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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꽃 필 무렵'은 코믹하고 달콤한 로맨스인가 싶다가도 이따금 '연쇄살인범 까불이'를 등장시켜 나를 긴장하게 한다.
 "동백꽃 필 무렵"은 코믹하고 달콤한 로맨스인가 싶다가도 이따금 "연쇄살인범 까불이"를 등장시켜 나를 긴장하게 한다.
ⓒ KBS2 "동백꽃 필 무렵"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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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재밌게 보고 있다. 무엇보다 싱글맘 동백(공효진 분)의 이야기를 신파조로 다루지 않아 좋다. "남편은 없는데 아들은 있을 수도 있잖아요"라고 말하는 동백의 표정은 담백해서 시원하고,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며 "강아지라 생각해유"라고 말하는 용식(강하늘 분)의 말투는 구수해서 유쾌하다.

하지만 보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첫 화부터 동백의 죽음이 암시되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코믹하고 달콤한 로맨스인가 싶다가도 이따금 '연쇄살인범 까불이'를 등장시켜 나를 긴장하게 한다.

여성혐오범죄를 다루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여성이 연쇄살인범의 타깃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밤에 잠이 안 온다. 회를 거듭할수록 동백을 향한 살인범의 위협이 차차 드러나며 드라마는 절정으로 다다르고 있다. 연쇄살인이라는 말만 떠올려도 자동으로 '여성 살해'라는 말이 연상되기 때문에, 남 이야기처럼 편히 볼 수가 없다. 드라마가 끝난 밤이면 문은 잘 잠겼는지 괜히 확인하게 되고, 경찰청 앱이 잘 작동하나 눌러보게 된다.

지금 사는 집에 처음 이사 왔을 때 벨이 고장 나 난감한 상황이 많았다. 택배 기사님은 벨을 누르는데도 나오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영문을 모르던 나는 당황했다. 원인을 알게 된 후 문 앞에 "벨이 고장 났습니다. 전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반듯이 적어 붙였다.

투명 테이프로 깔끔하게 붙이고 돌아서는데 문득 '여자 사는 집이라고 광고하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글동글한 필체와 정중한 말투가 여자의 특성이라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런 표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정성껏 붙인 메모를 당장 떼버렸다. 집으로 들어가 최대한 성의 없이 휘갈겨 쓴 필체로 적었다. '고장!!!!'

무슨 짓인가 싶으면서도 혼자 사는 여성들이 빨래 널 때 남성용 팬티를 넌다든가, 현관에 남성용 신발을 놓는 이유에 공감하게 됐다. 내가 이런 글을 쓰면 남성들이 달려와 "과대망상"이라고 댓글을 다는데 나도 이것이 과대망상이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이런 과대망상 때문에 메모를 두 번이나 쓰고 붙이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빨리 도래하길 바란다.

화성연쇄살인사건, 나를 경악하게 한 기사 제목들

허구인 드라마만 봐도 불안이 커지는데, 여성 살해 관련 뉴스를 보면 일상이 더 흔들린다. 요즘은 어딜 가나 '화성 연쇄살인범' 이야기가 들린다. 나는 그의 살인 수법이나 범행 이력이 얼마나 끔찍한지 알고 싶지 않은데도 언론에서는 끝없이 떠들어댄다. 그러다 며칠 전 한 기사 제목을 보고 경악했다.
 
 지난 3일 연합뉴스는 위 같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지난 3일 연합뉴스는 위 같은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 우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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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정남규도 초월한 이OO의 길고도 잦은 범죄행각.'

내가 범죄에 대한 기사를 보고 있는 것인지, 스포츠 뉴스를 보고 있는 것인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범죄가 경쟁인가? 경쟁을 부추겨 언론이 얻으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 기사를 본 범죄자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두려웠다. 혹 누군가가 이 말도 안 되는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 또 다른 범죄를 생각하는 건 아닐까. 기자는 무슨 의도로 이런 제목을 다는 것일까. 포털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기사를 메인에 거는 걸까 등 나는 핸드폰을 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기사뿐이 아니었다. 국민일보는 아예 "OO 살인사건 재구성"이라는 제목을 달아 이 씨의 범행 과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기사는 범행에 사용된 도구와 방법뿐 아니라 참혹했던 피해자 시신의 상태까지 세세히 전한다. 읽고 나면 잔혹한 이미지들이 남아 마음이 괴롭다. 이렇게 가해자의 범행 수법을 상세하게 재구성함으로써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대체 무엇일까. 사실과는 전혀 관계없는 '괴담'을 떠드는 기사들도 많다. MBC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당시 화성에 떠돌던 괴담들을 소개하는 보도를 했다. "OO하면 살해당한다"는 식의 괴담은 사람들의 공포감만 증폭시킬 뿐 아니라 피해 여성을 모욕하는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버젓이 이런 내용이 전파를 파고 나간다.

우리가 논해야 할 건 왜 '여성'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가이다

나는 이런 여성 살해 범죄 기사를 그만 보고 싶다. 마치 흥밋거리를 보도하듯, 경쟁을 부추기듯 가십으로 소비되는 연쇄살인범 이야기를 그만 보고 싶다. 현실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보도 자체가 사라지면 좋겠지만, 그게 어렵다면 무분별한 보도라도 그만 접하고 싶다. 범행 수법을 상세히 소개하고, 이들의 성장 이력을 파헤치며 은연중에 '영웅화'하는 식의 보도가 두렵다. 이런 기사를 접한 날이면 '안심이' 앱을 켜지 않고는 길을 걷기조차 무섭다. 
  
나는 궁금하다. 범행 이력을 세세히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 오히려 모방 범죄의 위험성이 있지는 않은지. 우리가 논해야 할 건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사람이 어째서 '여성'만을 죽였는가, 수많은 연쇄살인범은 왜 '여성'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가이다. 언제쯤 이런 논의가 제대로 이뤄져 메모 한 장 편히 붙일 수 있는 사회에 살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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