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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6일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2000일이 되는 날입니다. 2000일은 5년 하고도 반 년 정도가 더 필요한 참으로 긴 시간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 사이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공적인 차원에서만 살펴보아도 10여 건의 검찰 수사와 재판이 있었고, 감사원 감사도 두 번이나 진행되었으며, 세월호와 관련된 위원회가 3개씩이나 만들어졌습니다. 무엇보다도 그사이에 촛불 항쟁이 있었고 그 결과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직후 세월호 광장을 찾아가 세월호 유가족들의 손을 잡아 주었고, 석 달 뒤에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청와대에 초대하여 다시 한번 안아주었으며, 올해 5주기에는 페이스북에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철저히 이뤄질 것입니다"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세월호참사 유가족 만나는 문재인 당선인 9일 치뤄진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당선이 확실해진 가운데, 정부서울청사앞 세종로공원에서 당원과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 도착한 문 후보가 기다리던 세월호참사 유가족, 스텔라데이지호 실종 선원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2017년 5월 9일 당시 문재인 후보가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 된 가운데 정부서울청사앞 세종로공원에서세월호참사 유가족, 스텔라데이지호 실종 선원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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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정권이 바뀐 이후 2년 반 동안 현 정부는 세월호 진상규명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보였을까요? 우선 시간순으로 주요 사건들을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2017년 3월 31일 박근혜 구속 그리고 목포신항에 도착한 세월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2017년 3월 10일에 있었고 그렇게 대통령 자리에서 쫓겨난 박근혜 전 대통령은 3월 31일 구속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됩니다. 한편 3년 동안 물속에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는 3월 23일 물 밖으로 부상하였고 3월 31일에 목적지인 목포신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공교롭게도 박 전 대통령이 구속된 날 세월호는 목적지에 도착했던 것입니다.

❚ 2017년 5월 9일 대통령 선거

"대통령이 궐위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는 헌법 제68조 제2항에 따라 5월 9일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새롭게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0일에 바로 임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새 정부에 세월호 진상규명에 대한 일정한 기대를 가졌습니다.

❚ 2017년 7월 17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세월호 문건 파기

7월 3일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한 캐비닛에서 삼성 경영권 승계, 간첩 조작 사건 등과 관련된 300여 건의 전 정부 문건이 발견되었고 청와대에서는 이를 7월 14일에 언론에 발표하였습니다. 소위 '캐비닛 문건'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7월 14일에 정무수석실 캐비닛에서 삼성, 위안부 합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등과 관련된 1300여 건에 달하는 전 정부 문건이 발견되었고, 청와대는 이를 7월 17일에 언론에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정무수석실 캐비닛 문건이 언론에 발표되던 바로 그날인 7월 17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서는 '세월호'라고 적혀 있는 A4 용지 2박스 분량의 문건이 파쇄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문재인 정권의 청와대에서 세월호 문건이 파기된 것입니다.

전 정부 문건이 잇달아 발견되는 상황이었기에 청와대 내부에서 문서에 대한 경각심이 매우 높았을 시기에, 심지어 정무수석실 문건이 발표되는 그 날, 세월호 자료가 파기되었던 것은 매우 석연치 않은 일입니다. 윤석열의 서울중앙지검은 이 사실을 인지하고도 제대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현재 우리는 누가 어떤 의도로 어떠한 자료를 파기하였는지 알지 못합니다.

❚ 2017년 11월 8일 국정원 개혁위의 결과 발표

정권 교체 이후 각 부처 별로 적폐청산위원회가 만들어졌는데, 국정원에서는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이하 국정원 개혁위)가 2017년 6월 19일 발족하여 12월 21일에 종료되었습니다. 세월호 관련 조사 결과는 11월 8일에 발표되었는데, 조사 결과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국정원은 세월호에 관여한 정황이 없다는 것입니다. 국정원에 면죄부를 준 것입니다.
 
 청해진해운의 세월호 도입 관련 업무 담당 연락처
 청해진해운의 세월호 도입 관련 업무 담당 연락처
ⓒ 청해진해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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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의혹들 중에서 <세월호 운항관리규정> 단 한 가지 사례만 살펴보아도 국정원 개혁위의 발표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개혁위는 운항관리규정 작성·심사에 국정원이 개입한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청해진해운 업무담당 연락처의 운항관리규정 심의 부분에 국정원 수사관의 연락처가 버젓이 표기되어 있습니다.

