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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지만, 국민의 약 70%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적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험해보니 국가 적폐보다 마을(아파트) 적폐의 청산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4년간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경험과 성취한 작은 성공의 이야기들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기자말

아파트 회장하면서 가장 괴로웠던 일은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과 한 달에 1~2번씩 얼굴을 맞대고 회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3번이나 나를 쫓아내기 위한 불법적 해임투표를 자행한 자들과 더구나 이에 대해 사과 한마디 안 하는 사람들과 안건을 놓고 토론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회장을 사임하지 않고 버틸 거라면 그들을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의로 인한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회의 며칠 전부터 잠을 설쳤고, 당일 날은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일상을 소화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어떤 날은 너무 긴장되어서 딸에게 기도를 받고 간 적도 있었다.
  
일종의 분업체계를 띠는 '남기업 괴롭혀 쫓아내기 작전'의 총감독은 우리 아파트에서 4번이나 회장을 하고, 나와 회장 선거에서 붙었던 동대표이다. 기획자는 관리소장이며 행동대장은 감사였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고함지르고 욕하고 멱살 잡고 심지어 등짝을 후려치기까지 하며 나를 괴롭혔지만, 행동대장인 감사의 만행에 비할 바 아니었다.
  
앞의 기사에서도 다뤘듯 그는 나의 회의 사회권을 방해하기 위해 상인들이 야채 팔 때 사용하는 핸드마이크까지 들고 온 사람이다. 욕하고 야유하고 조롱하는 건 기본이었다. 자기가 발언할 땐 확성기를 대고 사용했다. 게다가 내가 발언할 땐 사이렌까지 울렸으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그런데 문제는 이 행동대장 감사의 만행을 제어할 수 있는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나를 지지했던 3명의 동대표도 다 이사를 가버렸고, 입주민들이 회의에 참관해서 항의해도 그들의 만행은 계속되었으니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법에 호소하다
  
다른 어떤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 같은 약자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시간은 걸리지만 '법'밖에 없었다.
 다른 어떤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 같은 약자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시간은 걸리지만 "법"밖에 없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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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돕는 입주민들과 법무법인 에셀의 오재욱 변호사와 이 일로 여러 번 상의했다. 논의 결과 나는 '회장 직무집행방해금지 가처분 재판'을 신청하기로 했다. 다른 어떤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 같은 약자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시간은 걸리지만 '법'밖에 없었다.
  
사실 더 근본적인 대책은 '총감독'인 '우두머리'가 힘을 못 쓰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저들은 지리멸렬, 오합지졸 그 자체가 될 것이 분명했다. 내가 보기에 그들은 우두머리가 짖어 하면 짖고 물어 하면 무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두머리는 회의 때 가끔 내게 욕을 하는 거 외엔 확실한 범법을 하지 않았다. 여유를 부려가며 마치 전문가처럼 내게 훈계나 일삼았다.
  
2016년 9월 22일 수원지법에 행동대장인 감사를 채무자(피고인)로 한 '회장직무집행 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수원지법에 제출했다. 재판부에 내가 구한 것은 세 가지였다. 첫째, 행동대장인 감사가 회의 사회를 보는 나에게 회장이 아니라 '어이, 남씨'라고 하면서 비하하지 못하게 하는 것, 둘째, 발언할 때 핸드마이크를 쓰거나 사이렌을 울려서 회의 진행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는 것, 셋째, 회장 남기업이 해임 사유가 있다고 공격하거나 회의를 소집하는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서 채무자(피고인)인 감사도 서류(준비서면)를 법원에 제출했다. 물론 그 서류는 법률 지식이 있는 관리소장이 작성해준 것이다. 서류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감사인 자신은 주어진 업무를 성실히 수행했고, 회장이 자기 맘대로 회의를 운영하려는 것 때문에 동대표로부터 비판을 받고 갈등이 빚어졌고 이것을 자신이 바로 잡아주는 차원에서 핸드마이크를 사용한 것이라고. 그 서류에는 심지어 회장 남기업이 회의 때 핸드폰 문자를 보내는 등 불성실하게 회의를 운영해서 동대표들에게 주의를 받기도 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거짓말로 일관된 서류를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재판에 출석한 감사는 말을 더듬으면서 위와 같은 거짓말과 나에 대한 비난을 마치 사실처럼 진술했다.

