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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직접 쓰고 그린 그림책 <꽃 심는 닭>을 읽어주는 어르신
  자신이 직접 쓰고 그린 그림책 <꽃 심는 닭>을 읽어주는 어르신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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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무거운 거 있으면 꼭 자기가 들어, 무릎이 아프니까 절대 들지 말라고 해. (철들어서 그래유~.)
술만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이제는 꽃도 예쁘게 잘 길러. 꽃 심으면서 나한테 이런 말도 해.
나 같은 사람한테 어찌 왔는가, 항시 고마워. (아우~ 눈물날려구 해.) 큰 아이들이 집에 찾아오면 이런 말도 해.
아이들 키우느라 당신 고생 많았소. 우리는 참 잘살았지. 어떻게나 50년 동안 한시도 떨어져 본적이 없으니께. (와~ 짝짝짝)"


박송자 할머니가 그림책 <꽃 심는 닭>을 읽었다. 평생 농사짓고 살아온 70대 후반의 할머니다. '나 같은 사람한테 어찌 왔는가, 항시 고마워.' 이 대목에서 문득 400여 년 전, 먼저 간 남편에게 아내가 쓴 '원이 아버지께'라는 편지글이 떠올랐다.

스물한 살에 할아버지와 결혼해 5남매를 낳고, 시부모를 모시며 눈코 뜰 새 없이 산 50년 넘은 세월. 읽는 중간에 박상신 이장님이 추임새를 넣었다. 그 말에 웃기도 하면서, 그림책 읽기를 듣는 내내 코끝이 찡했다. 이장님의 그림책 후기(?)가 이어진다.

"부부애가 느껴지는 이야기쥬~? 근데 할아버지가 진짜 술을 엄청 좋아해유. 원래는 첨에 이 책 제목을 '술 먹는 닭'으루 했었슈. 근데 '꽃 심는 닭'으로 바꿨어유. 할아버지가 누군지 궁금하쥬? 좀 기다려봐유. 곧 만날 거유."

그림책에 담긴 삶의 파노라마가 무지개빛깔로 펼쳐지는 시골마을이 있다.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노인들이 농사짓고 살아가는 시골. 여느 시골농촌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곳 어르신들은 남다른 자부심과 자신감이 있다.  
 
     그림책마을 책읽어주는 모델 할머니
  그림책마을 책읽어주는 모델 할머니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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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그림책첫걸음' 모임의 회원 10명이 10월25일(금), 부여 송정그림책마을을 방문했다. 늦가을 오전 햇살이 퍼지는 마을 풍경은 그대로 그림책의 한 장면이었다. 논에는 아직 수확하지 않은 벼들이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그림책정거장'에서 이장님을 만났다. 그를 따라 마을 안으로 걸어가는 회원들의 뒷모습이 마치 그림책 안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정거장이 있는 마을초입엔 23명의 그림책작가 이름이 비에 새겨 있다. 모두 송정마을의 어르신들이다.

느티나무가 있는 쉼터 벤치에는 그림책을 읽는 할머니모델이 있다.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은 십중팔구 그 옆에서 사진을 찍는다. 아쉽게도 모델이 된 할머니는 고인이 되었다고 한다.

부여 남쪽 끝자락은 밀양박씨의 집성촌이었다. 현재는 30여 가구가 살고 거의 70, 80대이다. 평생 농사짓고 살아온 노인들 손에 어느 날, 호미대신 연필과 붓이 들렸다. 낯설고 어설펐다. 당신들의 이야기가 어엿한 그림책이 된다는 걸 그땐 상상이나 했을까.
 
   직접 쓰고 그린 그림책들
  직접 쓰고 그린 그림책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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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나 그림은 도시에서 공부하는 자식과 손주들에게나 해당되는 거라고 여겼던 어르신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회관에 모였다. 농사짓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 시작은 반이었다. 책이 나오자 서울에서 전시회가 열리고 마을이 바빠졌다.

