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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민주화운동 35주년 기념 영상, <기억하겠습니다 5·18>.
 5.18민주화운동 35주년 기념 영상, <기억하겠습니다 5·18>.
ⓒ 5.18기념재단, 기억하겠습니다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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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년 전인 1637년(조선 인조 15년) 청나라 군대에 포위된 남한산성에서는 척화파와 척사파가 갈려 긴 논쟁을 벌였듯이, 전남도청에서도 '결사항전'과 '사태수습'으로 갈렸다. 

수습대책위에서는 무기를 반납하고 군당국과 타협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었다. 군대와 끝까지 싸워서 승산이 없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대책위는 대책위대로 시민들은 시민들대로 무기를 반납하고 '사태를 수습'할 것이냐 끝까지 싸울 것이냐를 두고 격론을 벌였다.

산 사람을 더 생각하는 자들은 총을 내려놓자고 했고, 죽은 이들을 더 생각하는 자들은 총을 놓을 수 없었다. 결국 대책위에서 떠날 사람은 떠났고 남을 사람은 남았다. 이대로 항복할 수 없다는 사람들, 텅 빈 도청을 계엄군에게 내줄 수는 없다는 사람들, "죽음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들만 남았다. (주석 4)

  
 1980년 5월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 집결한 광주시민들. 이날 시민들이 목이 터져라 부른 애국가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국가는 그 국민을 죽였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980년 5월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 집결한 광주시민들. 이날 시민들이 목이 터져라 부른 애국가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순간 국가는 그 국민을 죽였다.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 5.18 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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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에는 비상이 걸렸다.
25일 밤 도청 수습위에 참여한 17명의 재야인사들은 철야회의를 하던 중 이 소식을 들었다. 김성용 신부가 대책을 내놓았다. 

"우리 어른들이 방패가 됩시다. 지금 상태로는 전차 앞에 나서도 죽을 것이요, 여기 있어도 죽을 것입니다. 그러니 모두 다 나갑시다. 만약 그들과 대화를 할수 있다면 우선 항의합시다.  왜 약속을 배반했는가, 해명하고 사죄하라고 합시다. 이 자리에서 결의합시다."

그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요구 및 결의사항을 제안하자 모든 수습위원들이 한결같이 찬동했다.

1. 1시간 이내에  군은 본래의 위치에 철퇴하라.
2. 그렇지 않으면 전 시민의 무장화를 호소하고,
3. 게릴라전으로 싸웁시다.
4. 최후의 순간이 오면 TNT를 폭발시켜 전원 자폭합시다. (주석 5)

 
 헌혈을 위해 병원에 몰려든 시민들과 의료진
 헌혈을 위해 병원에 몰려든 시민들과 의료진
ⓒ 5.18 기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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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명의 재야수습위원들은 탱크를 몰고 온 계엄군 지휘관을 만나 전날의 약속을 어기고 재진입한 폭거를 따지기 위해 도청을 나섰다.

"그들은 금남로 수창국민학교 - 광주대교 - 양동 - 서광주경찰서 앞 돌고개 - 농촌진흥원 앞까지 약 4㎞ 구간을 천천히 걸었다. 수많은 시민들이 역시 목숨을 걸고 그 뒤를 따랐다. 죽음의 행진은 진흥원 앞에 도열한 계엄군의 탱크 앞에서 멈추어 섰다." (주석 6)

이들의 대행진은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로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가 1930년 70명의 아슈람 회원들과 함께 순례자의 지팡이를 짚고 영국의 식민지배 착취법인 소금법에 항거하는 대행진이나, 마틴 루터킹이 1960년대 흑인차별에 항거하면서 시민들과 대행진을 시작한 일과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라면 상대가 계엄군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최후 항쟁지였던 옛 전남도청(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및 분수대 광장과 전일빌딩(왼쪽 큰 건물). 전일빌딩은 계엄군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는 5.18항쟁 역사의 현장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최후 항쟁지였던 옛 전남도청(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및 분수대 광장과 전일빌딩(왼쪽 큰 건물). 전일빌딩은 계엄군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는 5.18항쟁 역사의 현장이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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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행진'을 이끌었던 김성용 신부의 증언을 더 들어보자.

검은 세단차에 탄 장군이 나타난다. 두 개의 별이 빛난다. 부관들을 대동하고 나타나 장군은 부끄러운지 계엄사령부에 가서 이야기하자 한다. 행진중 대변인으로 선택된 나는 단호히 말했다.

