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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작가회의에서는 '2019 대전방문의 해'를 기념하여 연속기고를 시작합니다. 대전의 볼거리와 즐길거리, 추억담을 독자들과 나누고 대전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추억이 방울방울'이라는 만화가 있다. 도시에 사는 주인공이 어린 시절 시골에서 지냈던 기억을 되살려 시골여행을 떠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이야기다. 이렇듯 사람은 추억을 밑천삼아 장소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 장소의 특별함은 추억의 밀도와 비례하며 추억은 결국 사람과의 인연에 다름 아니다.

나는 태어나서 대학 졸업까지는 서울에서 살았고 결혼한 후부터 대전에서 살았다. 서울과 대전에서 살았던 기간이 엇비슷한데도 대전에 대한 각별함이 덜한 것은 학창 생활과 연애 혹은 우정과 사랑 등 사람과 맺은 인연이 주로 생애 전반기에 치우쳐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십여 년을 훌쩍 넘게 살면서도 대전이 거주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던 어느 날, 타 지역에서 거주하던 딸아이가 오랜만에 대전에 왔는데, "한화 이글스"의 팬이 되어 한화의 유니폼을 입고 나의 생일 선물로 한화 이글스 파크의 야구티켓을 내밀었다.

타향에 있으며 한화 이글스의 팬이 된 딸을 본 순간 대전이 내 고향은 아니지만 우리 아이들의 고향임을 깨달았고, 내 고향이 아닐지라도 아이들의 고향이라면 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가 하며 정신을 차렸을 때엔 이미 한화 이글스의 팬 마리한화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어린 시절 야구를 좋아했던 기억으로 나는 한화 이글스 팬의 대열에 쉽게 합류했다. 어린 시절 신일 고등학교 근처에 살았는데 당시 전국고교야구대회 예선전은 고등학교 야구장에서 열리는 경우가 많아 자주 야구를 보러 다녔다.

고등학생 때는 그 유명한 선린상고와 경북 고등학교의 고교 야구 결승전에서 박노준 선수가 부상당한 뒤 입원했던 병원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학교에 다녔다. 당시 야구 경기장으로 치면 거의 내야 중앙석에 가까운 우리 반 창문에 서서 병실을 향하여 두 손 모아 박노준 선수의 쾌유를 응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렇듯 한 인간이 한화 이글스의 팬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개인과 야구와의 오랜 인연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을 추억이라 부른다.

한편 부산이 고향인 남편은 빨간 비닐봉지만 머리에 쓰지 않았을 뿐 텔레비전으로 야구 경기를 시청할 때면 '부산 갈매기'를 열창하는 동시에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이 직접 들으면 결코 유쾌하지 않을 욕을 하는 롯데 자이언츠 팬으로 롯데와 한화가 맞붙는 날을 제외한 날에는 한화 이글스 팬이 되는 데 타협했다.

딸아이가 한화 이글스 파크의 문을 활짝 열어준 후부터 우리 부부는 딸이 없어도 둘이 '직관'을 가는 데 맛들이기 시작하였다. 직관의 가장 큰 걸림돌은 우리 집이 대전의 북쪽 끝에 있어 남쪽 끝에 있는 경기장까지 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처음에는 차를 가지고 갔지만 주차가 어려운 데다 둘 중 한 사람은 맥주를 못 마시게 된다는 결정적 한계에 부딪혔다. 한화 이글스 팬으로 맥주를 안마시면서 9회를 버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대리 기사님을 불러 봤으나 내가 사는 동네는 대리기사님들의 비선호지역이라 이 또한 문제였다.

그래서 802번 시내버스를 타기로 했다. 이 버스는 대전의 북쪽에서 출발하여 대전 복합터미널이 있는 동쪽을 경유하여 다시 남쪽으로 가는, 자연스럽게 대전 전 지역을 관광시켜주는 노선이다. 야구 경기를 관람하고 나오면 802번을 타기도, 택시를 잡기도 쉽지 않아 우리는 근처 농민 순대와 막걸리를 아는 몸이 되어갔고 슬슬 걸어서 선화동, 대흥동, 은행동 등 대전이 고향인 이들이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읊어대는 동네에 익숙해져갔다. 야구가 중매를 서서 나와 대전을 엮어준 셈이다.
 
