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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이었는데 전화가 왔다. 업무 시작과 함께 가장 먼저 건 전화 같았다. 받을까 말까 하다가 받았더니 "전희식 고객님…"이 아니었다. 광역치매센터였다.
 
<똥꽃>,<엄마하고 나하고> 북 콘서트
▲ 대담 <똥꽃>,<엄마하고 나하고> 북 콘서트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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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전에 있었던 북 콘서트가 무척 좋았다는 소문을 들었다면서 11월 언제쯤 모실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치매 관련 기관으로부터 이런 요청을 벌써 세 군데서 받는다.

한바탕 놀이였던 그날의 기억이 새롭다. 졸저 <똥꽃>과 <엄마하고 나하고>의 통합 북 콘서트였다. 내가 사는 고장 장수군 계북면의 한 '치매안심마을'에 방학 동안 실습을 온 복지 전공 대학생들과 한 달을 같이 어울리면서 진행했던 여러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3·4학년으로 구성된 6명의 대학생은 32일 256시간을 이 마을회관에서 먹고 자면서 지냈다. 이들과 흔쾌히 같이 하게 된 것은 내가 우리 고장의 치매안심센터 운영위원이어서만은 아니다.

해당 프로그램을 맡은 복지담당 공무원의 적극적인 요청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 치매와 노인에 대한 관심이 커서였다. 그래서 내 일처럼 뭐든 신바람 나게 참여했을 뿐이다.
 
치매안심마을에서  열린 책 잔치
▲ 북콘서트 치매안심마을에서 열린 책 잔치
ⓒ 전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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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콘서트는 기획 회의를 몇 차례 하며 치밀하게 준비했다. 마을 초등학생들이 대학생 언니들과 알록달록한 포스터를 만들었다. 준비해 나갈수록 제법 그럴듯한 잔치 모양새를 갖추는 북 콘서트가 되었다. 마을에서는 전을 부치고 떡을 한 시루 마련했다. 막걸리도 한 상자 들였다. 영락없는 한여름 밤의 마을잔치가 되어갔다.

시골 마을의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북 콘서트의 주 관객(?)일 터이니 저자의 말은 줄이고 영상과 사진, 주민 참여형 카드놀이도 넣었다. 육자배기를 잘하신다는 할머니와 장구를 치신다는 할아버지도 무대에 올렸다. 남원에서 활동하는 어느 극단의 후배 가수도 불러서 판소리를 부탁했다.

눈치 빠른 내 후배는 자신의 노래보다도 마음 분들의 흥취를 돋우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 대중가요와 민요를 했다.

사회자와 저자인 내가 간단한 대담과 관련 영상을 틀고 나서 바로 카드놀이로 들어갔다. 내가 대안학교 학생들과 농사 체험을 하며 했던 놀이를 그대로 한 것인데 대박이었다.

번호가 적혀 있는 카드 하나를 대학생이 집어 들고 질문을 하면 앉아 있던 마을 주민 중에서 같은 번호를 가진 사람이 일어나서 대답하는 놀이였다. 번호를 매기고 한 장 한 장 질문 카드를 만드는 것은 낮에 다 했다. 답변하시는 분들에게 드릴 작은 선물도 마련하고 사전 각본 없이 진행했는데, 엉뚱하지만 흥겨운 답변들이 공연장을 즐겁게 했다.

"정말 살기 힘들다고 느낄 때가 언제였냐"고 물으니 "세월이 약이여~"라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대답 뒤에는 폭소가 뒤따랐다. 카드를 쥐고도 숫자를 읽을 줄 모르는 할머니는 곁에서 학생들이 도와 드렸다. 자식 관련 질문이 나왔는데 "써글놈들이 전화도 안 한다"고 하여 와르르 웃음 보따리가 터졌다.

북 콘서트가 마을잔치로 준비된다는 얘기를 듣고 서울·군산 등 전국에서 같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5~6개 대학생 팀 30여 명도 왔다. 잔치 뒤에 그들과 집단 상담 시간을 보냈다. 이 자리에서 북 콘서트 전국 순회공연을 하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시간은 흘러 학생들은 실습 시간을 다 채웠고 아쉬운 작별을 했다. 학생을 데리러 온 어느 부모는 학생들을 손녀딸처럼 귀여워해 준 마을 할머니들과 기념촬영도 했다.

'호모 루덴스'라는 말이 있다. '놀이하는 인간'이다. 치매를 병으로 보지 말고 (짓궂은) 놀이의 하나로 여기면 어떨까? 삶 자체를 놀이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남도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치매안심마을, #똥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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