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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삼척중앙시장에 노브랜드가 입점했다.
 24일 삼척중앙시장에 노브랜드가 입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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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장에서 팔리는 제품과 겹치지 않도록 상인들과 미리 품목을 조정했습니다."

지난 24일 강원도 삼척시 중앙시장에서 열린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10호 삼척 중앙시장점 오픈식'에서 나온 이마트 관계자의 말이다. 노브랜드는 이마트의 자체 브랜드이다. 이날 그는 "2016년 8월 충남 당진 어시장에 처음으로 상생스토어를 낸 후, 3년 만에 10번째 매장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이마트쪽은 "일부에서는 대기업이 전통시장 잡아먹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지만, 시장 상인과 기업, 지자체 의견이 모두 일치된 경우에만 매장을 열었다"며 "삼척점에서도 시장 상인들의 의견을 반영해 이들과 겹치는 품목은 팔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 확인 결과, 노브랜드 삼척점은 이날 계란이나 두부, 콩나물 등 전통시장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제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붉은 불빛 아래로 냉장 통닭이나 냉장 삼겹살, 목살 등이 진열돼 있었고 그 옆으로 동해안 건·반건조 오징어와 건한치 제품도 놓였다. 이번에 노브랜드가 2층에 들어선 건물의 1층에는 건어물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모여 있는데도 그랬다.

1층에 건어물 매장 있는데...

그곳에서 말린 오징어를 판매하고 있던 이명옥씨는 기자가 '노브랜드에서 건어물을 팔고 있다, 알고 있었냐'고 묻자 "그게 사실이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씨는 "공산품을 판매하는 '그냥 마트'가 들어온다고 들었지, 건어물까지 판매하는 줄은 몰랐다"며 "바로 아래 건어물 가게들이 모여 있는데 이마트가 윗층에서 같은 물건을 판다는 게 말이 되냐"고 되물었다.

건물 앞에서 계란을 팔고 있던 계란 직매장 주인 최순임(가명)씨 역시 '노브랜드 매장에서 계란 한 판을 2980원에 팔고 있다'는 기자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앞서 기자가 핸드폰으로 찍은 계란 사진을 보여주자, 최씨는 몇 번이고 화면을 다시 들여다봤다. 그는 "우리는 계란을 한 판에 5000원에 파는데도 500원밖에 남지 않는다, 2000원대 가격은 맞출 수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노브랜드에서 계란을 팔도록 누가 결정했냐"며 기자에게 되묻기도 했다. '이마트와 중앙시장 상인회가 합의한 걸로 안다'고 답하자 최씨는 "상인회가 있는지 알지도 못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삼척 중앙시장점 내부 사진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삼척 중앙시장점 내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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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에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입점한 삼척 중앙시장 건물의 1층.
 2층에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입점한 삼척 중앙시장 건물의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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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을 위해 상인들과 합의했다'는 이마트와 '듣도 보도 못 했다'는 상인들의 의견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상생스토어가 전통시장에 입점하는 과정을 되짚어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유통산업발전법상 지역자체단체(지자체)가 정한 전통상업보존구역 1km 이내에는 유통 대기업이 직접 운영하는 중대형 마트가 들어설 수 없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매장을 내려는 대기업이 지자체에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제출하면 된다. 이후 대기업 대표자와 전통시장 대표자 등 관계자 9명이 참여한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 합의를 거쳐, 지자체장으로부터 최종 승인을 받으면 전통시장에서도 마트를 낼 수 있다. 얼핏 보면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대기업과 지역 전통시장 상인회가 시장 상인 모두의 의견을 듣지 않고, 매장 입점을 결정하고 판매 품목을 조절한 경우라면 그렇다. 물론 상인회는 이미 상인들의 대표다. 권한을 위임받은 만큼, 모든 상인들에게 의견을 따로 물어볼 의무는 없다. 문제는 대기업을 전통 시장에 들이는 결정이 누군가에게는 '생존'과 연관된 일이라는 것이다.

