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일대에서 10명의 여성이 살해됐다. 피해자 대부분은 목이 졸려 살해됐을 뿐만 아니라 범행 수법도 잔인하고 대범해 온 나라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에 경찰은 가용할 인원을 총동원해 범인 검거에 나섰다. 하지만 2006년 4월 공소시효까지 범인은 끝내 잡히지 않았고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은 듯했다.

그러나 사건 발생 33년 만에 경찰이 용의자를 특정하는 뜻밖의 성과를 이루었다.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부산교도소에서 24년째 복역 중이었던 이아무개에게 범행 전모를 자백받아 낸 것이다. 비록 공소시효는 끝났지만 '범인은 언젠가는 잡힌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각인시켜 준 경찰에게 국민적 박수가 터졌다.

하지만 얼마 못가 경찰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일이 터졌다. 경찰은 화성 연쇄살인사건 10차례 중 8차 사건은 모방 범죄라고 결론 내렸고, 윤아무개씨를 범인으로 검거했다. 그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1급 모범수로 20년을 복역하다 지난 2009년 이미 출소를 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 사건마저도 이아무개 자신이 저지른 범행이라고 실토를 해 경찰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물론, 아직까지 '8차 사건의 범인이 이춘재다'라고 완벽하게 단정 짓진 않았다. 또한 윤아무개씨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를 한 것인지, 보다 조사가 필요하다. 이아무개 자백의 신빙성에 대해 경찰이 계속 수사 중이고 최종적인 결과를 더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윤아무개씨는 옥살이 내내 일관되게 무죄를 주장했다고 한다. 이아무개 자백 이후 무죄를 입증하겠다며 재심을 준비 중인 윤아무개씨는 지난 10월 26일 경찰에 출석해 참고인 조사까지 마친 상태다. 여기에 이아무개는 당시 상황을 그림으로 그릴 정도로 자신의 범행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8차 사건의 진범이 뒤바뀔 가능성이 아주 커진 것이다. 
 
 백광호를 범인으로 지목 녹음기를 드리대며 자백을 강요하는 모습
 백광호를 범인으로 지목 녹음기를 드리대며 자백을 강요하는 모습
ⓒ 영화<살인의 추억>

관련사진보기

만약 이아무개가 8차 사건의 진범으로 최종 확정된다면 당시 경찰은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 억울한 감옥살이를 시켰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더군다나 지금 윤아무개씨는 각종 언론과의 접촉을 통해 당시 경찰이 3일간이나 잠을 재우지 않은 채 자백을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또, 쪼그려 뛰기 등 신체적 고문까지 당해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허위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당시 수사관들이 '너 하나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안 한다'며 협박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당시 경찰이 윤아무개씨를 무리하게 범인으로 지목했고,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 등으로 허위 자백을 받아내 무고한 사람을 억울하게 옥살이를 시킨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살만 하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도 윤아무개씨의 주장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살인사건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극 중 백광호를 학대하는 장면이나 빨간 팬티를 입고 음란행위하다 걸린 조병순을 취조실로 끌고 가 거꾸로 매달아 놓고 자백을 강요하는 장면이 그렇다.

특히 극 중 박현규는 심문 받는 과정에서 '죄 없는 사람들 잡아다 족치는 거 동네 애들도 다 알아'라고 말한다. 강압적이고 억압적인 심문을 통해 자백만으로 수사를 종결지으려는 수사 관행을 간접적으로 고발하는 대사다. 

이럴 듯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 1980년대 당시에는 과학적 수사보다 자백 위주 수사 관행이 지배적이었을 수 있다. 자백만으로 범인을 만들 거나, 가혹행위를 벌였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런 가혹행위 수사 기법 앞에 자백 안 할 장사가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결과를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만약 윤아무개씨가 범인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다면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수사기관에 끌려갔고 온갖 가혹행위와 협박에 못 이겨 억울한 자백을 할 수밖에 없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범인이 아닌 범인이 됐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살인범이라는 손가락질과 함께 평생을 죄인처럼 살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20년이나 억울하게 옥살이를 해 인생을 통째로 망친 것이 사실이라면, 윤아무개씨는 생각할수록 비통하고 원통할 마음일 것이다. 이런 가슴 아픈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줄 안다면 당시 가혹행위 의심을 받고 있는 수사관들이 어떠한 말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 사람들 다 어디 가고 지금까지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