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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지는 중1 소녀다. 바다와 인접한 작은 도시 산이군에 산다. 승지는 탐정이 되고 싶다. 초등학생이던 몇 년 전,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엄마의 핸드폰을 추리만으로 찾아주며 가지게 된 꿈이다.

아이들에겐 이미 맹 탐정으로 불리는 승지는 최근 들어 핸드폰을 두 개나 잃어버린 윤미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한다. 그로 어른들에게도 탐정 자질을 인정받게 된다.

맹 탐정은 요즘 고민이 깊다. 같은 반 인혜가 인혜 자신의 '자아'를 찾아달라고 의뢰했는데, 백과사전의 뜻 설명을 읽고 읽어도 감조차 잡히지 않는 그런 '자아'라서다.

이런 맹 탐정의 속사정도 모르고 인혜는 하루빨리 자신의 '자아'를 찾아달라고 재촉한다. 각자의 이상적인 삶을 찾아 이혼하기로 했다는 엄마와 아빠 중 누구를 따라갈지 혼란스러운 것은 자신의 '자아'가 없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어쩌면 버려질지 모른다고 눈물로 호소하며 말이다. 
 
<맹탐정 고민 상담소> 책표지.
 <맹탐정 고민 상담소> 책표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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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맹 탐정, 즉 승지 아빠는 동생인 승현이가 태어나자마자 가족은 나 몰라라 떠나버렸다. 그것도 다름 아닌 "자아를 찾겠다"며. 승현이가 여덟 살이니 아빠는 '자아'를 찾아 7년째 집 밖을 떠돌고 있는 것이다.
 
 '자아가 대체 무엇이길래 아빠는 가족을 버리면서까지 찾아야만 하는 것일까. 인혜의 자아는 어디에 있으며, 내 자아는 또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아빠가 7년 넘도록 찾아 헤매고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자아를 내가 과연 찾을 수 있을까?'
 
남편의 가출로 삼남매와 시어머니 생계를 책임지게 된 엄마와 그런 엄마가 아이들을 버리고 떠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할머니는 지난날 한동안, 걸핏하면 아빠와 '자아'를 묶어 욕하곤 했다. 그렇건만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자아'.

동생 말대로 엄마에게는 금기어인 '자아'인데 눈치 없게 물었기 때문일까? 걸핏하면 승지에게 잔소리를 했으나 언제나 씩씩 쾌활했던 엄마는 할머니와 아빠에게 이혼 통보를 하고 만다. "이제 더는 이렇게는 못 살겠다"라며.

이처럼 모두를 힘들게 하는 '자아'. 그래도 찾아야 할까? 아빠가 '자아'를 찾으면 엄마는 이혼 생각을 접을까? 지난 7년 동안 많아야 일 년에 두 번, 불현듯 왔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곤 했던 아빠가 나타나자 승지는 아빠의 '자아'에 대해 묻는다.
 
"이제 자아 찾기는 포기한 거예요?"
"…사법 고시가 폐지되고 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해졌을 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자랑스러운 아빠 말고 그냥 아빠가 되면 어떨까, 효도하지 말고 불효나 하지 않으면 어떨까, 떳떳한 남편 말고 그냥 한 달에 한 번 월급 가져다주는 남편이나 되면 어떨까, 그럼 플러스는 아니어도 마이너스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사람이 갑자기 똑똑해지기도 해요?"

아빠가 다시 커억커억 웃었다. 바닷물이 출렁이고 아빠의 몸이 앞뒤로 흔들거리자 맹 탐정의 머릿속도 자꾸 빙빙 돌았다.

"그래서 일을 시작했다. 얼마 만에 땀 흘려서 돈을 벌어보는지…. 처음에는 이런 일 하려고 서울대를 나온 건 아닌 데 싶기도 했어. 그래도 어쨌든 한 달 일해서 받은 돈 중에서 일부를 아내한테, 또 어머니께 보내고 나니까 마음이 좋더라고.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기분이 좋았어."

"아빠 그럼 이제 자아는 안 찾아도 되는 거예요?"
"그게, 사실은 아직도 찾는 중이야"-(140~142쪽)
   
소설 배경인 산이군 아이들 대부분은 어서 빨리 자라 산이군을 벗어나고 싶단 꿈을 가지고 있다. 그러자면 공부를 잘해 인근 큰 도시 정주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명문대에 입학하지 못하고, 그래서 낙오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많다. 승지도 마찬가지, 다들 그러니까 나도 그래야 한다는 막연한 꿈이다.

산이군 사람들의 이런 모습은 결코 낯설지 않다.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온 우리 사회 공공연한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떻게든 명문대에 가고,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선망하는 직업을 갖게 된다거나, 보다 많은 재산을 누리며 사는 삶이라고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게다가 모두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도 말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선망하며 그것을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거나 희생한다. 그 결과 승지 아빠처럼 자아실현을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것에 둔 나머지 정작 내 삶의 가장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모르거나, 그래서 소중한 누군가를 희생시키거나, 잃기도 한다.

<맹탐정 고민 상담소>(문학동네 펴냄)는 청소년 소설이다. 청소년기 '자아'에 대한 고민과 성찰은 왜 필요할까. 그리고 올바른 '자아' 성립은 왜 중요할까? 승지의 '자아' 찾기를 통해 진정한 자아실현과 바람직한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아빠의 가출은 사실상 집안의 가장 큰 문제다. 승지는 아빠없는 아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승지는 '자아' 때문에 고민이 깊어지며 점차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하여 말수가 눈에 띄게 줄고, 혼자 있는 시간이 부쩍 늘어난다. 어린이 승지가 사춘기 소녀가 되어가는 이런 과정과 변화가 풋풋하게 느껴지는 소설이다.

맹 탐정, 즉 승지가 의뢰받는 몇 건의 고민은 청소년 주변에 흔한 그런 것들이다. 부모와의 의견 충돌, 성적이나 이성 문제 등처럼 청소년 대부분이 크든 작든 겪는, 그리고 자기 스스로 극복하거나 해결해야만 하는 그런.

작가는 이를 장차 탐정이 되고 싶어 하는 또래 아이를 통해 고민하게 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어떤 노력을 하게 하는 것으로 훨씬 현실적으로 접근한다. 그런만큼 청소년들에게 훨씬 살가우며 적절한 조언이 될것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기사는 계간 <우리교육> 2019년 겨울호에 실립니다.


맹탐정 고민 상담소

이선주 (지은이), 문학동네(2019)


태그:#청소년소설, #맹탐정 고민상담소, #이선주(작가), #자아(자존감), #문학동네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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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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