상인회의 대표성과 개별 상인의 생존권, 무엇이 우선일까

실제로 이날 삼척 중앙시장에서 <오마이뉴스>가 만난 중앙·풍물시장 상인 10명은 모두 상인회로부터 어떠한 의견도 듣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노브랜드가 입점한 건물 맞은편에 위치한 만능상회에서 콩나물과 마른 멸치를 판매하고 있던 정선여씨는 "이마트가 콩나물을 판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항의라도 했을 텐데 상인회로부터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가 어디서 어떤 결정을 내린지 모르겠지만, 여기 있는 시장 상인들이 그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는 게 사실"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시장 정문에서 수제 두부를 팔고 있던 박정수(가명) 씨 역시 "누구 주관으로 상생스토어가 들어오게 된 거냐"고 기자에게 물은 후, "시장을 살릴 목적으로 (상생스토어가) 들어와 소비자들의 발길을 잡는다 해도 그 소비자들이 모두 노브랜드에서만 물건을 산다면 굳이 시장을 왜 살리겠냐"고도 했다.

이에 대해 28일 삼척 시장 상인회 회장은 "시장에서 물건을 판매하고 있는 대의원들과 몇 차례 회의한 끝에 품목을 결정하게 됐다"며 "동해의 특산품인 생선회는 (상생스토어가) 팔지 못하게 했고 육고기 중에서도 '날고기'는 들여오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24일 삼척중앙시장에 노브랜드가 입점했다.
 24일 삼척중앙시장에 노브랜드가 입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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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스토어가 시장 상인들과 겹치는 품목을 팔고 있었다'는 기자의 말에 "시장 활성화를 위해 우선 그렇게 결정했지만, 확정된 품목이 아니다"며 "보름이나 한 달 후 품목을 다시 개편한다, 만약 상인들이 금전적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 상생스토어쪽에 하루에 팔 수 있는 개수를 정해 팔도록 하는 등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고 했다. 그는 "시장을 위한 노브랜드지, 노브랜드를 위한 시장은 있을 수 없다"고도 덧붙였다.

소비자들을 '일단' 시장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상생스토어에서도 특산물을 포함한 일부 소비 품목을 팔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마트 또한 시장 상인들의 의견을 확인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김주호 민생팀장은 "이마트는 상인회와 협의한 만큼 '나는 모른다'는 자세로 나올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모를 수 없다, 매장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최소 몇 번은 현장에 가서 확인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란, 건어물 등을 판매하는 상인들이 노브랜드가 들어선 건물 바로 근처에 위치해 있는 만큼 몇 번만 돌아다녀도 품목이 겹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김 팀장은 또 "의지만 있으면 직접 의견 수렴도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게다가 상생스토어가 전통시장 상인들과 겹치는 품목을 팔아, 상인들의 불만을 산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상생스토어가 남광주시장과 제천중앙시장에 들어설 당시에도, 일부 상인들은 집행부가 모든 시장 상인의 뜻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며 반발했다. (관련 기사: '지역 상인 요청'으로 삼겹살 판다던 이마트, 정작 상인들은 반발 왜? http://naver.me/GOjAz8uv)

이마트 관계자는 겹치는 품목이 있다는 기자의 말에 "상생스토어는 시장 상인회와 합의한 상품만을 판매하고 있다"며 "다시 한 번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지역 소상공인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한국마트협회 홍춘호 이사는 "지역 노브랜드 매장에서는 이마트가 직접 만든 상품뿐 아니라 전통시장에서 다루는 지역 특산물이 판매되는 경우도 많다"며 "하지만 현장에 있는 상인들은 품목은커녕 대기업이 시장에 입점하게 됐다는 사실 자체도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으니 주먹구구식으로 정보를 모으고 있는 상황"라고도 덧붙였다. 

이어 "상인회와 합의했다 하더라도 대기업이 전통시장에 매장을 열기 전, 시장 상인들에게 입점 사실과 판매 품목 등 정보를 알릴 필요가 있다"며 "그래야 상인들도 대기업 매장이 들어온 후 상황을 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태그:#이마트,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노브랜드매장,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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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류승연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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