또 운항관리규정은 선사가 작성하고 해경이 심사하는 문서인데, 바로 그러한 문서에 오직 청해진해운 선박의 <해양사고 보고계통도>에만 국정원이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청해진해운 자체가 다른 선사들과는 달리 국정원과 특별한 관계에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 2017년 11월 17일~22일 해수부의 유골 은폐
 
김영춘 장관, 세월호참사 유가족에게 사과 24일 오전 김영춘 해수부장관이 여의도 국회의사당앞에서 밤샘농성을 벌인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을 방문해 ‘세월호참사 희생자 유골 은폐’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 김영춘 장관, 세월호참사 유가족에게 사과 2017년 11월 24일 오전 김영춘 해수부장관이 여의도 국회의사당앞에서 밤샘농성을 벌인 세월호참사 유가족들을 방문해 ‘세월호참사 희생자 유골 은폐’와 관련해 사과하고 있다.
ⓒ 정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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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6일 마지막으로 남은 미수습자 5명의 가족들이 이제 시신 없는 영결식을 치르고 목포를 떠나겠다는 기자회견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오전에 뼛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를 보고 받은 현장수습본부의 김현태 부본부장은 비공개를 지시하였고 오후 4시경 상황을 보고받은 이철조 본부장 역시 이에 동의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뼛조각 발견 즉시 선체조사위원회(이하 선조위)에 통보하고, 미수습자가족·유가족에게도 알리며 동시에 무엇보다도 시급하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DNA 감식을 맡겼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철조 본부장, 김현태 부본부장은 18~20일 동안 진행된 장례식 동안 김영춘 해수부장관에게도 이 사실을 숨기다가 20일 발인이 끝난 뒤 해수부장관에게 보고하였습니다. 김영춘 장관은 지금까지 숨긴 것을 질책하고 정상적인 절차를 밟으라고 지시하였지만 다음 날인 21일에야 선조위 위원장에게 늑장 통보가 되었고 미수습자 가족에게는 끝내 통보되지 않았습니다. 김영춘 장관은 22일에 가서도 제대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이철조 김현태 두 사람을 보직해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국과수 감식 의뢰 역시 22일에야 이루어졌습니다.

이철조, 김현태는 박근혜 정부 시기 선체인양추진단의 단장과 부단장이었고, 이들이 바로 세월호 인양 지연 주범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고 나서도 그들을 교체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김영춘 장관은 사안을 인지한 20일부터는 사실상 유골 은폐에 동참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17일에 발견되었는데 20일까지도 정상절차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면 사실상 이미 범죄가 발생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장관은 범죄를 인지한 20일에 즉각 강력한 징계조치를 취했어야 마땅합니다만 그렇게 하지 않고 질책 수준에서 마무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22일까지 정상적인 절차는 진행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 2018년 3월 28일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결과 발표

2017년 10월 12일 임종석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은 두 가지 사안에 대해 긴급 브리핑을 열었습니다. 첫 번째 사안은 세월호 참사 당일 국가안보실 상황보고서 1보의 보고 시각이 지금까지 알려져 있던 10시가 아니라 9시 30분으로 표기되어 있는 문서가 발견되었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안보실장이 국가 위기 관련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되어 있었던 대통령 훈령인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에 빨간 볼펜으로 두 줄을 긋고 검은 볼펜으로 수정한 후 관련 부처에 통보하는 불법적인 방식의 대통령훈령 조작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청와대의 수사 의뢰와 시민단체의 고발이 이루어져 서울중앙지검에서는 이 내용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였고 2018년 3월 28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중앙지검의 수사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무엇보다도 애초에 이번 수사의 출발점이었던 국가안보실 상황보고서 1보의 원본을 찾지도 못했고, 그 원본을 누가 없애버렸는지에 대해서 추가적인 수사를 진행하지도 않았습니다. 대통령 훈령 불법변개와 관련해서도 검찰은 범행의도와 명령계통을 제대로 입증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뒤에서 보듯이 관련자들 대부분은 무죄가 나오거나 낮은 형량이 선고되었습니다.

