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10 18:05최종 업데이트 19.10.1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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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지역의 아파트 단지 모습. ⓒ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사라' 정책의 실행자는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다. 주거 정책의 주무 부처는 국토교통부지만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임명된 그는 '부동산 규제가 한 겨울에 여름옷을 입은 격'이라며 강력한 부동산 부양 정책을 추진했다.

2014년 7월 24일 발표된 '새 경제팀의 경제정책방향'에는 LTV·DTI 등 대출 규제 완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의 실질적 폐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해 12월 국회에서 '부동산 3법'을 통과시켜 이러한 계획은 모두 실제로 실행되었다.


청약제도 개선이라는 이름으로 '다주택자에 대한 차별을 완화한다'며 청약가점 기준에서 주택수마다 -5점이었던 감점항목도 폐지했다. 이는 다주택자의 청약 기회를 늘려 '집을 옷보다 더 자주 사고 파는 사람'이 생겨날 정도로 주택 쇼핑을 제도화했다.

무주택 실수요자의 청약 기회는 줄어들었고, 자금력이 있는 다주택자의 투기 기회는 커졌다. 투기 세력이 분양권과 집을 사고 팔며 가격을 올리면서 투기 광풍이 전국적으로 불었고, 마침내 기존 주택 가격이 높아 추가 상승 여력이 적었던 서울까지 가격이 급등하게 되었다.

국토부는 불 끄고 기재부는 다시 기름 붓고

문제는 금리, 금융 규제, 조세 정책 등을 통해 주거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획재정부가 집을 '부동산과 경기 부양책'으로 보는 정책 방향을 문재인 정부에서도 바꾸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결정적인 시기마다 주거 정책의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와 불협화음을 내거나 '주택 가격 안정과 투기수요 억제'에 역행하고 있다. 이는 시장에 '정부의 집값 안정 의지가 크지 않다'는 잘못된 신호로 비쳐지고 있고, 기획재정부가 정책을 주도할 때마다 서울의 집값은 이전 고점을 계속 갱신하며 폭등을 거듭하고 있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와 장기보유특별공제(10년 이상 보유 시 양도소득의 최대 80%를 공제) 배제를 통한 양도 차익에 대한 과세 강화가 2017년 8·2대책의 핵심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해 12월 발표된 '임대주택 등록 활성화방안'에서 기획재정부는 '임대 등록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를 배제하고, 장기보유특별공제도 70%까지 적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실거래가에 의하면 임대 등록만 하면 8·2대책의 다주택자에 대한 모든 규제를 회피할 수 있게 된 이 방안 발표 이후인 2018년 1월부터 8·2대책으로 하향 안정화되던 서울의 주택 가격이 다시 상승세로 접어들었다.

박근혜 정부의 기획재정부는 2014년 12월 23일 <조세특례제한법>에 2017년 12월 31일에 일몰되는 한시 조항인 제97조의 5를 신설하여, 신규 취득 후 3개월 이내에 임대등록하는 85㎡이하 주택에 대해 '양도세 전액 면제'라는 파격적인 혜택을 부여했다. 85㎡이하면 10억이 넘든, 몇 채를 보유하든, 양도소득이 얼마이든 상관없이 양도세를 100% 면제하는 비정상적인 특혜였다.

문재인 정부의 기획재정부는 2017년 12월 31일 일몰 예정이었던 이 조항을 2017년 12월 정부 입법을 통해 2018년 12월 31일까지 다시 1년 연장했다. 이는 2017년 8·2대책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그야말로 원천봉쇄하는 조치로, 문재인 정부의 기획재정부가 박근혜 정부 기획재정부를 계승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국토교통부장관까지 나서 '임대사업자에 대한 과도한 혜택 축소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2018년 9·13대책에서도 특혜 축소는 대책 발표 이후 신규 취득 주택으로 한정됐다. 기존 임대사업자와 기존 보유 주택 임대등록시의 세제 혜택은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2018년 7월 기획재정부가 재정개혁특별위원회의 종합부동산세 개편안보다 후퇴한 개정안을 내 놓으면서 서울의 주택 가격 폭등이 이어졌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부동산을 통한 경기 부양에 대한 미련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 투기에 의한 부의 창출과 양극화를 막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줬다"고 비판했다.