그림책은 우리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로,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맑은 정화수가 되어 소박하고 따뜻하고 뭉클하여서 웃다가 눈물이 떨어지기도 하고 목구멍에 알 수 없는 아릿한 슬픔이 걸리기도 한다.

그림책은 정겹고 꾸미지 않은 순박함으로 자연스레 동심에 젖게 한다. 마을노인들이 어떻게 그림책 작가가 되었을까. 그림책을 쓰고 그린 분들의 자부심과 자신감은 그대로 표정에 묻어난다. 당당하다.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마을은 그림책으로 활기를 띤다.

송정마을은 2013년 희망마을사업 공모에 선정되고, 2015년 '창조지역사업'에 뽑혔다. 문화예술단체인 사단법인 그림책미술관시민모임과 주민과의 만남은 '송정그림책마을'을 있게 한 시초가 되었다.

이 사업을 통해 마을주민들이 '쓰고 그리는 공부'로 자신들의 살아온 여정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농부여>, <찌그럭 째그럭>, <내 상추가 최고야>, <농가월령가>, <아버지의 두루마리>, <누룽지>, <가마니 팔러 가는 날>, <그리운 야학> 등 제목만 읽어도 이야기가 눈에 그려진다.
 
   여기도 부부그림책작가의 집?
  여기도 부부그림책작가의 집?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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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는 1925년에 세워진 송정야학당 건물이 있다. 마을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함께 만들었다. 어디서든 쉽게 올 수 있도록 마을중앙에 위치해 있다. <그리운 야학>은 일제 강점기의 우리 한글교육이 어려웠던 시대에 공부한 이야기이다. 야학당은 자치적으로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가을추수가 끝난 11월부터 1월까지 세 달 동안 저녁마다 교실이 열렸다. 저녁 늦게까지 공부했지만 '졸려도 좋았어. 그냥 좋았어. 바빠도 좋았어'라고 배우는 기쁨을 기억한다. 닫힌 문을 여니 마을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병풍이나 농기구 등이 놓였다. 장정 서너 명이 들어가면 적절할 그곳에 그 시절 아이들이 많게는 50명까지 들어갔단다.
 
      마을중간에 남아있는 야학당 건물
  마을중간에 남아있는 야학당 건물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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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년 동안 농사를 지었어. 호박을 키우고 감자를 키우고 깨도 키웠어. 고추, 가지, 마늘, 무, 콩하고 팥하고 옥수수도 키웠어. 먹는 건 다~ 내가 키웠어. (와하하~짝짝짝)그래서 부모를 공경하고 장가를 갔어~. (와~) 아이를 낳고 아들을 키워서 장가 다 보내고 (오~), 칠십이 넘은 할아버지지만 아직도 농사를 져. 내가 져서 내가 먹고 우리가 먹고 세~상이 다 먹어. (와~ 짝짝짝!!)"

<나는 농부여>의 작가 이만복 할아버지가 자신의 그림책을 읽었다. 평소에도 술을 좋아해서 할머니 모르게 빈병에 막걸리를 담아 밭에 가기도 했단다. <꽃 심는 닭>을 쓰고 그린 박송자 어르신과는 부부로 명실공히 부부그림책 작가이다.

아담한 2층 그림책마을찻집 창가에 늦가을 볕이 따스하게 비춘다. 이곳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소중한 공동체를 만드는 공간이다. 젊은이와 아이들이 떠난 시골마을은 이제 아이들 손을 잡고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서 오랜 세월 마을이 간직한 이야기가 그림책으로 생생하게 전해지는 곳. 송정마을은 다른 농촌 시골마을의 희망이다.
 
    그림책을 읽어보는 '그림책첫걸음'회원들
  그림책을 읽어보는 "그림책첫걸음"회원들
ⓒ 한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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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농사지은 것으로 만든 간식
  직접 농사지은 것으로 만든 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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