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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입사한 이후로 한 직장에서만 근무했습니다. 유리천장을 깨부술 성별·학벌·인맥은 없지만, 그곳에서 끈질기게 출근하고 일하며 살아가는 40대 여성 직장인의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회사를 그만둘 날을 많이 꿈꾸었다. 많은 이들이 선택한 것처럼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가고 싶었다. 파리에서 한 달쯤 살아보면 어떨까? 동남아의 에메랄드 빛 멋진 바다 앞에서 책을 읽어도 좋겠지? 이런 상상을 많이 했다. 하지만, 현실은 늘 회사 모니터를 바라보며 쫓기듯 일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회사를 그만둘 생각은 입사 6개월부터 했다. 신입사원 교육을 받으며 멋진 커리어우먼이 될 거라는 상상과 현실의 갭 사이에서 처절하게 깨진 건 프로젝트에 투입되면서부터였다. IT업계의 특성상 일정이 빠듯했다. 처음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긴장한 나에게 떨어진 과제는 연계 프로그램(다른 시스템과 데이터를 주고받는 프로그램)이었다. 그것도 한 달 안에 끝내야 하는 것이었다.

프로젝트에 투입되고, 작업을 하라고 안내받은 곳은 서버실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였고, 인터넷도 되지 않았다. 서버실에는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프로젝트 사무실에는 동료들이 있었지만, 내가 하는 연계프로그램은 보안 상 서버실에서만 작업해야 한다고 했다.

코딩을 하다가 막혀서 인터넷이라도 할라치면 다시 프로젝트 사무실로 돌아와 해당 문제를 검색하고 다시 서버실로 들어가곤 했다. 물어볼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었다.

'한 달 안에 내가 이것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매일 긴장의 연속이었다. 실제 프로젝트 경험도 전무했고, 해당 업무 경험도 전무했고, 프로그램 언어는 겨우 ㄱ, ㄴ만 배우고 간 수준이었으니 말해 무엇 하겠는가? 매일 야근을 했다. 한 번은 저녁도 먹지 않고 코딩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서버실이 소등된 것이었다.

서버 전원은 이상이 없었다. 알고 보니 서버실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누군가 퇴근하면서 소등한 것이었다.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밖으로 나와 다시 불을 켜고 앉아 코딩을 계속 했다. 감옥 같은 곳에서 문제를 혼자 풀고 있자니 서러움이 밀려왔다.
 
신입사원 시절, 매일 사표를 생각했다.
 신입사원 시절, 매일 사표를 생각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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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퇴근하고 자취방에 홀로 앉아서 울었다. 나의 무능력함을 탓하며,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까를 심각히 고민했다. 그렇다고 지금 맡은 일이 어려워서 그만두겠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왠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마무리하고 그만두어야 할 것 같았다. 내 몸에 깊숙이 박혀 있는 일종의 책임 의식이라는 것이 작동한 것이었다.

스트레스가 극심했는지 꿈속에서도 코딩을 했다. 꿈에서는 내가 데이터가 되어 회선을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그러다가 에러를 만나서 메모리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었다. 아무리 길을 찾아도 찾아지지 않고, 나는 메모리 속에서 방황하다가 잠에서 깼다.

아침 출근길은 무거웠다. 언제 그만둔다고 말할까를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면 또 정신없이 해결점을 찾아 코딩을 했다. 한 달 만에 끝내야 하는 코딩은 한 달 반 정도에 끝이 났다. 다행히 한 달 마감을 넘겼어도 별 문제는 없었다.

어떤 일이든 어려운 고비는 있기 마련이다

개발을 하는 동안 여러 가지를 배웠다. 오류를 해결 했을 때의 성취감은 무엇보다 뿌듯했다. 프로그램이 돌면서 데이터를 쌓는 것은 그 어떤 예술작품보다 아름다웠다. 기술적인 면도 배웠지만, 중간에 네트워크 장비 문제로 장비제공 업체와 협의하는 것도 배웠다.

