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예쁜아이어린이집 아이들이 2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와우산 산책로에서 모래성 쌓기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예쁜아이어린이집 아이들이 2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와우산 산책로에서 모래성 쌓기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저는 노래 맞춰서 곡을 연주하는 사람이에요. 제 연주가 어때요? 저는 북 연주를 엄청나게 잘 해요."

10월 2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의 와우산 산책로에서 만난 5살 지양이가 친구들과 나뭇등걸을 막대기로 두드리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또박또박한 말투가 예뻐서 기자가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 지양이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엄마가 가르쳐주지 말랬어요"라며 수줍게 인솔교사 뒤로 물러섰다.

영등포구 예쁜아이어린이집에 다니는 지양이는 매주 금요일 오전마다 어린이집에서 1km 거리의 이 산을 누빈다. 25명 남짓의 원아들을 돌보기 위해 인솔교사 4명이 따라붙지만, 아이들에게 '미션'을 주거나 지시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들이 맘껏 뛰 놀도록 '풀어 놓는다'는 느낌이 강하다.

어린이집 원장 이영자씨는 "이 숲을 처음 발견해서 아이들을 데려온 지가 벌써 12년이 지났다. 많은 아이들이 이곳을 거쳐 갔는데, 마땅한 숲이 없는 영등포구 아이들에게는 보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아이들에게는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도 자기들만의 공간을 창출하는 능력이 있다. 1살 때부터 와서 3년째 이 숲에 온 아이도 있다. 어른들은 인지할 수 없지만 아이들이 집을 짓고, 소꿉놀이와 음악회를 하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구경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들이 숲에 다 갖춰진 셈이다."

원장의 말이 이어지는 사이에 아이들은 정자 인근에 멈춰 서서 흙바닥에 모래성을 쌓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인솔교사들의 역할은 아이들을 특정 목적지로 이끌고 가거나 뭔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안전을 통제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숲에서의 체육 활동을 강조하고 학습을 장려하는 '사설 숲 어린이집'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예쁜아이어린이집 아이들이 2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와우산에서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산책로를 걷고 있다.
 예쁜아이어린이집 아이들이 2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와우산에서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아 산책로를 걷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예쁜아이어린이집 아이들이 2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와우산 산책로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친구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주고 있다.
 예쁜아이어린이집 아이들이 2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와우산 산책로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친구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주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박복매 영등포구 육아종합지원센터장은 "교육의 진정한 주인이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방식이 진정한 생태친화 교육"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생태친화 교육에서 교사가 '자연해설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교사가 '오늘은 낙엽에 대해 알아볼거야'라고 하면, 교사는 낙엽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하지만 길 위에 나무껍질이 놓여있으면 그냥 호기심이 생겨서 계속 보는 게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탐색하면서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본다. 교사는 아이가 넉넉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고, 이럴 때 답해주면 된다."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다온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콩나물에 물을 주며 자라는 과정을 관찰하고 있다.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다온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콩나물에 물을 주며 자라는 과정을 관찰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다온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생태친화 수업으로 직접 기른 콩나물로 무침을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다온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이 생태친화 수업으로 직접 기른 콩나물로 무침을 만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같은 구 대림동의 다온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어린이집에서 기른 콩나물로 무침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먹거리를 직접 만들어보고, 채소 등이 잘 자라기 위해 어떤 조건이 필요한 지 감각을 키우는 것도 생태친화 교육의 일부다.

서울시는 5세 이하 어린이들을 위한 생태친화 어린이집 사업을 올해 4개 자치구에서 시작했다. 1개 구당 거점형 어린이집 5곳을 두고 있는데, 2022년에는 25개 모든 자치구로 확대 시작할 예정이다. 어린이집마다 텃밭이나 모래놀이터 등의 환경 개선, 생태친화교육 교육 양성, 부모 대상의 교육, 컨설던트들이 어린이집을 수시로 방문해서 이행 과정을 살피는 것이 시의 역할이다.

그 중에서도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학부모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 어려운 숙제로 여겨졌다. 차량 급증으로 '골목'이 사라지고 집에서 하는 컴퓨터 게임에 익숙해진 유년기를 보낸 학부모들 일부는 숲에 다녀온 자녀들의 옷이나 몸이 더러워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다온어린이집에서 한 아이가 생태친화 수업으로 가져온 나뭇잎과 솔방울로 꾸민 작품을 자랑하고 있다.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다온어린이집에서 한 아이가 생태친화 수업으로 가져온 나뭇잎과 솔방울로 꾸민 작품을 자랑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이영자 원장은 "30대 부모들은 청결, 위생, 안전에 엄청나게 신경 쓰는데, 아이들은 숲 교육을 너무나 하고 싶어한다"며 "한두 달 지나면 부모들도 더 이상 걱정 안 한다. 일주일에 한번 아니라 두 번으로 늘리자는 의견도 나온다"고 전했다.

학부모 김가은씨는 "어린이집에서 의식적으로 공원에 많이 데려가니 아이도 자연에 관심을 많이 가지게 된다"며 "예전에는 내가 아이에게 지금 같은 가을의 변화를 알려줬다면 지금은 아이가 내게 먼저 얘기해준다"고 그 동안의 변화를 설명했다.

이제 걸음마를 뗀 생태친화어린이집에는 아직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날 인솔교사들 입에서는 "2시간 정도 숲에 머물다보면, 아이들 용변 문제가 시급하다. (참을 수 있는) 어른들과 다르다. 산 입구에 화장실이 있거나 악천후시 이용할 쉼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왔다.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다온어린이집에서 학부모들이 생태친화 수업의 일환인 뜨개질 모임에 나와 뜨개질을 배우고 있다.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다온어린이집에서 학부모들이 생태친화 수업의 일환인 뜨개질 모임에 나와 뜨개질을 배우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태그:#생태친화어린이집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