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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인명 피해를 준 대형사고가 났거나 대중 일반의 시각에서 크게 벗어난 이유로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부는 관행적으로 'OO종합대책' 같은 것을 발표한다. 사건·사고 대응전략과 각종 예방·지원 방안, 실행 체계 등이 그럴 듯하게 나열돼 있는, 그야말로 대책들의 종합이다. 어떻게 이런 정책이 순식간에 발표될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더러 있지만 국민에게 정부가 철저히 고민하고, 대응하고 있다는 '안심효과'는 줄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성급하게 발표한 종합대책 중 정말 좋은 정책이라고 평가받거나 실제로 현장에서 제대로 집행되는 정책은 찾기 어렵다. 별로 신선하지 않다. 보통 종합대책에 포함되는 정책수단들은 해당 부처에서 여러 이유로 선택되지 못하고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던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해묵은 정책들이 특정 사회문제로 인해 알려질 기회를 얻었지만, '제목만 바꾼' 종합대책의 한계에 묶여 제 역할을 다하기 어렵다.

종합대책은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거나 정부 기관의 수장이 새롭게 임명됐을 때도 자주 등장한다. 사전에 잘 준비된 정책들을 성실하게 집행하여 의미 있는 성과 달성으로 능력을 표출하는 대신 의미 없는 구호와 선언을 좋아하는 리더일수록 이런 식의 정책 묶음을 내세우는 경향이 있다. 성과에 대한 조급증과 불안함이 작용한 결과다. 조직에서 장기간 근무한 직원들은 종합대책의 폐해를 잘 알지만, 결국 평소 만지작거리던 정책을 긁어모아 제출하기에 이른다.

한국당의 시대를 역행하는 경제정책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부론' 발간 국민보고대회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지난 22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부론" 발간 국민보고대회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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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자유한국당이 '2020 경제대전환 보고서 민부론'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과 차별성을 부각하고, 내년 총선을 겨냥해 경제정책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주요 정책으로 에너지 공기업의 민영화, 은산분리 규제 합리화, 병원 영리화 허용, 탈원전 정책 전면 중단,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등이 담겼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2030년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달성, 가구당 연간 소득 1억 원 달성, 중산층 70% 달성'을 목표로 야심차게 발표한 경제정책들이다. 낯설지 않다. 어딘가 모르게 친근하다. 그동안 보수 진영의 정권·정당에서 시차를 달리해 강조해온 정책의 묶음이다. 철 지난 정책이라 조금 민망하다. 특히, 공공기관 민영화와 영리 병원은 신자유주의 흐름의 퇴조로 낡은 주제가 됐고, 재개발·재건축분야는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의 악몽이 아직 남아 있다.

친기업·반노동 정책은 한국당의 위치가 어디인지 분명하게 말해준다.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규정 삭제, 파업기간 중 대체근로 전면 허용, 직장점거 금지 등을 제시했다. 대기업이 항상 주장하는 내용이다. 지난 7월,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언급했다가 노동계의 큰 반발을 샀던 노동시장 유연성 확대 등도 담겼다. 기업의 논리만 반영했다는 비판이 틀리지 않는다.

성급한 종합대책과 닮은 '민부론'

한국당이 발표한 '민부론'의 문제는 경제정책 관련 전문가와 언론이 지적한 친기업적 성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가장 큰 문제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데 있다.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에 대한 면밀한 분석 없이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고수한 정책을 종합대책처럼 얼기설기 모아놨다. 전혀 새로울 게 없는 정책들을 '경제대전환'이라는 수식어를 달아 현혹하고 있다.

한국당은 많은 국회 의석을 가지고 있고, 예산도 여유 있는 제1야당이다. 우리나라가 직면한 경제·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정책을 얼마든지 연구·개발할 수 있다. 한국당이 발표한 정책은 지난 정부의 정책목표와 수단, 오늘 우리의 정책환경을 깊이 분석했다면 나올 수 없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정부 기관이 급하게 내놓는 종합대책의 폐해를 피해야 했다. 하루 행사를 위해 준비한 듯 부실한 내용으로 비판을 받지 않아야 한다.

미국의 여성 작가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은 저서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에서 "모든 것을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핵심 작업이다"라고 말했다. 한국당은 이번 경제정책을 절대 민부론(民富論)으로 불러선 안 된다. 4대 전략과 20대 정책과제가 향하는 친기업 성향에 어울리는 이름을 생각해봐야 한다.

민부정책연구원 이사장을 맡은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3일 국회 정론관에서, 한국당이 제시한 민부론에 대해 "이름은 도용하고 내용은 가짜인 위작"이라고 비판했고,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에서 "대다수 국민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99%의 민폐론"이라고 일갈했다. 제목만 그럴싸한 정책은 금방 속내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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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사회 이슈,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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