"어이, 남씨"는 인용되지 않은 재판 결과
  
재판 결과는 내가 신청한 내용의 80% 정도가 인용되었다. 판사는 앞으로 핸드마이크를 사용하거나, 회장 해임 안건을 제출하면 건당 20만 원씩 간접강제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나를 "어이, 남씨"라고 부르지 못하게 해 달라는 것은 기각됐다. 판사에게 뭘 그런 것까지 판결을 요구하냐고 할지 모르지만 '남씨'는 회의 때 나를 비아냥대는 수많은 말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재판 결과가 이렇게 나자 나에 대한 감사의 괴롭힘의 정도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소송비용을 행동대장인 감사가 부담하도록 결정된 것도 그를 묶어두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 이후론 적어도 나에게 호통을 치거나 검사가 취조하는 듯한 추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남씨'라는 호칭은 판사가 써도 된다고 했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쓰겠다고 했다.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여 나는 이 사람을 완전히 주저앉힐 심산으로 형사 고소를 결심하게 되었다.
  
고소 내용은 회장의 회의 진행에 대한 '업무방해'였다. 회의 때 핸드마이크를 들고 들어와 확성기를 사용하고 사이렌을 울린 것은 회장에 대한 업무방해이니 처벌해 달라는 고소장을 수원지검에 제출했다. 보통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해도 수사는 관할 경찰서가 진행하는데 희한하게도 이 사건은 검사가 직접 수사를 했다. 수사 결과 담당 검사는 '행동대장'에게 벌금 50만 원의 기소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그는 검사처분에 불복하고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결국 형사재판이 열리게 되었다. 그는 무죄 판결을 받고 싶어서였는지 변호사까지 선임해서 재판에 임했다. 담당 검사가 나를 증인으로 신청해서 피고인인 그와 나는 법정에서 만나게 되었다. 증인 선서를 한 나는 검사와 변호사가 번갈아 하는 질문에 성실히 답변했다. 피고인의 변호사는 내가 문제가 많다는 식으로 질문을 유도했지만 끌려다니지 않았다.
  
물론 피고인인 그에게도 같은 방식의 질문과 답변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는 시종일관 나의 회의 진행 미숙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고 변명했다. '핸드마이크를 들고 온 것도 회의장이 너무 시끄러워 자기가 발언하면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사용한 것이고, 사이렌이 울린 것은 핸드마이크 조작 미숙으로 발생한 일'이라고 항변했다. 고의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고개 숙인 행동대장

증인인 나와 피고인인 감사의 상반된 진술을 듣고 있던 판사는 회의 녹음파일을 재생해서 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조용하고 엄숙한 법정에서 난장판이었던 녹음파일이 재생됐다. 회의 때 오갔던 고성, 듣기 민망한 욕설, 사이렌 소리가 그대로 흘러나왔다. 거기에는 내가 감사에게 "감사님이 발언할 때 다 조용히 듣고 있으니 제발 핸드마이크 확성기를 끄고 발언해주세요"라고 요청하는 목소리와 아랑곳하지 않고 확성기에 크게 대고 말하는 그의 소리가 들렸다. 회의장이 소란해서 핸드마이크로 발언했다는 진술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또 핸드마이크 작동 미숙으로 사이렌 소리가 났다고 진술했지만 들어보니 내가 발언할 때마다 사이렌 소리가, 어떤 때는 1분 이상 났다는 것도 확인되었다.

사이렌 소리는 우발적 실수가 아니라 명백한 고의였던 것이다. 창피했는지 이 녹음파일이 재생되는 내내 행동대장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재판장에서 그날의 회의 녹음 파일이 재생됐다. 창피했는지 이 녹음파일이 재생되는 내내 행동대장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재판장에서 그날의 회의 녹음 파일이 재생됐다. 창피했는지 이 녹음파일이 재생되는 내내 행동대장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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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결국 '전과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전의를 상실했는지 회의 때 나를 괴롭히는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 가끔 나에게 핀잔주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동안 그가 나에게 가한 언어적, 정신적 폭력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고 싶었다. 하여 나는 나뿐만 아니라 아내와 우리 아이들을 원고로, 그를 피고로 지정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청구서에 나는 우리 가족 전체가 1년 반 동안 받은 고통의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불면증에 시달려서 결국 병원에 갔다 왔다는 진단서도 증거로 제출했다.
  
그런데 법원 서류를 받아든 그가 아주 '절박한'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해오는 게 아닌가?

태그:#입주자대표회의, #동대표, #아파트 비리, #아파트 민주주의, #마을적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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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전 국민 주거권과 토지공개념 실현, 토지보유세를 재원으로 하는 기본소득인 토지배당제를 위한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땅에서 온 기본소득, 토지배당》(2023, 공저), 《아파트 민주주의》(2020), 《헨리 조지와 지대개혁》(2018, 공저)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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