이후 강남 재건축 단지의 아파트 가격은 실거래가 기준으로 몇 달 사이 수억 원씩 상승하였는데, 이는 유사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폭등이었다. 그래 9·13대책에서 종합부동산세 및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서울의 주택 가격은 비로소 하향 안정화되기 시작하였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기획재정부를 거치면 주거 정책이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는 현상이 최근까지도 반복되고 있다. 실거래가에 의하면 2019년 3월 이후 서울의 집값이 다시 상승세로 반전되었고, 7월 이후 모든 지표에서 집값 상승세가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발표 두 달만에 '보완' 들어간 분양가상한제

국토교통부는 '일부 지역의 고분양가가 집값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판단하에 지난 8월 12일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위해 '주택법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 장관은 곧이어 KBS와의 인터뷰를 통해 '분양가상한제의 시행 시기가 확정되지 않았고 경제 여건이나 거래·가격 동향 등을 고려해 관계 부처 협의로 결정할 것'이라고 말해 부처간 이견을 드러냈다.

국토교통부의 시행령 개정안에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지역 지정 시 재건축·재개발사업을 포함한 모든 사업에 대해 입주자모집공고 신청분부터 적용토록 되어 있었다. '관리처분인가를 이미 받은 단지도 분양가상한제 적용 대상에 포함된다'는 것이 주요 개정 내용 중 하나였다.

국토교통부는 보도자료뿐 아니라 차관 등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도 '관리처분인가에 포함된 예상 분양가격 및 사업가치는 법률상 보호되는 확정된 재산권이 아닌 기대이익에 불과하며, 국민의 주거 안정이라는 공익이 조합원의 기대이익보다 크다'며 강행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결국 지난 10월 1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한번 시행도 되지 못한 주택법 시행령이 '보완에 들어간다'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개정 시행령 시행 전 관리처분인가를 받았거나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신청하고, 시행령 시행 후 6개월까지 입주자모집공고를 신청한 경우 상한제 적용이 제외되는 경과조치를 마련하겠다'는 내용이었다.

몇몇 단지의 조합원과 일부 정치인의 반대가 있다고, '주거 안정 못지않게 조합원의 기대이익도 중요하다'고 정부 정책이 두 달도 안 된 사이에 바뀐 것이다.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가 우왕좌왕하는 동안 서울의 주택 가격 상승은 계속되고 있고,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반대하는 세력을 중심으로 '그것 봐라. 분양가상한제를 써도 수요가 몰리는 서울의 주택 가격 상승은 막을 수 없다'며 정부 정책에 대한 비아냥이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한 기재부의 과도한 영향력 사라져야

정부가 2017년 8·2대책에서부터 '필요시 사용할 수 있다'고 예고했던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라는 날카로운 칼을 꺼내들었으나, 두부라도 자르기는커녕 자칫 잘못하면 애꿎은 칼만 녹슬게 생긴 상황이다. 주거 정책에서 기획재정부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던 최근의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실에 의하면, 서울 재개발·재건축 단지의 3.3㎡당 분양가는 분양가상한제가 실질적으로 폐지된 2015년부터 4년간 2,056만원에서 3,153만원으로 53%가 상승했다. 이는 대다수의 노동자가 1년치 급여로 아파트 한 평도 사기 힘든 지역이 강남을 넘어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택법 시행령 개정이 아니라 주택법 개정으로 '핀셋 규제'라는 이름으로 투기과열지구와 같이 일부 지역만 규제하는 박근혜 정부의 틀을 벗어나 노무현 정부 때처럼 전국적인 의무 시행으로 분양가상한제를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 고분양가 문제는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라 부산, 대구, 제주 등 전국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동일한 가격으로 대규모로 공급되기 때문에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아파트 분양가가 적절한지를 분양가심사위원회를 통해 살펴보는 일은 개정 시행령에서처럼 투기과열지구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필요하다.

몇몇 단지의 조합원과 일부 정치인,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관료들이 분양가상한제를 흔들 수 없도록 법률 개정을 통해 제대로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시행령 개정안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흔들리는 힘없는 분양가상한제로 막대한 유동자금과 저금리로 중무장한 투기 세력을 막을 수는 없다.

기획재정부는 국토교통부가 주무 부처인 분양가상한제에 대한 발목잡기를 멈추고,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차례 차례 무력화된 '보유세 강화', '다주택자 양도소득 단일세율 과세', '장기보유특별공제율 축소' 등과 같은 투기 억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물론 문재인 정부에서도 기획재정부는 결과적으로 '한 여름에 군불까지 땐' 역할을 했다. 경제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주거 정책을 경기조절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반복되지 않도록 기획재정부가 주거 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최소한 분양가상한제처럼 주무 부처가 명확한 정책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과도한 영향력은 빨리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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