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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의 노벨문학상은 오스트리아 출신 작가 페터 한트케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이를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페터 한트케가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신유고연방 대통령을 옹호한 것으로 알려진 인사이기 때문이다. 한트케는 밀로셰비치의 장례식에서 조사를 낭독했다고도 전해진다. 보스니아의 대통령은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고 한다.
 
한트케가 옹호한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신유고연방 대통령으로, 국제연합 유고슬라비아 국제전범재판소에 전범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던 중 감옥에서 사망한 인물이다. 그를 상징하는 단어는 '인종 청소'다.
 
밀로셰비치가 행한 인종 청소와 유고슬라비아 역사는 서유럽사에 비하면 크게 다뤄지는 주제가 아니다. 또한 동구권 붕괴의 역사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진영의 화려한 승리로 기록되고 그 과정에서 있었던 각국의 우여곡절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발칸 반도와 유고슬라비아의 역사에 대해서는 알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분열과 외세의 개입으로 점철된 이들의 역사는 분단된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것이다.  

유고슬라비아가 왜 분열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당하게 되었는지 제3자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책이 있다. 이 책을 읽는다면 왜 페터 한트케에 대해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 많은지 그 내막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타국의 분열을 자국의 국내 정치에 써먹는 냉혹한 국제 정세에 대해서도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어떤 책은 책 자체가 훌륭하기도 하지만, 저자가 가진 독특한 이력으로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유일한 책'으로 만들기도 한다. <발칸의 음모>가 바로 그런 책이다. 저자 신두병씨는 외무고시에 합격, 외교관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한국인으로는 최초이자 최후로 유고슬라비아에 부임했던 유일한 대사라는 경력을 가지고 있다.
 
90년대 동구권이 해빙된 이후 저자가 유고슬라비아 대사로 부임했고, 얼마 되지 않아 유고슬라비아가 붕괴했기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 유고슬라비아 대사가 된 것이다. 

한 유고슬라비아 정치학자는 저자가 현지 사정을 파악코자 동분서주하던 모습을 회고한다. 히자만 당시 유고연방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웃었다고 하니, 극심한 혼란 속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한 것이다. 
 
저자는 유고슬라비아에서 철수하면서 항상 맡은 바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유고슬라비아가 인생에서 미완성된 부분으로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이후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다시 현지를 방문해 그간 느끼고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 책을 펴냈다. 
 
책에 따르면, 유고슬라비아인들은 코소보 알바니아인을 제외하면 우리가 보기에 구분이 불가능한 남슬라브족들로, 민족의 뿌리도 같고 35%가량은 통혼을 통해 피가 섞여 있었다고 한다. 문자는 두 가지를 썼지만, 중국처럼 지역별로 발음의 차이가 심한 나라는 아니었다고 한다. 
 
동구권에서 공산주의가 무너진 국가는 이외에도 많은데 왜 하필 유고슬라비아는 이렇게 처참한 비극으로 나아가야만 했을까. 저자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일어난 전쟁의 대외적 명분은 독립이었지만, 그 내막은 우리가 아는 민족해방전쟁이나 독립전쟁과는 다르다고 한다. 그렇다고 노선투쟁도 아니고, 지역정치꾼들과 맹주들이 정권을 쥐기 위해서 민족주의와 편견을 이용한 점이 크다고 본다.
 
2차대전 이후 유고슬라비아를 이끈 지도자는 파르티잔으로 유명한 티토였다. 그는 독일군에 맞서 파르티잔 활동을 벌이고 이후 유고슬라비아 건국으로 나아갔다. 티토는 '형제애와 통일'이라는 기치 하에 유고슬라비아를 35년이나 다스렸다.
 
그는 소련에 마냥 복종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는 집단 농장을 폐지했고, 인도와 이집트 정치인을 초대하여 비동맹 회의 노선을 추구했다. 또한 민족주의는 억압했다. 그러나 티토가 죽고 냉전이 끝나자 폭풍이 휘몰아치게 되었다.
 
호랑이가 없어진 산에 여우가 날뛴다는 격언처럼 강력한 티토가 없어진 이후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편협한 지역주의에 기반한 각 지역의 전 공산당 출신 민족주의자들이었다. 결국 이들은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정치적 게임을 했다. 옛 유고연방 시민들은 당시 동유럽을 휩쓸고 있는 자유, 민주주의 물결에 동승하지 못하는 역사적으로 불우한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1 64P
 
크로아티아에선 극우파를 기반으로 하는 군인이 대통령이 되었고, 보스니아에선 과격한 이슬람주의자가 지도자가 되었다. 세르비아에서는 언론을 등에 업은 호전적인 밀로셰비치가 대통령이 되었다. 각국의 지도자들은 사람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다른 민족이 아닌 자국민에게도 혹독한 탄압을 가했다.
 
이후 유고슬라비아에서는 피바람이 부는 내전과 인종 청소가 자행되었다. 무장한 군인들이 마을을 습격해 사람들을 죽이는 일이 반복된 것이다. 이슬람계 피난민들이 스레브레니차 시 직원들과 같이 피난하다가 세르비아계 군에 의해 사살되어 6414명이 죽임을 당하는 대량 학살이 일어났다.

인구 2300만의 국가에서 20여만 명의 인명이 희생되고 200만 명 이상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참혹한 피바람은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개입하고 나서야 끝이 났고, 그 과정에서도 각국의 국내정치 용도로 소비되었다고 한다.
 
세르비아 대통령 밀로셰비치는 내전 이후 장기집권을 위해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를 발표하지 않다가 총파업이 발생하자 혁명을 당하고 대통령직을 사임했다. 이후 발칸반도에서 벌어진 반인륜적 전쟁 범죄와 대학살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던 도중 감옥에서 심장 질환으로 사망했다.
 
유고슬라비아의 각 공화국은 현재 여러 개의 나라로 독립한 상태이다. 직업 외교관인 저자는 거시적으로 볼 때 웬만한 도시보다 인구가 적은 이들 나라들은 열강의 장기놀음에서 졸의 신세를 면할 수가 없다고 냉철히 분석한다. 그리고 새벽은 그냥 오지 않으며, 집단적인 가치 추구보다는 인간 개개인의 천부적 권리 향상을 통해 정의가 구현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유고슬라비아는 한국과 거리도 멀고 문화도 다른 나라다. 하지만 국가가 갈라지고 서로 알던 사람들끼리 총부리를 겨눠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역사는 한국과 다르지 않다. 분열을 다른 국가가 국내 정치에 써먹기 위해 이용하고 개입하는 과정, 국제 외교의 참혹한 현실과 정치인들의 극단적으로 편협한 행동에 대한 분석이 있기에 이 책을 통해 사라진 나라의 역사를 살펴볼 이유가 있다.

발칸의 음모 - 처음이자 마지막 대사가 쓴 유고 내전사

신두병 (지은이), 용오름(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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