또한 이 수사의 과정에서 중앙지검은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에서 있었던 세월호 문건파기를 인지하였음에도 이에 대해 제대로 된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2019년 3월 12일 감사원의 인양 관련 감사 결과 발표

올해 3월 12일 감사원의 인양 관련 감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해수부가 인양업체의 음식물쓰레기 관리·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은 인정되지만 인양지연이나 선체훼손에서 고의성은 발견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박근혜 정부 해수부가 고의로 인양을 지연시키고 적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선체를 절단했던 것은 뉴스만 잘 살펴보았어도 알 수 있는 수준의 일입니다. 해수부는 매우 이른 시기에 이미 인양이 기술적으로 가능함을 확인하였음에도 그 발표를 늦추었고, 이미 진행하였던 동일한 수중 조사를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시간을 끌어 왔습니다.

또 이미 위험한 공법이라는 보고서가 나와 있는 부력재 방식을 고집하면서 부력재를 넣기 위해 선체에 추가적으로 100개가 넘는 천공을 뚫었고, 불워크(Bulwark)의 경우에는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작업중지 요청안까지 보냈음에도 이를 묵살하고 작업을 강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인양공법에 있어서도 시간을 끌기 위해 잭업 방식, 크레인 방식, 부력재 방식 등이 이리저리 검토되고 진행되다가 최종적으로는 결국 2014년 4월에 최초로 제안되었던 잭업 방식과 부력재를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세월호는 물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감사원은 인양지연과 선체 훼손과 관련하여 문제없다는 입장을 발표하였습니다.

❚ 2019년 5월 27일 국민청원에 대한 청와대의 답변
 
 정현곤 청와대 시민참여비서관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 27일 오후 3시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 설치와 전면 재수사를 지시해달라는 국민 청원에 답변하고 있다.
 정현곤 청와대 시민참여비서관과 박형철 반부패비서관이 지난 5월 27일 오후 3시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 설치와 전면 재수사를 지시해달라는 국민 청원에 답변하고 있다.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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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가족협의회에서는 올해 3월 29일 대통령이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 설치와 세월호참사 전면재수사를 지시할 것을 청원하였고 이 청원에 24만 529명의 국민이 동참하였습니다. 20만 명이 넘었기 때문에 청와대에서는 답변을 해야 했습니다.

5월 27일 청와대 시민참여비서관 정형곤과 반부패비서관 박형철이 나와서 답변을 하였고, 답변내용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 2기 특조위를 지켜보자, 둘째 계속 노력하겠다, 셋째 계속 보고드리겠다.

하나마나한 소리입니다. 2기 특조위(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사참위)가 활동을 하고 있지만 수사권·기소권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한계가 있으니 검찰이 전면재수사를 진행해 달라는 것이 청원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2기 특조위를 지켜보자고 답을 하는 것은 한 마디로 국민청원을 거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 2019년 8월 14일 1심 판결

이 판결은 앞서 2018년 3월 28일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결과와 이후 진행된 기소에 대한 1심의 판단이었습니다. 김기춘 징역 1년·집행유예 2년, 김장수 무죄, 김관진 무죄, 윤전추 징역 8월·집행유예 2년.

다른 것은 다 차치하고라도 대통령 훈령인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을 볼펜으로 두 줄로 좍좍 긋고 이를 관계부처에 보내어 '개정됐음'을 통보하는 방식의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개정이 무죄가 나온 것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1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박근혜 정부에서 세월호 사고 당시 상황보고일지 등이 사후 조작됐다"는 내용의 브리핑을 가졌다. 사진은 임 비서실장이 공개한 문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2017년 10월 12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박근혜 정부에서 세월호 사고 당시 상황보고일지 등이 사후 조작됐다"는 내용의 브리핑을 가졌다. 사진은 임 비서실장이 공개한 문서.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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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훈령을 그런 방식으로 개정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일이 불법일 수 있을까요? 판결문에서 나온 구절은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입니다. 쉽게 말해 검찰이 수사를 부실하게 했기 때문에 판사 입장에서는 유죄로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취임 후 두 달 만에 세월호 관련 자료를 파기해 버리고, 국정원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며, 대놓고 유골을 은폐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부실 수사를 자행하며, 말도 안 되는 부실 감사를 진행하고, 20만이 넘는 국민의 요구를 묵살하는 것. 이것이 지금까지 문재인 정부가 세월호 참사에 대해 보인 태도입니다.

