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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이 특정 사건을 보도하는 데에 있어 지켜야 할 보도준칙은 다양하다. 특히 누군가 자살을 했을 때는 더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 해외에서도 자살보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공표한 바 있는데, 한국의 경우 2004년 처음으로 자살보도 권고기준이 생겼다. 

자살의 원인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왔지만, 단 하나의 원인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 많은 연구의 중론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를 보도하는 방식이 독자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매우 강력하다는 것이다. 권고기준은 그러한 측면에서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에 가깝다.

'권고기준'이라는 이름의 최소한의 합의 

2004년 권고기준이 처음 생긴 뒤에 2013년과 2018년 두 차례의 개정을 거쳐 지금의 '자살보도 권고기준 3.0'이 마련되었다. 해당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기사 제목에 '자살'이나 자살을 의미하는 표현 대신 '사망', '숨지다' 등의 표현을 사용합니다.
2. 구체적인 자살 방법, 도구, 장소, 동기 등을 보도하지 않습니다.
3. 자살과 관련된 사진이나 동영상은 모방자살을 부추길 수 있으므로 유의해서 사용합니다.
4. 자살을 미화하거나 합리화하지 말고, 자살로 발생하는 부정적인 결과와 자살예방 정보를 제공합니다.
5. 자살 사건을 보도할 때에는 고인의 인격과 유가족의 사생활을 존중합니다.


권고기준의 전체적인 방향은 두 차례 개정에도 바뀌지 않았다. ▲ 미디어의 영향을 간과하지 말 것. ▲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고려해서 조심스럽고 사려 깊게 보도할 것. 사실 해당 권고기준에는 유가족이 겪는 고통이나 모방자살의 위험성, 그리고 망자에 대한 예의를 중심적으로 언급하고 있긴 하나, 본질적으로는 '남겨진 제삼자들'을 위한 윤리적인 지침에 가깝지 않나 싶다. 

특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유명인의 경우, 비윤리적이고 관음증적인 자살 보도는 그걸 읽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너무 쉽다. 언론인이 그런 것까지 고려해야 하느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올바른 보도를 통해 사람들에게 상처를 조금이라도 덜 줄 수 있다면, 그런 방식을 택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러나 많은 언론은 이 권고기준이 법적인 강제력이 없다는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유명인의 죽음 앞에 조회 수 장사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에 바빴다. 보건복지부에서 2013년 내놓은 연구보고서 '언론보도가 자살예방에 미치는 연구'에 따르면, 2004년 생긴 권고기준을 언론이 준수하는 정도가 매우 미흡했으며, 선정적이며 더 나아가서는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해당 보고서는 국내의 자살 보도 연구들을 인용하며 상당히 많은 자살 보도 기사들이 자살 방법, 장소, 동기, 자살자 정보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여전히 변하지 않는 사회, 상처 주는 언론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지난 14일 가수 설리씨의 사망 소식 때문이다. 최대한 고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기 위해 해당 내용을 가장 뒤쪽으로 배치해두기로 했는데, 이미 너무 많이 그의 이름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불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번에도 언론은 여러 가지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안기고 있다. 앞서 자살보도 권고기준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지만, 사실 저널리즘의 원칙을 제시하는 것과 별개로 공동체의 구성원이라면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윤리적 지침과도 가깝지 않나 싶다.

그 최소한의 기준조차 지키지 않는 이들이 조회수를 위해 저지르는 일을 일일이 글로 옮기기에는 너무 민망할 따름이다. 여전히 한국 사회는, 그리고 한국 언론은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사려 깊지 못함을 넘어 폭력적인 기사들 때문에 상처받고 있다. 

2004년 권고기준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자살이 개인적인 이유보다 사회적이나 문화적 요인이나 문제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는 식의 언급도 삼가야" 한다는 표현이 있었다. 사실 이 말은 기준을 만든 이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살을 한 것은 본인의 탓이다"라고 오해되기에 충분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자살은 이미 상당부분 구조적인 문제고, 그것을 선택하기까지의 다양한 맥락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은 오히려 본질을 더 가리게 되기 때문이다. 15년이 지난 지금 이 표현은 이렇게 바뀌었다.

"자살을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는 수단으로 보도하는 경우에도 신중해야 합니다. : 사회적 모순, 제도 미비 등의 문제를 제기하는 사례로 자살을 다루는 경우에도 또 다른 자살을 유발할 수 있음을 유의해서 보도해야 합니다."

자살 문제가 구조적인 문제라는 인식이 그동안 강화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할 때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실제로 한국자살예방협회는 자살을 공중 보건의 문제보다는 개인적인 선택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높고 이것이 개선될 필요가 있음을 지적했다. 

설리가 한 선택에 대해 우리가 그 직접적인 이유를 모두 알아낼 도리는 없지만, 적어도 한국사회가 얼마큼 무례하고 폭력적으로 대했는지 우리 모두 분명히 알고 있다. 연예인에게 가해지는 과도한 관심에 더해 그가 가진 여성이라는 정체성이 한국사회에서 소비된 방식에 대해 우리 모두는 똑똑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나. 

그 무례함은 여전히 이번 사건을 보도하는 데에 반영되어 있다. 권고기준은 15년이 지나면서 그나마 더 진일보했는데 기사를 쓰는 사람들의 수준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권고' 수준에 머무른다고 안 지켜도 된다는 뜻이 아니건만, 언제까지 우린 이런 폭력적인 보도를 비판해야 하는 걸까?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다음의 번호로 전화하면 24시간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 희망의 전화 129 /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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