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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25일 '서울'의 학벌없는사회는 마지막 총회를 갖고 해산했다. 그들은 해산선언문을 통해 '이제 자본독점 앞에 학벌독점도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진단하며 더 이상 학벌타파 운동은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처럼 말했다.

그 이후 서울대를 비롯한 고학벌 대학 학생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부정하는 데에 이 해산소식은 빠지지 않고 근거로 사용되었다. 학벌없는사회를 만들겠다던 사람들의 주장이 정작 학벌 있는 사람들의 입장을 뒷받침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해산선언문을 끝까지 살펴보면 해산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 긴 시간 학벌없는사회의 이념에 동의하고, 우리 단체를 후원해주신 많은 분들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단체 활동을 중단하게 된 더 현실적인 까닭은 활동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있는 인적인 토대가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천만씨앗이나 학교밖 인문학, 월례토론 등의 다양한 활동이 있었지만, 단체 초기부터 함께 했던 분들은 활동의 공간을 이전했음에도 새로운 활동가를 세워 내지 못했다."

종종 운동단체들이 자신들의 실패를 시대전체의 문제로 확대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단체내부의 운동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단체가 제시하는 의제가 사회적 의미를 상실한 것인지는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그런데 해산선언문은 '학벌이 더 이상 권력획득의 기제'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학벌은 여전히 교육문제의 질곡이며 학벌사회를 깨뜨리려는 노력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다소 모순적인 서술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단체내부의 문제로 활동을 이어갈 수 없다는 진짜이유를 밝히고 있다. '서울' 학벌없는사회의 해산은 단체 내부의 문제와 시대의 문제를 뒤섞어 버렸고 그 결과 오히려 학벌타파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근거가 되는 역설을 만들었다.

'서울'의 학벌없는사회는 '광주'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펼치던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당시 광주시민모임)이 있었음에도 자신들이 학벌타파 운동 전체를 대변하며 역사를 닫으려 했다. 서울에 소재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이 운동의 전부라는 생각이 전제된 해산선언은 학벌서열에서 소외된 지방의 시민들을 시민운동에서조차도 배제한 잘못된 일이었다.

'서울'의 학벌없는사회가 살펴봐야 했었던 것은 학벌 없는 시민들이 받는 차별이지 학벌 있는 청년들의 권력 독점 실패가 아니다. 서울의 학벌 있는 대학생들이 학벌없는사회 운동에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은 결코 해산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설령 해산선언문의 주장처럼 더 이상 학벌이 권력획득의 기제가 아니라 하더라도 학벌주의 입시교육으로 고통받는 청소년들이 있는 한 학벌타파 운동은 계속되어야 한다.

'광주'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의 활동

2008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던 '광주'의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광주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독자적인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9년 1월 18일에는 정기총회를 갖고 단체 명칭을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에서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으로 개정했다.

'서울'의 학벌없는사회가 해산한 마당에 굳이 스스로 '광주'라는 제한을 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전부터도 '광주' 활동은 '서울'의 활동과 방식이 달랐을 뿐 그 범위가 '광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명칭개정은 이러한 이유와 더불어 전국의 시민들에게 다시 학벌타파 운동을 만들자는 제안이기도 했다.

2019년 10월 8일 '광주'의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2016년 '서울'의 학벌없는사회 해산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선언문을 토론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학벌없는사회 운동을 되돌아보다'를 주제로 채효정 '서울' 학벌없는사회 전 사무처장과 박고형준 '광주'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 상임활동가의 발표가 있었다.

채효정 전 사무처장은 해산선언문의 판단은 잘못되었으며 학벌타파는 다시 시작해야 할 운동이라는 취지로 발표했다. 박고형준 상임활동가는 단체의 역사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발표했다.

토론회를 전후로 한국사회를 뒤덮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둘러싼 논란'은 학벌을 통한 부와 권력의 세습 문제를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규탄한다는 학벌 있는 청년들의 집회는 자신들이 발딛고 선 학벌주의에 대한 성찰을 찾아볼 수 없는 '기득권 지키기'일 뿐이었다. 정작 학벌 없는 청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학벌 있는 청년 대학생들의 무책임한 집회 소식과 학벌 없는 청년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사망소식은 극단적인 대조를 보여주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자녀가 특권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소식보다도 그 소식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언론이 이를 다루는 방식에서 학벌주의의 모순이 더 극명하게 드러난 광경이었다.

'광주'의 학벌없는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3차례의 논평을 통해 이번 사건의 핵심이 학벌주의에 있음을 밝히고 다시 한번 전국의 시민들에게 학벌타파 운동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비롯한 민주당 정치인들의 위선을 비판하는 것은 그들과 똑같은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학벌 없는 청년, 입시교육에 고통받는 청소년, 세습과 독점에서 배제된 모든시민들의 몫이어야 했다.