 올시즌 부활을 입증해야 하는 한화 김태균
 한화 김태균 선수.
ⓒ 한화 이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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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경기는 처음에는 외야에서 관람했으나 이글스 파크에서는 언제나 1루에 있는 관객들이 완전 돋보였고 드디어 나는 1루 응원석 티켓을 손에 넣게 되었다. 처음에는 좌석에 앉았다 일어서는 것도, 응원을 위해 손동작을 하는 것도 어색했으나 어느새 "김태균 홈런 날려 버려라"부터 "제럴드 호잉~"을 연호하고 1루 견제구를 던지는 상대방 투수를 약 올리는 멘트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고 8회 육성 응원의 짜릿한 감동도 맛보게 되었다. 교회 예배에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두 손을 들고 통성 기도를 하고 있는 교인을 떠올리면 된다.

한편 우리부부를 진정한 대전 사람이라 여기지 않던 서울과 부산의 형제들도 우리의 한화 이글스 팬으로의 커밍아웃에는 "드디어 대전 사람이 다 됐다"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판정을 내려 주었다. 다른 지역 지인들은 내가 한화 팬임을 밝힐 때마다 갑자기 나를 인내심 깊고 신의를 지키는 사람으로 업그레이드해준다.

야구를 보러 가서 1루 응원석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이들과 나는 1회부터 9회까지 세 시간 가량 잠시 하나가 된다. 마치 특별한 이슈로 만났다가 헤어지는 플래시 몹에 참여한 느낌이다. 성별, 나이, 인종, 종교, 정치색을 떠난 공동체 의식, 어쩌면 이것은 현대인이 느끼는 잠깐의 소속감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종교나 인종, 정치색으로 뭉치는 소속감보다 스포츠팬으로의 이 작은 소속감이 어떤 면에서는 더 무해하다고 생각한다(훌리건 제외).

대전에 거주하는 시민 중에는 대전이 고향이 아닌 사람도 적지 않다. 그 사람들이 기억에만 의지하여 추억의 자리를 생각한다면 언제까지나 타향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고향이란 그리고 공동체란 무엇인가? 나는 한화 이글스 파크의 1루 응원석에 앉아 생각한다. 이 흥겨운 순간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고... 어쩌면 우리의 삶과 추억도 한화 이글스의 경기 시간만큼이나 짧고 강렬한 불꽃같은 것이 아닐까.

한편 한화 이글스 경기를 보며 웃고, 울고 화내고 스트레스 받는 감정의 실체는 무엇일까? 한화 이글스 경기를 보며 느끼는 스트레스가 아무리(?!) 커도 내 삶의 스트레스만 하겠는가? 한화 이글스에 빠져 스트레스도 받고 아주 가끔 기쁨도 맛보는 것, 그것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다. 나는 오래 고민해봤자 해결 되지 않는 내 삶의 여러 문제를 잠시 내려놓고 스포츠 경기를 보며 삶에도 삼진, 홈런, 밀어내기, 역전패, 역전승이 있다는 진실을 배운다. 한화 이글스의 성적보다도 형편없을 내 삶의 성적표를 겸손하게 받아들 수 있는 시간을 번다.

거주지를 자주 옮기거나 자발적으로 어딘가에 소속되기를 원치 않는 현대인의 생활에서 '한화 이글스' 팬이 되는 경험은 잠깐의 소속감을 얻는 체험이며 가상 스트레스를 통해 진짜 스트레스를 극복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만화 '추억은 방울방울'이 주인공에게 가상의 노스탤지어, 현대인에게 사라진 고향을 떠올리게 해주었다면 한화 이글스는 나에게 긍정적 의미에서 '가상의 공동체'를 만들어주었다. 그러니까 이 글은 '가상의 공동체'를 통해 내 삶과 마음의 자리를 돌아보게 된 해피엔딩의 스토리이다.

오세란 :
어린이청소년문학평론가, 문학박사, 《창비어린이》 편집위원, 청주교대와 충남대 출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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