군이 어젯밤의 위치에 후퇴하지 않는한 갈 수 없다. 장군은 후퇴하겠다고 말하고 전차병에게 명령하자 전차는 소음을 내면서 사라졌다. 시민은 일제히 박수의 세례를 보냈다.  

부사령관 김소장의 제의를 받아들여 학생대표를 포함 11인이 상무대로 갔다. 서로 인사를 교환하고 자리에 앉으니 오전 10시가 되었다. 대변인으로서 입을 열었다. 그러나 김소장은 이야기를 막고 30분간만 이야기하자는 것이었다.

준장이 2인, 소장이 2인, 그리고 중령인 헌병대장의 순서로 앉고 그 옆에 내가 앉게 되었다. 나는 항의했다. 대화라는 것은 대등한 입장에서 이야기해야 하지 않느냐. 그렇게 일방적으로 위협하고 이야기를 중단시키고 시간을 제한하면 어떻게 대화가 되는가고, 약속을 위반하고 전차를 이동케 한 데 대한 항의로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결의를 말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신부가 여기에 왔으니 진심으로 이 이상 귀중한 피를 흘리지 않고 수습될 것을 요청, 이 일은 전 광주시민뿐 아니라 국가적인 일이니 이렇게 신부도 수습위에 참가했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말은 통하지 않았다. 교묘히 나의 말을 왜곡하고 유도하면서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주석 7)

 
 80년 5.18 당시 태극기를 들고 민주화시위를 하고 있는 광주시민들.
 80년 5.18 당시 태극기를 들고 민주화시위를 하고 있는 광주시민들.
ⓒ 5.18기념재단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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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되지 않았다. 별을 단 장군들도 한국인이니 굳이 통역을 댈 이유는 없었으나, 문제는 그들이 경직되고 자율권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들 역시 신군부 수뇌들의 수하로서 움직일 뿐이었다. 설득도 호소도 통하지 않는 로봇과 같은 장군들에게 수습을 위한 5개 항목의 요구를 전달하고 물러나왔다.

① 시간이 필요하다. 노력해서 수습한 것을 군이 약속을 깨었으니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한마디로 거절당했다. 며칠을 참고 후퇴까지 한 군의 사기에 영향이 있다는 것이다.

군은 항상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타당한 말이다. 국군은 언제나 이겨야 한다. 그러나 적군에 이겨야 하는 것이지 나라의 주인인 국민, 80만 광주시민에게 이겨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 없어서 다시 묻지 못했다.

② 약속을 위반하여 전차를 이동케 한 데 대한 이유를 분명히 하고 사죄하라. 이미 방송을 통하여 시민에게 전했다는 것이다.

③ 군은 절대로 광주시내에 진공해서는 안 된다. 오늘 아침에도 느낀 일이나 총구를 국민에게 돌리는 군대를 어떻게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더욱이 돌연 무자비한 살상행위를 한 군을 광주시민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신부이며, 살상행위를 목격하지는 않았으나 김장군을 처음 만났을 때 혐오감을 느꼈다. 하물며 직접 살상을 목격한 시민, 가족을 잃은 시민, 분노와 원한에 찬 시민이 어떻게 군을 용서할 수 있겠는가.

군인 중에도 많이 살상한 전우의 이러한 모습을 본 젊은 군인들이 분개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애국애족에 관하여 교육이 잘 되어 있어서 참고 있다는 것이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 민주학생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고 시위하고 있는 것을 총검으로 무차별 살상하고 전시민의 의거로 쫓기고 지금와서 피차 매한가지라니…

④ 경찰에게 치안을 담당시켜라. 무기가 회수되어 군에 반납되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조건을 낸다.

⑤ 보도로 화해를 호소하는 방법을 지양하고 시민을 자극하지 말라. 메모로 하여 전령에게 주어라. 노력한다고 약속한다. (주석 8)


주석
4> 한홍구, 「광주민중항쟁과 죽음의 자각」,『창작과 비평』, 210년 여름호, 402쪽.
5> 앞과 같음.
6> 정상용 외, 앞의 책, 298쪽. 
7> 윤재걸, 앞의 책, 129~130쪽, 재인용.
8> 앞의 책, 130~131쪽, 재인용.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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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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