2기 특조위를 지켜보자고?

청와대에서는 2기 특조위가 활동 중이니 지켜보자고 하였지만 특조위 방식이 진상규명을 위한 최선의 수단인지는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위원회 활동 내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다시는 이런 식의 애매한 조직이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즉 공권력이 인권을 침해하는 일도 없어야겠지만, 그런 일이 있더라도 사법 당국이나 정부가 제 역할을 하면서 책임지고 마무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김동춘(2013),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이다>, 260쪽).

위는 한국의 국가폭력 사건 등을 진상규명하기 위해 참여정부 시절 만들어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 상임위원을 지냈던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의 평가입니다. 위원회 방식으로 진상규명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굳이 다른 사람의 평가를 빌리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위원회'가 진상규명을 위한 최선의 도구가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기 한 사람의 의문의 죽음이 있다고 합시다. 자연사가 아닌 죽음이 있을 때 그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당에서 위원 몇 명 추천하고, 야당에서 위원 몇 명 추천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구에서 직원들 채용해서 강제 수사권 없이 일정 기간 활동하다가 기간이 만료되면 보고서 작성하는 것으로 마무리해야 할까요?

단 한 명이라도 의문의 죽음이 존재한다면 경찰이든 검찰이든 국과수든 국가의 공권력이 동원되어 죽음의 원인을 밝혀내고 자살인지 타살인지 구별하여, 타살이라면 범인은 누구이고 동기는 무엇인지를 확인하여 범인을 체포하고 기소하여 재판을 받게 해야 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에는 304명의 의문의 죽음이 있습니다. 이러한 거대한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최선의 도구가 '위원회'가 아님은 명백합니다. 본래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1기 특조위)든 2기 특조위든 '위원회' 형식의 진상규명 기구는 세월호 진상규명을 하지 않으려는 박근혜 정권·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과의 타협의 산물이었습니다. 특히 2기 특조위의 경우 세월호 진상규명을 막으려는 박근혜 정권 하에서 방법을 찾다 찾다 패스트트랙이라는 방식을 활용하여 겨우 입법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타협의 산물인 위원회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수사권·기소권을 가진 존재가 철저하게 수사하여 처벌할 사람은 처벌하고 제도적 결함이 있다면 보완을 하는 등 원칙대로 절차가 이루어지면 되는 것입니다.

검찰 재수사가 해답일까?

그렇다면 검찰 재수사를 주장하는 것이 해답일까요? 현재 상황에서는 '위원회'가 정답이 아닌 것만큼 '검찰 재수사'도 정답이 아닙니다. 앞에서도 보았듯이 수사권·기소권을 가지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은 세월호 관련 수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을 한 걸음 후퇴시켰습니다. 또 청와대에서 세월호 문건을 파기한 것을 확인하고도 이 문제에 대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수사권·기소권의 보유 여부가 문제의 본질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검찰은 2014년에 선장 선원, 해경 123정장, 청해진해운, 진도VTS, 언딘 등에 대해 수사와 기소를 진행하여 대부분의 사건들이 대법원 판결까지 끝난 상황입니다. 지금 와서 다시 재수사를 한다는 것은 기존에 동료들이 해 놓은 수사가 부실수사였음을 입증하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검찰의 재수사는 검찰이 자발적으로 할 수 있는 선택이 아님은 자명합니다. 정권과 검찰의 진상규명에 대한 의지가 잘 보이지 않는 상황,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다시 2000일을 생각하며
 
 세월호 참사 5주기 인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5주기 기억식이 열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 5주기인 지난 4월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5주기 기억식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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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본질은 '정치적 의지'에 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세월호참사를 진상규명할 '정치적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심지어 해외 곳곳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활동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희망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촛불시민이, 416시민이 직접 '정치적 의지'가 되어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는 세월호 문제를 방관하고 심지어 은폐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월호 진상규명에 즉각 착수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광범위한 시민들의 참여가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동시에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일이고 우리 사회의 연대를 회복하는 일이며, 우리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보다 많은 시민들이 스스로 '정치적 의지'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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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부터 지금까지 세월호의 진실을 찾고자 꾸준히 공부해 온 시민들의 모임입니다. 대학원생, 프로그래머, 주부, 교사, 물리학자, 변호사, 선체감독, 프리랜서, 로스쿨생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hello@416citize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