서초동과 여의도에서 촛불집회를 이어가고 있는 시민들의 '검찰개혁'이라는 외침은 옳은 주장이다. 그러나 검찰총장을 국민직선으로 선출하는 혁명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번 사건이 보여준 학벌사회의 모순을 해결할 순 없을 것이다.

10월 22일, 문재인 대통령의 배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서울' 학벌없는사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학벌타파를 공약했다. 제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유력정당의 정치인(한나라당 이회창, 국민통합21 정몽준)과 군소진보정당의 정치인(민주노동당 권영길, 사회당 김영규)까지 서울대 출신인 상황에서 '고졸' 노무현 후보의 선언은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고졸' 대통령 한 명이 탄생했다고 해서 권력을 바꿀 수는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 임명된 13명의 청와대 수석비서관 중 단 1명을 제외한 모두가 서울대 출신으로 채워졌다. 2017년 경향신문이 발표한 취임 100일 기준 역대 정부의 고위공직자 출신대학 통계에서는 노무현 정부시기 정부 고위공직자 45.8%가 서울대 출신이었으며 연세대와 고려대를 합하면 61.2%였음을 밝히고 있다.

취임 직후 임명된 수석비서관 중 단 1명의 예외였던 문재인 민정수석비서관은 2017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2년 첫 번째 대선출마 때부터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정책을 통한 학벌철폐를 공약했다. 2017년 대선에서는 4월 6일 목포대학교를 방문하여 강연회를 갖고 대학 서열화 철폐가 교육문제 해결의 근본 방안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학벌 있는 청년들은 문재인 정부가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실현하지 않을까 재빠르게 비난을 퍼붓고 자신들이 국공립대 통합의 희생양이 될 것이라는 선동에 열중했다. 그러나 그들의 걱정은 기우였고 임기 내에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이루겠다던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교체되었다.

2019년 10월 22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정시 확대를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 방향을 제시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을 두고 교육부가 교육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입시공정성 강화'라는 협소한 대책을 내놓았을 때부터 문재인 정부는 '학벌서열' 철폐 공약을 저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10월 22일 시정연설은 이것을 넘어서 한국 교육의 무의미한 입시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시험위주의 입시제도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청소년들이 겪는 학업부담의 고삐를 더 세게 조이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말하는 '공정성 강화'란 결국 그런 것일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정시 확대는 없으며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혀온 교육부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같은 날 열린 부교육감회의에서 '서울·수도권 일부 주요대학들의 학종 선발 비율이 높기 때문에 균형감 있게 정시비율을 확대하는 등의 방안을 당정청이 협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바로 전날인 21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도 '정시를 확대하면서 사교육을 낮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등의 김해영 최고위원의 발언을 통해 정책방향 선회가 예고되기도 했다.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는 문재인 대통령뿐만 아니라 민주당의 공약이기도 하다. 2012년 1월 이용섭 현 광주광역시장은 당시 민주당 정책위의장으로서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정책을 민주당의 교육개혁 방안으로 제시했다. 그해 6월 21일 이해찬 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당시 민주통합당의 대표로서 민주통합당 정책위원회가 주관한 "대학서열화·학벌 타파를 위한 국립대학 체제 개편 토론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기도 했다.

결국 10월 22일 대통령의 시정연설과 그 전후로 발표되는 민주당 정치인들의 '정시확대' 주장은 '당정청' 모두의 배신이다.

다시 한번, 학벌타파 운동 제안

나는 2016년~2019년 동안 지방대학의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주변 지방 대학사회의 실태를 보았다. '학벌'이 '주체성'을 앗아간 지방 청년들의 사회는 침묵 그 자체였다. '정치'라는 사회적 목소리를 잃어버린 대학사회에서는 불합리와 부정부패가 판을 쳤고 학생자치는 어용화되거나 무의미해졌다. 자신이 발딛고 있는 지역 공동체에 대한 관심은 사리지고 지방대학은 서울진출에 탈락한 사람들의 수용소, 대기소가 되어버렸다.

노무현과 문재인 두 대통령의 배신은 정치인의 공약만으로 학벌주의가 해소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민주주의가 공짜로 주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학벌이 독점하는 정치·경제·사회 권력을 분산시키는 것도 시민들의 투쟁이 필요한 일이다.

진보진영 일각에서 학벌문제를 지적하고 있지만 정작 학벌타파를 위한 구체적인 운동의 계획에 대한 토론은 없어 이번 사건이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나는 게 아닐지 걱정이다. 한국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학벌의식을 바꾸는 것이 선언과 주장만으로 가능한 일이었다면 이미 2000년대에 학벌은 철폐되었을 것이다.

서초동과 광화문 그 어디에도 갈 수 없었던 청년들의 목소리를 이끌어내고 이들을 나라의 주인, 공동체의 주인으로 내세우고자 한다면 지금 필요한 일은 학벌 없는 시민들의 운동을 차근차근 조직하는 것이 아닐까. 다시 한번, 전국의 시민들에게 학벌타파 운동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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