜻이다. 5공의 악인들과 그 후예들은 민주주의를 향해, 광주를 향해 여전히 짖어대고 있다.

철학자 칼 야스퍼스는 전후 독일인의 '4가지 죄'를 들어 일대 참회운동을 전개하자고 역설하였다. 4가지 죄는 형사상의 죄, 정치상의 죄, 도덕상의 죄, 형이상학적인 죄를 말한다. '형이상학적인 죄'란 히틀러 치하에서 싸우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을 일컫는다.

나는 동시대인으로 광주항쟁 때 싸우지 못한 부채감에서 <5ㆍ18 광주혈사>를 쓰고자 한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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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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