엄연히 네트워크 장비문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초보개발자라는 이유로 프로그램 잘못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바람에 괜스레 주눅이 들기도 했다. 나중에 장비 문제로 결론이 내려지면서 싸움에서 이기는 법은 감정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증거와 팩트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그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는 회사를 그만두었을까? 아니다. 프로젝트 끝에 휴가를 주었는데, 그 달콤한 휴가가 끝나기가 바쁘게 다음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은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어려움을 넘고 나니 그 다음 고비가 두렵지 않았다.

내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이 아니라 고비를 한 번 넘겼다는 성취감이 내 몸에 박혔다. 그 성취감은 다음 고비도 넘게 해줄 것이라는 걸 예감했다. 100점은 안 되겠지만, 노력하면 70점 직장인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회사에서 월급만 축내는 사람은 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러 프로젝트 경험이 쌓일수록 나의 직장인 내공도 쌓였다. 물론 중간에 사표를 내려고 했던 위기가 아예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신입사원 때 겪었던 위기와 사표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사이에 시간은 흐르고 문제는 해결되었다. 이제는 안다. 사표는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내야 할 카드가 아니라는 것을. 사표는 다른 선택을 위해 내야할 카드다.

언젠가 사업을 하는 지인 A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직장생활을 조금 해보고 자기가 직장생활과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바로 퇴직해서 사업을 일구어 지금은 어엿한 사업가가 되었다.

물론 그도 처음엔 좌충우돌 실수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일을 해주고 돈을 못받은 적도 있고, 매입한 물건에 하자가 많아서 업체와 분쟁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고 했다. 회사에 있을 때는 다른 팀의 지원을 받던 일들도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처리하느라 무척 외로웠다고 했다.

내가 직장에서 좌충우돌하면서 몸에 직장인의 근력을 키워가는 동안, A는 몸에 사업가의 근력을 키워갔다. 지난 18년의 직장인 생활을 돌이켜보건대 직장에 매인 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직장에서 돈 받으며 배워가고 있는 중이었다.

A의 경우는 경제적인 자유를 위해서 선택한 것이었지만,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홀로서기 위해서 직장인보다 더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배우는 시간이었지만, 돈을 저절로 주는 사람은 없었다.

경험이 태도로 남을 때
 
경험은 시간을 만나 노하우가 된다.
 경험은 시간을 만나 노하우가 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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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든 사업가이든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무슨 일을 하든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태도다. 다만, 어떤 일을 하든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자리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필요하다.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일들도 예상치 않은 어려움을 만날 수 있다. 사진 찍는 것이 너무 좋아서 선택한 사람도 사진 찍는 것이 일이 되니 다시 떠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순조롭게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니까.

무슨 일이든 처음엔 두렵다. 고비도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다. 직장을 다니든 사업을 하든, 살아간다면 반드시 만나게 될 어려움은 있다. 이 어려움을 넘을 것인가 회피할 것인가는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다만, 이번에 회피한다면 다음에 넘을 수 있는 근력은 줄어들기 마련이라는 거다. 결국은 어느 곳에서든 내 근력과 경험을 기를 수밖에 없다.

근력과 경험이 내 몸에 태도로 남을 때, 두려움은 노하우로 변신할 수 있다. 노하우가 점점 쌓일수록 삶은 풍성해질 수 있다. 그러니 오늘, 어느 곳에 있든 경험을 쌓는 것에 충실하자. 회사에 들어서면 정신없는 하루가 펼쳐질 테지만, 그 정신없는 하루 속에서 보이지 않아도 나는 성장하고 있을 테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혜선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longmami) 및 브런치(https://brunch.co.kr/@longmami)에도 실립니다.


태그:#워킹맘, #직장인, #직장인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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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하면서 프리랜서로 글쓰는 작가. 하루를 이틀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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